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두 번째 탐방장소인 국립경주박물관을 가기로 한 날이다. 촉촉한 봄비와 더불어 제법 옷깃을 여밀 정도의 쌀쌀한 바람까지 불어 왔다. 주말엔 번호표를 받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 맛집에서 비빔밥을 후다닥 먹고 박물관을 향해 다시 차를 탔다. 궂은 날씨라 실내 탐방이라는 안도감을 갖고… 잠시 후 나에게는 너무 친숙한 경주박물관의 웅장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는 길 중간에 박물관이 옆에 있었다. 그 후 버스통학을 할 때에도, 나이가 든 지금도··· 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무심했나 보다. 경주로 처음 발령받아 같이 탐방하는 직원들과 별로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머쓱해졌다. 경주박물관은 1975년 7월 2일 지금의 장소인 반월성 동쪽, 신라왕궁의 별궁인 동궁의 남쪽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먼저 신라 천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신라 역사관’에 들어섰다. 신라 역사관은 기원전 57년에서 기원후 935년까지의 천년왕국 신라를 만날 수 있는 전시관이다. 신라의 건국과 번영과정을 네 부분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실은 아득히 오래된 구석기시대부터 5세기 말 신라가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기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신라시대의 유물에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선사시대 돌도끼, 사라리와 구어리 무덤에서 출토된 부장품들을 보니 신라가 우연히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라 오랜 태동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탄생한 나라였고, 그래서 찬란한 역사를 꽃피울 수 있었던 근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2전시실은 신라가 4세기 중반 마립간이라는 지배자를 중심으로 고대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마립간과 그 일족은 금·은·금동으로 화려하게 세공을 한 각종 장신구를 걸쳤고, 또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도 썼음을 보여준다.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금제 허리띠, 장신구 등 국보, 보물들이 전시돼있어 말 그대로 황금의 나라, 신라였음을 증명한다. 화려한 금관 장식물 중 곡옥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나의 중·고등학교 마크여서 오래 전부터 친숙해서 그런가 보다. 제3전시실은 드디어 503년(지증왕 4년) 신라라는 국호와 ‘왕’이라는 호칭으로 바꾼 이후 신라의 영역확장과 중앙집권화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신라의 영토 확장을 보여주는 진흥왕 순수비 탑본, 전쟁을 대비해 쌓은 남한산성비, 명활산성작성비 등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화랑 두 사람이 나라를 위해 큰 뜻을 이루기로 약속하며 남긴 작은 임신서기석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개인들의 다짐과 노력이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제4전시실은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한 이후 안정된 사회에서 세련되고 화려한 통일신라 문화를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인구 약 100만명으로 추정되는 계획 도시였던 신라 경주! 그러나 통일 후 약 100년의 전성기 이후에는 치열한 왕위 다툼과 혼란을 겪으면서 결국 고려에 항복하며 천년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신라의 태동, 성장, 찬란했던 전성기, 그리고 아쉬운 멸망의 역사를 체험하고 불교미술Ⅰ, Ⅱ실이 있는 신라미술관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사천왕사지에서 발굴된 파편을 조합해서 복원한 부조상인 녹유신장상 3종 세트가 우리를 맞이한다. 1300여 년 전 고대 조각품의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생동감이 넘치는 정교한 표현이 두드러진다.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 527년 이래의 사리장엄구와 함께 통일신라까지의 불교조각들이 종류, 재료와 크기, 시대별로 정리돼있다. 앳된 미소를 머금은 불상에서부터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는 8등신의 불상까지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친숙하고 푸근한 신라의 불상들이다. 이 땅에서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신라, 그리고 또다시 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탓에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 돼 흘러가는 곳이 경주다. 지금도 불과 1~2미터 땅만 파도 신라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신라의 도로였다고 하는 경주고 앞 도로를 여전히 다니고 있지 않는가? 경주에 살면서도 잊고 있었던 신라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일깨워준 탐방이었던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오른다. 손정희 경위경주경찰 문화탐방동아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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