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월성군에서 ‘군민의 노래’를 제정할 목적으로 경주문협에 의뢰가 왔다. 경주 출신의 문인 중에 이름 있는 분에게 부탁해달라는 전달이었다. 목월이 아니면 동리였다. 그때 김동리 선생은 국정자문위원으로 있었기에 나와 이근식 선생이 동리선생께 의뢰하자고 했다. 그래서 월성군 내무과장인 박종택씨가 서울 김동리 선생께 부탁하러 갔는데 정민호, 이근식 선생과 함께 세사람이 가기로 한 것이다. 미리 연락을 해 놓고 일요일에 가기로 하고 동리선생께 연락을 드리고는 세사람이 서울로 동행했다. 동리선생 댁에 들리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하니 동리선생께서 ‘한국일보’ 부근 어느 다방으로 오라고 했다. 우리는 그 다방을 찾아갔었다. 동리 선생과 만나서 어느 술집으로 갔다. 고향사람이 왔으니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하며 그 술집에서 거창한 자리를 만들어주셨고, 술대접을 거나하게 받았다. ‘군민의 노래’는 걱정 말고 내려가면 내가 김성태 씨에게 부탁하여 작곡까지 해서 경주에 가지고 가겠다고 했다. 1) 신라천년 옛 서울 경주 고을에/ 새나라 새 하늘의 새날이 왔네/ 나아가자 우리 모두 손을 맞잡고/ 지난날의 그 영광 되살려보세. 2) 첨성대 석굴암은 세계의 자랑/ 토함산 금오산은 경주의 기상/ 나아가자 우리 모두 손을 맞잡고/ 이 나라의 새 날에 꽃을 피우세. 그 후에 작사 작곡이 다 되었으니 경주에 오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선 월성군에 연락을 하니 군수 외에 여려 사람이 동리선생을 환영 차 경주역에 나왔다. 김동리 선생이 직접 작사하고, 작곡가 김성태 님께서 작곡하여 그것을 가지고 경주에 내려왔었다. 그 때 경주역에 환영하러 나온 분들은 군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이 나왔다. 당시는 ‘군민의 노래’ 였지만, 지금은 ‘경주시민의 노래’가 되어 있다. 작곡 작사를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수 없는 경주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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