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원 옵니버스 ‘신의 원죄’를 넘기면 ‘감나무’란 수필 작품이 있다. 그 속에 나오는 감나무가 이 글을 쓴 운원 본인과 꼭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집에 있는 한 그루 감나무는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다.
가지를 쳐준다거나 퇴비를 주는 일도 없을 뿐더러 열매 같은 것을 솎아 주는 일조차 없이 그대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스스로 자라서 지붕을 덮는 한 그루의 감나무는 전연 주인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할 뿐더러 간섭까지도 받지 않는 우리 옛 할아버지들이 키우던 방식으로 키워서 자란 감나무다. 그 집에 서있는 한 그루 감나무를 나는 본적은 없지만 이 글에 나타난 감나무는 자유분방한 글쓴이의 그 자체인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일찍이 오류선생(五柳先生)이 버드나무를 심었듯이-.
권윤식 선생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맥주 집에서 맥주를 마신다. 몸이 불편하거나 특별한 경우만 집에 있는데 내가 집에 전화를 걸어서 그대로 받으면 이상할 정도로 그는 자기 집보다 술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경주에 있는 맥주 집 몇 군데만 연락을 취하면 당장 찾을 수가 있다. 술집에 없을 때는 기원에서 바둑을 두고 있을 때다. 그의 술은 애주가의 도를 넘어서 주선의 경지에 가깝다. 술을 한꺼번에 들어 마시며 폭주를 하는 법은 없고 서서히 장시간을 두고 즐기는 편이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그의 특유의 행동으로 손이 자주 안경을 올리게 된다. 눈꺼풀은 내려와도 그의 눈은 더욱 반짝거린다. 그의 노래 솜씨는 또한 수준급이다. 시시한 유행가를 버리고 품위 있는 클레식을 즐겨 부르는 편이다.
그는 철학을 전공했다. 그의 철학적 인생이 자주 술좌석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술을 마시면 술값을 묻지 않는다거나 외상 술값에 대해서 하나 하나 따지지 않는다거나 술값이 싸든 비싸든 관계하지 않으며 또 남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대범한 스케일로 잘 나타나고 있다.
어느 날 쪽샘에서 마음 맞는 주붕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의 제안으로 밤 한 시에 화장터로 찾아가서 인생을 명상하고 돌아 온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인생을 알려면 화장터에 가봐야 한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는 바람에 세 사람은 의견일치를 보아 택시를 잡아타고 화장터로 갔다. 한 사람씩 차례로 그 안에 들어가서 5분씩 묵상을 하고 나오기로 했으니 권윤식, 서영수, 양덕모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되고 취하면 가장 순수하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술 마시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못하고 술에 취하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닐 것이다. 이런 화장터에 가는 일은 술에 의한 기발한 생각의 발로로 평범한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갑년을 넘긴 권 선생은 문학에 대한 집념도 대단했다. 그가 추천된 “문학세계”의 당선 소감을 보면, “70에 능참봉........그러나 어쩌겠는가? 대낮에도 쓸데없이 어정거리다가 낮잠으로 소일했더라도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문단 등단이 늦은 것이 무슨 대수냐. 이왕에 갈 길이라면 늦거나 빠르거나 무슨 상관이랴”
그의 문학과 술에 두루 영광 있기를 빈다.
-정민호 시인·동리목월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