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따가운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여 자주 들리는 다방으로 갔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고 약속한 사람이 없으니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주말, 그것도 맑게 갠 가을날-.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날에 그냥 멍하니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막걸리가 한 잔 생각나는 계절에 집으로 들어가서 낮잠을 자기도 그렇고 책읽기도 따분했다. 나는 기발한 생각을 하나 해낸 것이다. “세 번째 사람” 우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길로 다방에서 나와 어느 대포 집으로 들어가서 술과 안주를 시켜놓고 오후 3시가 땡 치게 되면 이 대포 집 앞으로 지나가는 세 번째 술꾼과 술을 마시기로 작정했다. 지금부터다. 창가에 앉아 길을 지나가는 “아는 사람” “세 번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둘 지나가고 이제부터 남은 한 사람이 결정적으로 나와 술을 마실 사람이다. 조금 있으니 드디어 아는 술꾼 한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고 소리쳐 불렀다. 바로 권윤식 선생이었다.
권윤식 선생 이야말로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가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불러들였다. 나는 그에게 그가 세 번째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오늘은 운명적으로 그와 술을 마셔야 한다는 이유를 또 설명하였다. 주선(酒仙)에 가까운 그가 술과 술친구를 두고 그냥 가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그 날의 술은 물어 보나마나다.
권윤식 선생은 아호를 운원(雲園), 또는 소정(素丁)이라 했다. 그는 철학을 전공하면서 수필을 쓰는 문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神의 原罪’라는 희곡을 쓰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주로 술 이야기, 문학 이야기, KBS에서 방영되고 있었던 ‘이산가족 찾기(잃어버린 30년)’ 등에 관해서 이야기 한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때 영남일보에 <千字春秋>를 썼는데 거기에 찬주론을 쓰면서 술에는 장점도 많다는 것을 역설해서 주당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사실을 아직 상기하고 있다. 문학과 술은 떨어 질레야 떨어질 수 없는 함수관계가 작용한다고 우리는 느끼면서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무슨 글을 쓰느냐는 우리대로의 술에 대한 철학을 역설하기도 했었다. 운원 선생의 그때의 주론은 그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도망갈 수 있도록 그물을 뚫어 놓고 마신다고 했다. 술 상대가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도 좋다는 것이다.
“체력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가라” “재력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가라”
다시 말하면 돈 없고 술을 못 이기면 언제든지 빠지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모자라면 언제든지 가도 좋은데, 잡거나 붙잡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운원 선생의 음주철학이다. 나는 이 말에 박수까지 치면서 호응했다. 처음 들으면 술꾼의 체면과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하면 운원 선생의 지론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그 만큼 술을 아끼고 술을 사랑하고 술에 대해서 자신을 가지고 술을 마시는 ‘찬주론자’이기 때문이다.
-정민호(시인·동리목월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