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신문 편집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김흥식 경주에서 필자가 산지도 어언 십 년이 넘었다. 그 동안 경주에서 살면서 느낀 경주와 경주사람에 대한 혼란스런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경주사람들은 과연 경주를 사랑할까? 경주사람이라 함은 경주를 고향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경주가 고향이 아닌 사람은 아무리 오래 살고, 지역사회에 기여를 많이 해도 경주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 대부분 경주사람의 생각이다. 아무튼 경주사람들은 과연 경주를 사랑할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필자의 답은 사랑하면서 사랑하지 않는다 이다. 분명히 혼란스러운 대답임이 틀림없다. 우선 경주사람이 경주를 사랑하는 증거부터 보자. 첫째, 많은 경주사람들은 신라의 수준 높은 문화적인 전통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표현은 감추고 있지만 시민 한 명 한 명 모두가 경주의 문화적인 유산을 지켜내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그 오랜 세월동안 사유재산권을 침해당하면서 불편한 생활을 감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둘째, 경주사람들의 경주사랑은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서 알 수 있다. 남산에 올라 바위마다 새겨진 부처님 앞을 자세히 보라. 티끌 한 점 없이 비질이 되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 일찍 비질하고, 향을 피우는 허리 굽은 할머니 보살님들을 볼 때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셋째, 경주사람들은 좀처럼 경주를 떠나지 않고, 경주를 떠나더라도 언젠가는 돌아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각종 행사나 모임 등을 볼 때, 경주사람들의 가족적인 수준의 유대관계가 매우 긴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알리는 현수막은 경주의 지역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경주사람들이 경주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를 보자. 첫째, 경주사람이 경주를 너무 모르고 잘 이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도시든 내세울만한 유래와 문화를 가지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랴만, 경주 만한 문화적인 배경과 자연적인 환경을 가진 도시는 없을 것이다. 시내의 왕릉에서 암곡 골짜기의 무장사지, 동해바다의 감은사지에 이르기까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디디는 데마다 신라인의 땀과 얼이 배어 있지 않는 곳이 없다. 또, 가족과 친구들끼리 쉬고 정담을 나눌 수 있는 숲과 공원과 산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런 좋은 환경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이용하고 있을까? 경주사람중 무장사지가 어디 있으며 그 유래가 어떤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감실 부처님은 어디 계실까? 덕동댐에 잠긴 문화재를 생각하며, 오솔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있는가? 가족들과 오능의 숲속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같이 먹어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 둘째, 경주사람들은 천년 수도 경주의 미래 모습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남산이나 가까운 산에 올라 천년 수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주 시내의 도로 구조를 보라. 계획된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눈을 돌려 경주의 신 주거지라 할 수 있는 황성동의 도로 구조를 보라.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구인 황성동은 마치 미로와 같고, 열악한 도로 여건은 무질서한 주정차와 함께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이러한 도시 개발이 과연 천년 수도 경주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무계획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인 개발은 황성공원에 있는 실내 체육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대형 체육관이 필요한지, 위치 선정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체육관이 석굴암과 불국사, 황룡사(지)등의 훌륭한 건축물을 가지고 있는 신라의 후손으로서 백년, 이 백년 후의 우리의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건축물인가? 후손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경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체육관의 기괴하기만 한(경주의 문화적인 배경과 황성공원의 자연과도 유리된, 이해하기 힘든 양식의 체육관이니 초현대적인 디자인의 건축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디자인 때문에 현재공사가 진행중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 줄 것인가? 경주사람은 경주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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