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선생이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있을 때 시인협회 세미나를 경주 유스호스텔에서 개최한 바 있었다. 대회를 개최하기 1주일쯤 전에 목월께서 경주에 오셔서 정민호, 서영수, 이근식 시인을 찾았다. 우리 세명은 목월 선생을 모시고 시청으로 시장을 방문하러 갔었다. 그때 목월 선생은 육영수 여사의 교양 지도를 위해 청와대에 출입할 때였다. 사전에 연락을 하였을 뿐인데 시청은 야단법석이 난 것이다. 목월 선생은 청와대 출입이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시장을 만나고 시협 세미나를 경주에서 열게 되었다는 것과 시장의 리셉션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까지 전달하고 돌아왔었다. 우리는 시장실에 동리 선생의 이야기도 나누며 당시의 한국 문단에 동리와 목월이 있다는 자부심도 함께 느끼고 돌아왔다. 당일이 되었다. 전국의 시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목월은 대회사에서 ‘여기 경주는 나의 고향’이란 말을 강조하였고, 당시 경주시장의 환영사와 리셉션에서는 우리 경주가 ‘동리, 목월 같은 문인을 배출한 곳’이라는 것을 특히 강조되었다. 밤이 되니 많은 회원들이 시내에 흩어졌다. 특히 쪽샘이 어디냐고 물어서 술을 마시는 회원들은 모두 쪽샘으로 몰려갔다. 특히 대전에 있는 박용래는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시고 호텔방에 들어와서 우는 바람에 그 방에 자는 사람은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아침에 투덜대기도 했다. 많은 회원들이 ‘경주의 쪽샘’을 되새기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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