里仁篇은 논어 가운데 가장 오리지널한 공자의 말씀일 것이라고 한다. 문장이 매우 간결하다. 대화 자체를 그대로 옮겼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仁에 대한 말이 주종을 이룬다. 공자의 사상을 가장 집약한 것이 仁인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중요한 편으로 보고 있다. 마치 신약성경에서의 산상수훈과 같다고 할 것이다.
1.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仁焉得知자왈 이인·위미하니 택불처인이면 인언득지리오?<주석> 里仁爲美 :鄭玄이 말하기를 里라는 백성이 사는 곳이다. 仁者의 마을에 거하면 이것이 선한 것이다. 고 하였다. 朱熹가 말하기를 마을에 仁厚한 풍속이 있으면 아름다운 것이다. 고 하였다. 處 :居하는 것이다. 焉 :何이다. 知 :智와 같다.<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마을 가운데 인후한 풍속이 있으면 아주 좋다. 만약에 사는 곳을 선택하는데 풍속이 인후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능히 총명하다 하겠는가?
<묵상>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더구나 고대에 마을을 주축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는 그 마을이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생활의 터전이었다. 그러므로 풍숙이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 살아야 함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종래의 보편적인 해석이었다. 이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里를 마을로 보지 않고 동사로 보아 산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仁에 사는 것이 된다. 그래야 좀 깊은 맛이 나는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종래의 해석은 너무 보편적인 말이어서 굳이 공자께서 강조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인에 산다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인을 강조하는 공자의 사상과 맞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에 사는 것이 아름다우니 인을 택하여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가 된다. 그래도 무언가 좀 어색한 듯도 하다. 오히려 전자의 해석이 더 순리적이지 않나 여겨지기도 한다.2. 子曰 不仁者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安仁 知者利仁자왈 불인자는 불가이구처약하며 불가이장처락이니 인자안인하고 지자는 이인이니라.<주석> 約 :窮困이다. 樂 :안락이다. 安仁 :인에 마음이 평안하여서 맞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다. 利仁 :仁을 아는 것이 利가 됨을 알고 이를 행하는 것이다.<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하지 못한 자는 곤궁한 환경에 오래 거하지 못하고 또한 안락한 환경에서도 오래 거하지 못한다. 인자는 仁道에 평안하여 인을 행하고 지혜로운 자는 인의 좋음을 알기 때문에 이를 행한다. <묵상> 仁하지 못하면 곤궁한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말은 이해가 쉬우나 또한 안락한 환경에서도 오래 거하지 못한다는 말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그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안락한 환경 가운데서도 오래 살다 보면 그 환경이 좋은 줄 모르고 더 나은 환경을 요구하게 되고 또 그 환경에 오래 살다 보면 그만 무료하여 싫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게 범인이다. 그러므로 인자라야만 곤궁하든 안락하든 그 환경을 극복하고 인에서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인을 오히려 利得으로 여기는 현명함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자와 지자가 나란히 나타나는데 仁者는 安仁하고 知者는 利仁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인자가 한 수 더 높은 경지인 것 같은 감을 갖게 한다. 곧 安仁은 자연 그대로인데 利仁은 인위적인 무엇이 끼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인자는 요산(樂山)하고 지자는 요수(樂水)한다는 말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