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종
경주신문 편집위원장
경주YMCA사무총장
요즈음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선거제도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제도는 유권자 득표에서 지고도 선거인단 선거에서는 과반수득표로 이길 수 있는 모순을 안고 있는데, 미국 건국 당시 교통과 통신의 미개와 시민의식의 부족, 그리고 州政府 중심의 기존 질서의 파괴를 우려하여 채택한 제도이다.
그동안 세번의 소수파 대통령이 선출되어, 우리나라였다면 열부번은 바꾸었을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200여년간 고수하고 있는, 연방국가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재미있는 선거제도이다.
<`고-부 갈등`이 심각하다.>
지금까지는 50번의 선거중에서 3번이나 소수파 대통령이 나왔지만 통합과 공존의 지혜를 발휘하여 무난히 지내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반복되는 혼전으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데 이를 빗대어 고부간의 갈등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어 고부(姑婦)갈등의 원조인 우리의 失笑를 자아내고 있다.
재검표를 둘러싸고 일어난 고어(Gore) 후보와 부시(Bush) 후보간의 갈등이 증폭되어 급기야는 흑백간과 보수, 진보 진영간의 갈등 등으로 번져서 폭발직전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은 40년전의 선거에서 `깨끗한 패배`를 인정한 닉슨 전대통령의 용기를 새삼 그리워하게 된다.
<닉슨의 `깨끗한 패배` 다시 주목받아>
1960년 대선에서 닉슨은 케네디에게 0.2%에도 못미치는 11만 1천표차로 패배하였다. 그는 선거결과에 불복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일던 일리노이주나. 텍사스주의 재검표를 요구하지 않았다. 11월14일자 중앙일보에 의하면 당시 닉슨은 재검표를 제안한 참모들을 설득하였을 뿐 아니라 여론의 지지에 대해서도 나라의 분열과 국가의 자존심 손상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사태를 수습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닉슨의 지지자는 물론 반대자까지도 "대통령과 국가의 명예를 맞바꾼 명예로운 선택"이라며 그의 용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그는 8년 후의 선거에 재도전하여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배워야할 지혜이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전통은 있다.>
좋은 것은 우리 것 남의 것 가리지 말고 배워야 하지만 허물은 남의 것 들추기에 앞서서 내것부터 고쳐야 한다. 더구나 `고-부 갈등`은 역시 우리가 원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4.13선거가 끝난지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거 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당시의 당선자와 차점자의 득표차이는 총투표수 12만6500표중 2만표에 가까운 차이가 남으로써 15%이상의 격차로 승패가 판가름났다. 그러나 차점자인 정종복 변호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김일윤 당선자와 경주신문을 선거법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김-정 싸움`과 `언-변 갈등`으로 발전되고 있다.
만약 불법이나 비리가 개입되었다면 한 올이라도 밝혀내고 응징해야 마땅하겠지만 확실한 증거없이 송사를 일으켜 공론이 분열된다면 그 후유증은 쌍방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법은 관용과 이해를 근거로 한 대화로서 해결하거나 `하늘과 같은 민`의 뜻에 따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비상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중시하는 고도 경주에서도 법에 호소하는 고발고소사건이 너무 많은 것같아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는 새천년을 맞으며 새 천년의 시대정신을 `관용`으로 설정하고 그 상징으로서 `처용설화`를 떠올리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천년이 되었건만 지도층의 偏狹과 我執은 우리를 오히려 실망시킨다. `처용`을 설화속에 가두어 두지만 말고 그를 오늘 우리의 삶속에 現存하게 하는 것이 지식인과 지도층 책임임을 잊지말아야 할것이다.
사람이 오래 살다보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며 선거는 계속 돌아온다. 비록 이번에는 패하더라도 민심은 정의의 편에 선다.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통합과 공존의 정신으로 민의에 맡기는 여유와 처용정신이 어느 때보다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