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문협 지부장으로 성학원에서 홍영기선생으로 경질되었다.  그 이유인즉, 성학원 선생의 아드님이 경주고에 다녔는데, 학교에서 과외비를 받는다는 이유로 경북도 교육위원회에 투서를 했다는 사실이 도 장학사에 의해 성학원지부장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있던 회원이 많았기에 그것을 문제 삼아 지부장을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홍영기선생으로 지부장이 바뀌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 때문에 서영수 선생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사꾼’이 되어 성학원지부장의 눈 밖에 나기도 했다. 그 후 성학원지부장은 신라중학교에 근무하면서 고혈압과 당뇨가 심해서 오십 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경주로 근무지를 옮겨오고는 그해 여름으로 기억된다. <옥산서원>으로 문협 소풍을 떠났다. 홍영기 지부장, 전문수 사무국장, 이춘담, 서영수, 김홍주, 정민호, 김기문, 이동태, 이채형, 그리고 여자회원이 몇 사람 더 있었다. 마침 서울에서 고무신 박종우 선생이 오셔서 함께 떠나기로 했다. 안강역까지 기차로 가서는 옥산 서원까지는 걸어서 갔었다. 산대를 거처 시름시름 걷기 시작하는 그야말로 소풍날이었다. 안강역에서 <옥산서원>까지 잠시도 입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고무신이었다. 고무신의 해학적인 말솜씨에 노상 그의 입만 처다 보고 걸었다. 고무신 왈,“소 다섯 마리 몰고 가겠나, 선생 하나 몰고 가겠나?” 하면 “나는 소 다섯 마리 몰고 가는 것이 낫겠다”“소열마리 몰고 가겠나, 신문기자 하나 몰고 가겠나?” 하면 “나는 소 열 마리 몰고 가겠다”“소 열 다섯 마리 몰고 가겠나, 시인 한사람 몰고 가겠냐? 하면 “나는 소열 다섯 마리를 몰고 가겠다”하면서 모두 하, 하, 하고 손뼉을 치면서 웃는다. “나는 소 백 마리 몰고 가겠다” “나는 시인 10사람 몰고 가겠다. 어떤 사람은 나는 어렵다는 시인 한사람만 데리고 가겠다”하면서 웃으며 걸어가니 어느덧 <옥산서원>에 도착했다. 우리는 흐르는 물가 바위에 앉아 밥을 짓고 막걸리를 마시며 놀았다. 홍영기 선생이 색다른 음식을 많이 준비하여 왔었다. 배가 부르고 술이 거나하게 취하니 우리는 현장에서 3행시 백일장 대회를 열었다. 제목을 고무신선생이 내고, 고무신선생이 심사까지 맡았다. ‘서라벌’ 이란 두음의 3행시 백일장이었다.서라, 서라, 서라 가다가도 서라.라, 라, 라, 흥겹게도 막걸리 한잔 더벌판의 끝없는 하늘 푸르기만 하여라. 이런 내용의 시가 그날 장원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이미지였는데 아마 젊은 회원의 작품인 듯하다. 아니면 어느 여자회원의 작품이 아닌가 하기도 하다. 세월 속에 까마득하게 묻혀가고 지금 생각해도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정민호(시인·동리목월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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