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새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펼쳐졌던 금요일 오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네 번째 문화탐방을 떠났다. 오늘의 탐방지인 첨성대와 월성, 계림 숲은 경주가 고향인 나에겐 학창시절 단골 소풍 장소이자, 친구들과 함께 각종 백일장, 사생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을 되살려 주는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유년시절로의 추억여행을 할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첫 탐방지인 첨성대는 국보 제31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신라 27대 선덕여왕 재위 당시 건축되었고, 현재 동양에서는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기구이다. 첨성대의 12개 하단부, 12개 상단부를 합쳐 24절기를, 창 부분의 3개 단까지 총 27개의 단은 신라 27대 선덕여왕의 재위를 의미하고, 첨성대를 구성하는 362개의 돌은 음력 평균 일 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과거 신라시대는 물론 최근 발생한 강력한 지진도 이겨낼 수 있게 내부를 일부 흙으로 메워두었다고 한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첨성대를 건축하면서 특별한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노력과 정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또 천 년 전 신라인들의 지혜와 기술 덕분에 자연재해로부터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가 지켜졌다고 하니 경주사람으로서, 또 신라인의 후손으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 요즘의 천문 관측대가 산 정상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첨성대가 평지에 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천문 관측기구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용도로 만들어 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는 해설사의 이야기는 기존에 첨성대를 단순한 천문 관측기구로 바라보던 내가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첨성대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두 번째 탐방 장소인 월성은 서기 101년 파사왕 22년에 신라의 왕성으로 축성되어 신라가 멸망하는 서기 935년까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달의 모양을 닮아 ‘월성’ 또는 ‘반월성’으로 불리며, 왕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이라고도 한다. 월성에 도착해보니,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10여 년 전 내가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이곳은 잔디가 무성한 벌판 같은 곳이었고, 학교 친구들과 소풍 와서 뛰어다녔던 장소로 기억이 나는데,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면서 신라시대 건물터가 발견되고, 토기, 기와, 철기 등이 발굴이 되었다고 하니 정말 놀라웠다. 특히, 벼루가 다수 발굴이 되어 예전에 이곳이 왕과 신하들의 문서 행정을 담당한 자리로 추정이 된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어린 시절 뛰어놀던 이 자리가 역사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고, ‘경주’라는 이곳이 정말 신라 천년의 역사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성 외곽에는 해자(垓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해자는 적으로부터 도성을 보호할 목적으로 성의 외곽을 둘러싼 도랑 또는 자연하천이다. 해자에 있던 물로 인해 바닥에 진흙층이 쌓이고, 이 진흙층에 천 년 전의 유기물들이 진공상태로 보존되어 문화층이 첩첩이 형성된다. 따라서 해자는 엄청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며, 유네스코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소라고 한다. 나는 여태껏 경주에 살면서도 해자의 존재며 기능을 전혀 몰랐고,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해자를 그저 최근에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번 탐방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해자의 가치와 기능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해자를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마지막 탐방장소인 계림 숲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로 유명한 장소이다. 신라 탈해왕 때 호공이 이 숲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빛을 내며 걸려있었고, 임금에게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열었더니 그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하여 성(姓)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고 하였고, 그 때부터 이 숲을 계림 숲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지금까지 전해진다. 계림 숲을 한 바퀴 걸으며, 초등학생 때 소풍 와서 친구들이랑 김밥도 먹고, 울창한 나무 사이에 앉아 그림도 그리고, 글짓기도 했던 추억이 떠올랐고, 10여 년 전에 왔을 때보다 더욱 웅장해진 자태를 자랑하며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살아있는 박물관인 ‘경주’는 천년 전 신라인들의 희로애락과 인생을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적 요지라고 생각한다. 이 번 탐방을 통해 경주에 살면서도 신라의 문화재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시선을 바꿀 수 있는 매우 뜻깊은 시간이 된 것 같다. 또한 경주 시민이자 경주 경찰로서 나의 고향 경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 경주에 새겨진 신라, 그 찬란했던 천년의 역사가 잘 보존되어, 앞으로 천년, 만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이 후손들에게 깊은 울림을 가져다주기를 소망한다. 박소연 순경형사과 생활범죄수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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