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식당에서 아이들의 역할은 ‘귀여운 말썽꾸러기’였다. 가만히 앉아있자니 좀이 쑤신 녀석들은 이내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른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으니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식당은 이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놀이터다. 어른들이 조용해야 한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지만 그때뿐이다. 그랬던 애들이 사라졌다. 바로 스마트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아이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아무리 서럽게 울어대는 아이라도 입에 사탕 한 알 까넣어 주듯 스마트폰을 건네면 울던 입이 배시시 웃는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귀여운 말썽꾸러기들은 죄다 눈을 스마트폰에 박고 있다. 식당 내 놀이터가 있어도 뛰어다니며 놀지 않는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로로에 연신 입을 오물대는 아기부터 좀비가 나오는 게임을 하는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힘이 잔뜩 들어간 손가락을 놀릴 뿐이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의 스마트폰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번은 식당에서 와이프가 옆구리를 찌르길래 옆 테이블을 보니, 네 명의 식구가 주문한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네 살 배기 정도로 보이는 아기는 스마트폰(아기 앞에는 태블릿이 놓여 있었다)만 만지작거리고 있고 모임의 주인공인 듯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는 무심히 오가는 손님들만 쳐다보신다. 새색시처럼 발그레 붉은 뺨이 참 고우셨다. 음식이 나오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맛있게 드시라 서로 건성으로 인사하고는 각자 음식을 앞 접시에 던다. 아기가 먹던 과자가 몇 개가 남았는지 체크를 하고는 애 엄마 아빠는 뭔가 놓친 장면이라도 있었던지 얼른 폰에 집중한다.  마치 혼자 오신 듯 할머니만 음식을 드실 뿐이다. 나머지는 스마트한 세상을 쫓아가느라 앞 접시에 담긴 탕수육이 식는 줄 모른다. 스마트폰은 이름처럼 우리를 스마트(smart)하게 만들지는 못 한다. 뇌의 측면에서 스마트하다는 말은 대뇌피질 시냅스 연결망이 건강하다는 말이다. 20조 개 정도의 시냅스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는 6살 정도가 되면 시냅스의 연결이 1000조 개 이상 급속하게 증가한다고 한다. 혹시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대부분의 부모가 희망을 걸어보는 바로 그 시기다. 연구에 따르면 뇌 속 시냅스는 일정 기간 과밀해지다가 다시 줄어든다고 한다. 어렵게 말해서 ‘과잉생산(overproduction)’과 ‘가지치기(pruning)’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고 없애는 과정을 거치면서 시냅스 연결은 보다 정교해지며 뉴런의 정보 소통에 효과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스마트하다는 말의 뇌 환경적 정의다. 이때 어떤 시냅스를 없애고 또 살릴 지에 중요한 기준이 ‘반복’이라고 한다. 어떤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뉴런은 그렇게 생성한 시냅스는 매주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튼튼하게 만든다. 반면에 자주 하지 않는 행동은 뉴런에게 중요하지 않은 시냅스로 인식하게 하여 제거하게 만든다. 시냅스의 가지치기 방식이 이렇게 진행된다. 만약에 아기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다면 그 작은 머릿속에 형성된 스마트폰 관련 시냅스는 고래 힘줄보다 튼튼하게 자리 잡는다. 공부를 한다거나 어른들 앞에서는 예의범절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인성교육보다 게임이나 자극적인 동영상에 더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이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는 “넌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공부를 못 하는 거니?” 잔소리해봐야 아이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생존에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이지 책이 아니라는 걸 오랜 과정을 통해 뇌가 그렇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럼 개선의 여지는 없는 걸까? 머릿속이 게임과 자극적인 인터넷 영상으로 가득하다면 같은 방식으로 머릿속에다 축구장이나 공부방을 만들어주는 거다. 진짜 축구공을 차며 진짜로 넘어지기도 하고 울고 웃으면서 팀워크를 배우는 거다. 한 장 한 장 침 발라가며 책장도 넘겨보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인터넷 게임만큼이나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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