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문협과 안산문협은 1993년 자매 문협을 결성하여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이문회우(以文會友)라 했던가. 서로 글로써 맺어진 벗인 동시에 자매 문학협회이다. ‘93년 여름 안산문인들의 초대를 받고 찾아간 것이 <라성>호텔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자매 결연식을 갖고 경주와 안산이 자매 문협으로서 발족한 것이다. 그날 저녁 안산문협 회원들과 경주문협 회원들이 한데 어울려 문인 술 마시기 대회라도 하듯이 얼마나 마셨는지 지금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았다. 경주의 이희목 시인은 차에 오르는 차 중에서부터 술이 거나하게 되어 ‘목마와 숙녀’를 거뜬히 외우기도 했다. 그날 밤에는 김동리 선생의 부인 서영은 씨가 경주의 회원들을 위해 갖다 준 안동소주 한 박스(대형 소주박스)를 여류 시인들이 홀랑 비우는 바람에 한 밤중 병원 응급실까지 실려 가는 소동이 벌어지고 닝겔 주사를 꽂고 헛소리를 하는 Y 여 회원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모처럼 가정으로부터 해방된 여류 문인들이 세상사를 잊어버리고 마음껏 마시니까 그럴 수밖에-. 1994년 경주 신라문화제 때였다. 안산 문인들을 초대하여 쪽샘 술집을 방황하면서 밤새도록 마시다가 이튿날 신라 문화제 백일장이 있는 것까지 잊고 아침에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던 일을 생각하면 술이란 결코 범상한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가을에는 안산문협이 우리를 초대했다. 초대를 받은 경주문협 회원들은 신흥 공업도시이며 서해안의 공단기지인 안산으로 갔었다. 마침 그 날은 제1회 성호문학상 시상식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자매문협의 문학작품 낭독회가 있었다. 이 날의 성호문학 수상자는 소설을 쓰는 신상성 작가였다. 우리는 미리 준비된 식장에 들어가서 뷔페로 식사를 마치고 ‘문학의 밤’을 시작했다. 그 날은 주로 시작품을 낭독했으며 안산, 경주 시인들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그 날 김해석 선생께서는 어정거리며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열심히 마시고 뜨겁게 사랑하자고 하면서 오늘밤은 아마 5차는 해야 하는데 미리 각오하라는 말을 했다. 재미있는 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문학의 밤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 족발 집으로 들어가니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밀려 나왔다. 벌써 1차를 끝낸 샘이다. 그래서 어느 불고기 집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고기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곧 쫓겨 나왔다. 그러니 2차가 끝난 샘이다. 3차로 들어간 집이 해장국집인데 그 집에는 술과 안주가 무진장 준비되어 있었다. 안산 문인들은 주로 소주를 마시고 경주문인들은 맥주를 마셨다. 나중에는 맥주와 소주가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청탁을 가릴 여유조차 없이 마구 마셔댔다. 3차에서 벌써 술이 취하여 정신을 잃을 정도였으니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문인 치고, 아니 시인 치고 술 못 마시는 사람 보았는가? 닥치는 대로 먹고 마시고 밤이 가는 줄을 몰랐다.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훨씬 넘었다. 한 사람씩 숙소로 들어가고 끝까지 남은 사람은 김해석, 이근식, 정민호, 박주오, 안의선, 김종섭, 조신호, 이희목, 노종내 등, 십여 명 정도였다. 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마침 광장에는 포장마차가 있어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으니 그 쪽으로 몰려갔다. 우리는 다시 술과 안주를 시켰다. 소주에 맥주, 안주 몇 접시를 갖다 놓으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우리는 자꾸 술과 안주를 시켜 마시고 먹었다. 온갖 잡담 농담 소리를 다 하다가 늦게야 방으로 돌아 왔다. 안양에 사는 시조시인 안의선이 방에 숨겨 두었던 맥주를 꺼내어 또 술을 시작했다. -정민호(시인·동리목월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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