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권윤식, 서영수, 양덕모는 술꾼 ‘삼총사’로 이름이 높았다. 서영수는 시인이요, 권윤식은 수필가 이면서 고려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이기도 했다. 양덕모는 K고교 영어교사로 세 사람은 자주 같이 다니며 술을 마시는 술친구로 경주 쪽샘 거리를 누비며 다녔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술꾼 삼총사’ 라 부르고 있었다. 한 번은 어느 쌀쌀한 가을날 밤, 경주 쪽샘에서 밤늦게 술을 마시다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누가 ‘인생은 화장터에 가서야 배운다’ 라고 했다던가? 아마 철학을 전공한 권윤식 선생의 말일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손뼉을 치면서 옳다고 호응했다. 그렇다면 오늘 밤, 1시가 넘었으니 당장 한 번 가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세 사람은 또 손뼉을 치면서 의기투합하여 당장 화장터로 가기로 합의 했다. 세 사람은 술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서 택시를 잡았다. 세 사람이 모두 택시에 동승을 하니 운전기사가 어디로 모실까요? 했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화장터”했다. 운전기사 섬뜩하여 “어디요?”하고 되묻는다.  또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화장터”했다. 늦은 밤 화장터까지 가는대는 애로가 많았다. 안 가려고 하는 기사를 꼬여 택시비를 따따블로 주고 화장터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 화장터 송장 굽는 ‘철 침대’에 누워 <인생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화장터가 전근대적 시설로(70년대 화장시설), 시신을 태우는 그 속에 들어가서 5분씩 묵상을 하고 나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시신을 눕혀 태우는 침대에는 아직 덜 식어서 따뜻한 철제침대(?)에서 차례대로 드러누워 5분씩 묵상하면서 참된 인생을 체험하고 있었다나. 갑자기 저쪽 수위실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누가 시체 훔치려 왔노!!” 하고 버럭 소리 지르며 어느 한 사람이 이쪽으로 뛰어나왔다. 냉정한 현실에서는 “화장터에 인생을 묵상하러 왔다”는 말로는 이해시키기는 어려웠다. 현실은 냉혹했다.  또 “묵상하러 왔다”는 것으로 세속인들에게는 말로 이해되지 않는 범법행위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웃지 못 할 이 이야기가 그날 밤에 이 세 사람에 의하여 체험되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이 지역 경주에 전설처럼 남아있다. -정민호(시인·동리목월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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