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에 경주 향교 뒤 나물왕릉에서 ‘셔벌 향연’ 이 있었다.  S시인은 우연히 그 자리에서 정재훈 씨와 최귀주(근화여고) 최영식(근화여중)을 만나 한잔씩을 거나하게 했다. 그리고는 2차로 간 것이 최영식 선생 사랑방이었다. 거기에 가서 숨겨둔 술을 마신다고 했다. 정재훈 씨는 고향이 진주로서 개천 예술제 백일장에서 고등학생 시절 S시인을 만나 익히 잘 아는 사이였다. 이런 인연으로 경주에서 만난 것이다. 그 때 정재훈 씨는 경주사적관리소 소장으로 있었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최씨 댁 사랑(舍廊)에서 술을 마셨다. 막걸리로 시작해서 법주로 끝을 내려고 모였던 것이다. 쌀쌀하게 저물어 가는 가을밤, 귀뚜라미는 울고 가을 달은 밝아 술 마시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서영수 시인은 그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빠져 도망갈 준비를 하면서 때를 노리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정재훈 소장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여 몽롱한 상태가 되었을 때 서 시인은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것을 알아차린 정재훈 씨도 같이 따라 나섰다. 밖으로 나온 S시인은 일단 화장실로 가서 볼 일을 마치고 잠시 숨어서 동정을 살폈다. 마침 가을 추수를 끝낸 짚동으로 변소 주위에 세워 놓아서 숨기에 좋도록 되어 있었다. 일단 짚동 뒤에 숨는다고 들어갔는데 한 쪽 발이 시골 통 변소에 빠지고 말았다. 한 쪽 다리가 흠뻑 젖어버린 것이다. 오, 나의 실수-. 큰일이었다. 그 길로 교촌 건너편 문천(蚊川)으로 나와 흘러가는 냇물에 열심히 빠진 다리를 씻어서는 젖은 상태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도망 오는데, 택시 기사가 냄새를 열심히 맡더니, “이게 무슨 냄새요” 한다. “몰라요” 했다. 덜 씻긴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다시 씻었다. 그렇게 씻어도 냄새는 속일 수가 없었다. 온 집안, 온 방안이 고약한 냄새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동해남부시 동인모임이나 경주문협 모임에는 항상 그가 빠지지 않는다. 80년대쯤으로 기억된다. <통술집>에서 모임을 갖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데 그가 술을 마시다말고 사라진 것이다. 끝까지 남은 회원들이 술을 끝내고 그를 찾으니 그가 없어진 것을 그 때서야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집으로 쳐들어가자! 했다. 이구동성으로 가자! 가자! 하면서 찾은 것이 그가 살고 있는 국민주택 164호였다. 찾아가서 대문 밖에서 ‘아무개 선생-’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불은 있는데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대문을 발로 찼다. 또 ‘아무개 선생-’ 하고 불러도 깜깜무소식. 그래서 누군가가, “사람도 없는데 문패는 말라꼬 달아 놓노” 하면서 문패를 떼어 집 안을 향해 집어 던지니 문패는 ‘팽-’하면서 소리 내어 날아가서는 그 집 화단에 꽂혔다는 사실. 며칠 후 본인의 입을 통해서 듣고서야 알았다. 이것이 제1의 <문패수난사건>이었다. -정민호(시인·동리목월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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