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마지막 날, 다섯 번째 탐방장소인 오릉에 가기로 한 날이다. 탐방장소에 들어선 사람들의 옷이 얇아진 만큼 따뜻한 햇살과 봄바람이 불어온 기분 좋은 날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듯이 오릉 입구에서 돗자리를 펼쳐 삼삼오오 모여 경주 대표 김밥인 교리김밥과 컵라면을 먹으니 마치 학창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경주에 온 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점심메뉴 교리김밥도 좋은 곳에서 좋은사람들과 먹어서인지 너무나도 맛있게 느껴졌다.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릉 앞으로 걸어갔다. 경주에 근무하는 동안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한 번씩은 방문 하겠다 생각한지 2년이 지나는 동안, 오고가며 차안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직접 가본 적 없었던 오릉을 문화탐방동아리를 통해서라도 온 게 마냥 기분이 좋았다.
오릉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크기의 다섯 개 무덤이 보였다. 해설사분의 말씀으로는 「삼국유사」,「삼국사기」에 오릉의 기록이 있는데 무덤의 주체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오릉은 박혁거세 한 명의 무덤으로, 진한의 땅에 6촌들이 알천언덕에 올라가 나정의 붉은 빛을 보고 따라가니 흰 말이 절을 하는 형상을 하고 있고 옆에 알이 있었다. 그 말은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 하늘로 승천하였는데 6촌들이 알을 깨어보니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몸을 깨끗하게 씻기니 몸에서 빛이 나 이름은 혁거세, 박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은 박으로 지어 박혁거세였다. 그 뿐만 아니라 마침 알영정이란 우물에 계룡이 나타나 하늘로 올라가던 중,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입술이 닭의 부리를 닮은 여자아이가 나왔다. 노모가 이 아이를 발견해 물에 씻기니 부리가 떨어져나갔고, 우물 이름을 따 알영이라 지어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박혁거세가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후, 박혁거세가 하늘로 올라가 몸체가 5개로 나눠져 땅에 떨어졌고 나눠진 몸을 합장하여 무덤을 지으려했으나 큰 뱀이 나타나 방해해 제각각 무덤을 짓게 되었다. 그래서 다섯 개의 무덤 오릉을 뱀의 이름을 따 사릉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삼국유사」보다는 현실적으로「삼국사기」에 실린 기록이 채택되어져 널리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설화 내용은「삼국유사」와 동일하나 다섯 개의 무덤은 1대 박혁거세와 2대 알영부인, 3대 남해 차차웅, 4대 유리 이사금, 5대 파사 이사금 다섯 명의 무덤이라 한다. 이때의 신라는 보통의 왕위계승과 다르게 신라 초에는 덕·지혜·능력 있는 자가 왕위 계승을 하였다. 유리와 석타래가 왕위 계승으로 다툴 때, 지도자의 자질은 치아의 개수가 많을수록 뛰어나다 하여 떡을 가져와 치아 개수를 판별하니 유리가 치아 개수가 많아 왕위에 올랐고 그 후 석타래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4대 석타래 이사금은 ‘박’씨가 아닌 ‘석’씨 이기에 오릉에 묻히지 못했다.
그리고 실제 「삼국사기」에는 오릉의 기록이 실려져 있을 뿐 자세한 위치는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담헌사 북쪽에 있다’ 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담헌사도 실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현재 오릉 주차장에서 탑지가 발견되어 그 곳이 담헌사 절의 터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오릉의 다섯 개 무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제일 앞에 있는 무덤이 박혁거세의 무덤으로 추정될 뿐 어느 무덤이 박혁거세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는 국가에서 오릉의 모든 것을 주관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박씨 문중에서 주관하여 춘분 때는 숭덕전, 추분 때는 오릉 앞 제각에서 제사를 지낸다.
숭덕전은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세종대왕 때 건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고 선조 34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이후 경종에 이르러 숭덕전이라 불러지게 되었으며, 현재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고 제사를 지낼 때만 개방을 한다. 아직은 유교사상으로 여성 출입이 금지 되어있다 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오릉 앞 제각 안에는 의자만 있는데 그 의자 뒤에 위패를 두고 추분 때 제사를 지낸다.
숭덕전 뒤편으로 걸어 가다보면 알영부인이 태어났다는 알영정이 있다. 돌로 우물을 덮어두었는데 그 돌의 모양(네모,동그라미 등)으로 그 시대가 추정 가능하다. 또한 이 돌의 모서리를 보면 움푹 파여진 부분이 있다. 이것을 ‘철정’이라고 하는데 돌과 돌을 연결하는 것으로 돌을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알영정을 끝으로 오릉 문화탐방은 끝이 났다. 오릉을 걸어 나오니 부산토박이였던 내가 천년의 역사를 지닌 신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우리나라 전통·역사를 지켜온 것에 자부심과 긍지가 남다른 경주를 문화탐방을 통해 더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조세정 순경 112종합상황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