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머물 것만 같았던 여름이 가고, 천년고도 경주에 ‘잊혀진 계절’ 가을이 왔다. 쓸쓸하면서도 기분 좋은 가을, 그중 우리 민족이 예부터 12개월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시월(예부터 새로 난 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 으뜸달이라는 10월은 시월상달(十月上─)이라고 도 부른다 )그런 시월의 어느 날, ‘천년고도의 파수꾼’ 경주경찰서 문화탐방 동아리는 불교유적의 보고(寶)이자 신라인들의 영산(靈山)이라는 경주 남산으로 향했다.
가을을 맞은 남산은 떨어진 낙엽으로 다소 외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온화한 미소로 따뜻하게 우리를 반겨주는 불곡마애여래좌상[佛谷磨崖如來坐像]이 나타났다. 불곡마애여래좌상은 경주 남산 불교 유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인 7세기 경 조성된 불상으로 남산 불교유적의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어 남산 불상의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그 모습 또한 이 불상의 별명인 ‘할매부처’처럼 손녀, 손자를 보며 웃고 있는 인자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우리는 불곡마애여래좌상의 따뜻한 환영인사를 받고 두 번째 탐방지인 중창지로 향했다.
중창지로 향하던 중 지금은 대부분 없어진 남산신성(南山新城 : 신라 진평왕 13년(591)에 축조)의 성곽 일부를 볼 수 있었다. 비록 나무와 흙에 파묻히고 유실된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남아있는 성곽의 모습은 기개가 대단해 보였다.
이어서 성곽을 지나 남산신성 안쪽으로 오르자 문무왕 3년(663년)에 지은 남산신성 내 가장 큰 창고이자 군량미를 보관했던 중장치가 나왔다. 지금은 그 터와 주춧돌의 흔적들 밖에 볼 수 없지만, 아직까지도 중창지 주춧돌 아래에서 탄화된 쌀이 발견되고 있으며 실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데 1,000년이 지난 쌀을 아직도 볼 수 있는 게 무척 신기하면서도 마치 신라시대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준다.
중창지에서 김구석 소장님의 해설을 듣다보니 어느덧 해가 숨고 달이 떠올랐는데 달빛의 안내를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전(傳) 삼화령(三花嶺)으로 향했다. 삼화령(三花嶺)이란 3월3일과 9월9일에 차를 달여 미륵세존께 드렸다는 삼국유사 설화 속 장소로 전 삼화령은 미륵세존으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상(石造三尊佛像) 중 본존불이 출토 돼 삼화령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아쉬운 것은 석조삼존불상의 불상 3개 모두 코가 파손되어있는데, 1925년 석조삼존불상의 본존불발굴당시 본존불 불상은 코가 온전했으나 불상의 코를 갈아 마시거나 만지면 아들을 낳는 다는 속설 때문에 발굴이후 한 시민에 의해 코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불상의 코 부분 파손은 비단 경주의 석조삼존불상 뿐만 아니라 20세기 국내의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전국 각지 불상의 코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다. 당시 남아선호사상이 문화재 파손으로 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아쉬운 사실이지만 이 또한 그 당시 우리나라 시민의 문화와 사상을 알 수 있는 예이며 역사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탐방지인 월정교로 향했다. 월정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인연을 이어준 다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언론보도에서는 삼국사기에 월정교는 760년에 지어졌고, 원효대사는 686년에 사망해 월정교와 원효대사의 시대는 무려 100년 차이가 발생하며, 또 삼국유사에서는 원효대사가 건넜던 다리를 월정교가 아닌 나무로 된 작은 느릅나무 다리로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해 혼선을 주고 있다. 진실이야 어쨌든 올해 개장한 월정교는 보는 사람들에게 하여금 상당한 아름다움과 신라의 미를 전해준다. 또한 원효대사가 어떤 다리를 건넜든 월정교가 1200년이 지나 지금 우리 눈앞에 다시 있는 것처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와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의 9번째 문화탐방이 마무리되었다. 이번 문화탐방을 통해 만난 가을밤의 남산은 낮과 달리 세월의 덧없음과 쓸쓸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신라의 소박하면서도 찬란한 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며 색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 가을밤의 남산탐방을 추천한다. 남산의 달밤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는 유명 음악과 글귀처럼 여러분에게 멋진 날을 선사할 것이다.
경주경찰서 정보계 순경 배기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