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이 뚜렷하다
-문인수
해 넘긴 달력을 떼자 파스 붙인 흔적 같다.네모반듯하니, 방금 대패질한송판냄새처럼 깨끗하다.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나가,땅거미처럼 먹물처럼 번진 것인지사방 벽이 거짓말같이 더럽다.그러니 아쉽다. 하루가, 한주일이, 한달이헐어놓기만 하면 금세쌀 떨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해가 갔다.공백만 뚜렷하다.이 하얗게 바닥난 데가 결국,무슨 문이거나 뚜껑일까.여길 열고 나가? 쾅, 닫고 드러눕는 거?올해도 역시 한국투자증권,새 달력을 걸어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
-한 해, 다 빠져 달아나버린 딱정벌레의 날들 요즘이야 핸드폰에 달력 기능이 있어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력 인심이라는 게 있었다. 해마다 연말이면 달력을 얻어 옆구리에 끼고 들고 오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달력 떼어낸 자리를 보면 그 부분만 유난히 깨끗하고, 그 주변 벽은 누렇게 때가 끼었다. 당연히 햇빛을 받고 못 받고의 차이지만 정말 우리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이 시는 바로 그 이면을 보는 눈에서 출발한다. 달력 떼어낸 자리는 “파스 붙인 흔적” “송판냄새”에서 보듯 시각과 촉각의 공감각적 심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다음 행에 이르면 사방 벽의 더러움을 “새까만 날짜들이 딱정벌레처럼 기어나가/땅거미처럼 먹물처럼 번진 것”으로 읽어낸다. 삼백 예순 다섯의 날짜가 그렇게 기어가버렸다니! 한 해를 보낸 그 소회는 “헐어놓기만 하면 금세” 떨어지는 쌀 같은 막막함으로 실감된다.
그 자리는 어느새 ‘뚜렷한 공백’이 되어버린다. 한 해를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는 상실감. 그 깨달음이 ‘공백’을 ‘바닥’으로 다시 ‘문’으로 ‘뚜껑’으로 만든다. 성질 같아서는 달력이 만드는 그 시간의 길을 벗어나고 싶다. 이걸 그냥 “열고 나가?” 차라리 “쾅, 닫고 드러”누워버려? 그러나 무자비하게 흐르는 시간을 벗어날 장사는 없는 것이다.
다시 시간과 타협한다. 자신의 의지와의 타협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렇다. 한국투자증권, 밑지는 셈 치고 다시 새해의 결심에 나를 투자해보는 거다. 그러고는 “새 달력을 걸어” 쓸쓸함을 “쓰윽 덮어버리는 것이다.”
중년 이후의 인생 치고 누가 이 시를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냥 그렇게 새해를 믿어보는 수밖에. 그렇게 해야만 한 해를 보내는 이 시간이 덜 억울할 것 같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