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월의 첫 시집 ‘산도화’를 손에 넣은 것이 내 인생의 획기적인 운명적 사실이었다. 그 때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시집을 입수한 것도 우연한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시집 표지를 잡고 한참 보고 있는데, 표지 첫머리에 로 적혀있고 표지 오른 쪽에는 이라고 시인 자필로 적혀있었다. 그러니 서기로 1955년에 발행된 시집이란 뜻이었다. 나는 이시집을 들고 학교의 나뭇그늘, 교실, 심지어는 화장실에 앉아서까지 시를 일게 되었다. 그러니 이 작은 시집 속의 시들을 죄다 외우고 있었다.
머언 산 靑雲寺
낡은 기와집
山은 紫霞山
봄눈 녹으면
오리목
속잎 피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목월의 ‘청노루’
나는 이 시를 읽고 시의 순수감정에 놀라고 말았다. 이런 자연 속에서 이런 시를 빚은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다 버리고 이 시 속에 나오는 자하산, 속에 있는 청운사를 찾아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우선 자하산은 어디 있는 산이면 청운사는 어떤 절인가하고 친구들께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산과 절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시인의 시 속에 나오는 산이며 절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나의 생각 ‘시인은 돈이 많아서 달아서 쓰지 않고 이렇게 여백을 두지 않고 몇몇 자, 몇 줄씩만 쓰나보다’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시인이 되면 돈이 많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돈을 많이 벌려면 시를 잘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 시집에는 ‘나그네’라는 시가 나온다. 이 시는 조지훈과의 만남에서 ‘완화삼’이란 지훈의 지에 화답하는 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훈의 ‘강물은 흘러 칠 백리’가 목월은 ‘남도 삼백리’라는 시로 화답했던 작품이다. 시를 주고 받으면서 화답하는 사실을 요즈음은 찾을 수 없지만, 이 시대의 시인들은 이렇게 멋으로 살면서 시를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시집 뒤에는 발문이 나온다. 오늘날 ‘시 해’설과 같은 것이다. 첫 번째가 박두진, 다음으로 조지훈, 황금찬, 이런 순으로 되어있었다. 가장 마음을 담아 쓴 발문이 조지훈의 글이었다. 지훈이 발문을 쓴 연도가 을미년으로 되어 있으니 1955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