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마다 번지는 푸른기운을 떠메고 느린 걸음으로 고목이 된 회화나무 느티나무 왕버들 물푸레 단풍나무, 고풍스런 숲길 배회하면서 마주치는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충담스님 향가비(鄕歌碑) 앞에 발길이 머문다. 화랑 기파랑(耆婆郞)을 추모한 노래가사를 가만히 읊조리면 나뭇가지 사이로 충담이 찬미한 기파랑의 모습 얼비치기도 하다.『흐느끼며 바라보매 나타난 달이/ 흰구름을 쫓아간 아래/ 여기 시퍼런 냇가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도다/ 일오 냇가 자갈밭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 쫓고져/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눈이 못올 고깔이여』 숲의 서쪽 갈랫길 월성(月城) 서리(西里) 교촌마을 들어서면 31대 신문왕때 국학의 자리 차지한 향교, 35대 경덕왕시절 왕족이 건너던 웅장하고 화려한 다리 월정교,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 얽힌 느릅나무다리 유교(楡橋)터를 더듬어, 문천(蚊川) 흐르는 시냇물 거스러면 김유신장군 생가 집터다. 삼국사기 기록에 백제와의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중에 다시 적군이 침범해 온다는 급보를 받고, 쉴 틈도 없이 출전하며 집앞을 지나칠 때 병사가 떠온 물을 마시면서 “우리집 물맛은 예전 그대로구나” 자랑삼은 재매정, 누이인 문희남편 김춘추(29대 태종무열왕)도 처갓집 우물맛 달게 마시며 통일의 기반 다졌을 터이다. 솔향 풍기는 숲의 안쪽 내물왕릉과 나란히 앉은 평화로운 고분들, 경계 없는 천년을 넘보며 첨성대 오솔길 건너면 신라인의 꿈꾸는 안식처 돌무지덧널무덤 천마총(天馬冢)이다. 배롱나무 사잇길 달 밝은 밤이면 굵은 알 쑥쑥 잘도 낳아 기른,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대릉원고분군마을 한바퀴 돌아서면 훤히 내다뵈는 서쪽 담장 너머 젊음의 거리 황리단길이다. 멀리서 가까이서 몰리는 청춘의 발길들로 낭만이 묻어나는 곳, 유혹하는 커피향에 거침없이 빨려드는 새로운 관광명소다. 다시금 월성궁궐 낮은 언덕빼기 올라 발굴중인 옛궁터를 휘감아 석빙고 거쳐, 해자(垓字)를 끼고 남쪽으로 향하면 국립경주박물관 기와지붕 맞잡고 반기는 에밀레종으로 친근한 성덕대왕신종, 뒤란에 자리한 고선사지 삼층석탑까지 국보유물 황홀하게 싸안고 신작로 건너면, 동궁과 월지(月池) 달못 잔잔히 연꽃은 수려해 마음 안에 연잎사귀 띄워놓고, 밤이면 전등 불빛 고즈넉히 젖어드는 황룡사마룻길 걷는다. 구층목탑 허물어진 빈터가 끌어당기는 천년, 그 곁에 무심(無心)으로 머무르다 보면 까닭모를 生의 전율이 전신을 흔들어, 다 빼내지 못한 상처의 쓸쓸함들이 흉허물이 벗겨져 위로받는 영혼이 처연하다. 바라다 보이는 미탄사지 삼층석탑 절터까지 옮기는 발길로 고즈넉한 별빛 달빛 흥건하게 밟힌다. 김알지의 탄생설화를 키워낸 젖내 풍기는 숲 계림, 길의 첫 장에 찍혀 있는 갈림길 헤아리며 느린 걸음으로 왕경(王京)길 맞닿다 보면, 휘어지고 넘어지는 굴곡진 인생사 저절로 아물려 황금관 쓰지 않아도 부러울 것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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