3.子曰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 자왈 유인자라야 능호인하며 능호인이니라.<주석> 能好人 能惡人 :호인이란 남의 선한 것을 좋아함이고 오인이란 남의 선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 두 句는 좋아함과 미워함이 모두 理性에서 나옴을 말한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인자라야 능히 남의 선한 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또한 남의 악한 것을 미워할 수도 있다. <묵상> 사람이 사람에 대한 판단은 대개 자기중심적이다. 내게 잘해주는 사람은 좋고 나에게 잘 해주지 않은 사람은 싫어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올바를 판단은 나에게 중심을 둘 것이 아니라 원리와 원칙, 어쩌면 진리에 그 기준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그 기준을 두고 好 惡를 판단하는 사람은 인자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누구를 좋아함도 누구를 미워함도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나도 모르게 편벽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편벽되지 않고 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분은 바로 인자일 것이다. 4. 子曰 苟志於仁矣 無惡也자왈 구지어인의면 무악야라. <주석> 苟 :誠이다. 志 :마음이 가는 바이다. 無惡 :악을 하는 일이 없음이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능히 진실로 인에 마음을 둔다면 악한 일은 만들지 않는다.<묵상> 지극히 당연한 원론적인 말씀이다. 그런데 이를 해석함에 내가 진실로 인에 뜻을 둔다면 악이 없어질 것이다. 고 해석하면 너무 지나친 자만일 것이다. 그저 단순히 악한 일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을 워낙 불완전하고 나약하기 때문이다. 바울 같은 성자도 내가 하고자 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하고자 아니하는 악을 행한다고 고백하였다. 이게 인간의 타고난 나약함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지기를 조심하여야 하는 것이다. 잠시라도 섰다고 자만하는 순간 곧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인에 뜻을 두고 부단히 그 인을 실천하고자 하여야 겨우 악은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제 내가 인에 뜻을 두니 악이 없어지더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만이다. 끊임없이 인에 뜻을 두고 정진하여야만 악을 없이 하고 더욱 나아가 정진하면 인도 이룰 수 있는 경지에 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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