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조회 때 교장 선생님께서 오늘 떠나는 선생님의 이임 인사가 있겠다고 소개했다. 바로 고무신 선생이 포항고등학교를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교장의 말씀인즉, 이런 내용이었다. 교장 자신은 고무신 선생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는 훌륭한 교사인데, 기성회장의 건의에 의하여 전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성회장의 건의 내용은 교사(고무신 선생)가 대포 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술집 작부를 희롱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심히 잘못된 짓이며 또 길가는 학생을 불러 들여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설사 그런 선생님이 실력 있고 잘 가르치는 교사일지라도 배우는 학생이 그의 행동을 본받을까 염려되니 전출시키라는 압력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고무신 선생은 시인으로서 실력 있고 유명한 교사라는 것은 나도(교장) 잘 알고 있지만 학부형의 건의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곧 이어 고무신 선생은 교단에서 취임 인사 때처럼 이임 인사도 유머러스하게, 하나도 슬프거나 구겨진 말을 하지 않고 유창하게 이임 인사를 하고는 그 길로 바로 교문으로 나가는 것이 지금도 매우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바로 그 길로 안동고등학교로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1960년 나는 서라벌예대에 입학했다. 문예창작과에는 고교 때 글 쓰던 친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각 지역 시인이나 고교 때 시인 선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모이면 빈번하게 고무신 선생도 화제에 떠오르게 되었다. 같은 (6)학과에 김길원(안동고 졸업)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고무신의 제자였다.
어느 날 명동 ‘돌채’에 고무신 선생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김길원과 함께 ‘돌채’에 간 일이 있었다. 그는 고교 교사를 그만 두고 상경하여 무의탁으로 떠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고무신은 ‘습지(濕地)’라는 시집을 공초 오상순(空超 吳相淳) 시인의 서문을 받아 출간했었다. 오상순의 청동시대(靑銅時代)에 함께 휩쓸려 명동에 나가던 때였다.
우리는 돌채에 찾아가서 기다렸으나 그날에는 고무신이 나타나지 않아 못 만나고 돌아왔다. 소문에 의하면 60년대 최고의 여배우 전 아무개와 ‘목하연애중(目下戀愛中)’이라고 했다. 고무신 시인이 영화배우와 연애한다는 사실을 고무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때 고무신 선생은 일정한 주소가 없이 제자 자취 집을 찾아다니며 전전했었다. 안동고의 제자인 시인 김용진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게 되었다. 그러니 불편한 쪽은 양쪽 모두였다. 특히 담배가 그러했다. 술도 마음 놓고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니 고무신은 같은 방에 기거하는 제자에게 금연을 강요하지는 못했다. 선생과 제자가 맞담배는 곤란하지만 돌아앉아 피우고 술은 마주앉아 마셨다. 그때에 발간한 그의 시집 ‘濕地’를 제자들이 들고 다니며 팔아오게 해서 그것으로 함께 자취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길원(金吉源)은 시집 ‘습지(濕地)’를 들고 다니면서 국학대학, 동국대학,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팔기도 했었다. 고무신 선생은 재향군인회 출판부에서 근무하게 되면서부터 걱정을 덜게 되었다고 했다.
-정민호(시인. 동리목월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