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율동 저수지 맞은편 즈음에는 경주에서 흔치 않은 이국적 외관을 자랑하는 한 채의 건축물이 눈에 띤다. 바로 김종수 화백(59)의 거처이자 아뜰리에다. 김종수 화백은 들꽃이나 자연풍경을 담아내는 작가다. 그의 정원 속 무리지어 핀 꽃들을 불러내 화폭에 담고, 다시 그림 속 꽃들은 그의 정원에서 화가와 호흡한다. 그의 그림에는 짙은 고독과 향수가 배여있는가하면, 위무와 생의 쉼표를 주기도 한다. 아날로그의 대표성들이 서정으로써, 나즈막하지만 농밀하게 흐른다. 유미적이면서 다소간의 폐허미를 가진 김종수 화백의 작품은 이미 미술 애호가들에게 꾸준하게 선호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스테디셀러다. 자연적이고 서정적인 그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는 것. 김 화백은 아뜰리에에서 울려퍼지던 깊은 공명속 음악처럼, 종소리의 맥놀이처럼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들을 그린다. 제비꽃 ,수선화, 도라지꽃, 쑥부쟁이들과 낮은 담장을 감아 오르는 허름한 농가의 장미들은 화가의 치열한 매무새를 거치면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화가가 늘 꿈꾸었던 모네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사는 그를 만났다. 지난달 28일, 유난히 햇살이 좋아 정원의 해당화가 첫 꽃망울을 터뜨렸다던 날, ‘그림공장’이라 자처하는 화가의 집을 찾은 것이다. 화가의 곁에는 사람의 온기가 묻어났다. 그 나이에 흔히 있을법한 노회함도 없었다. 순정한 표정도 청년의 것 그대로였다. 부산 억양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그는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구렛나루수염은 얼핏 모노톤의 영화배우같은 프로필로 보이기도 했다. 자연을 닮아 선하고 맑은 눈동자는 젊은날 꽤나 여심을 울렸을 것도 같다. 고독의 흔적위에 따스하고 소박한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시종,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작가만의 세계와 진정성있는 작가 정신을 강조한 그는 9월 22일부터 10월 22일까지 청도 ‘해브’ 갤러리에서 초대전시를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그의 아뜨리에 여기저기에는 작업중인 작품들이 여러 점 보였다. 다가오는 전시에도 들꽃들과 서정적인 풍경을 그린다고 했다. -예리하고도 소박한 미술세계... 독특한 처리와 서정성이 농밀하게 흐르는 색채감각 김종수 화백은 부산 출생으로 계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경주 작가인 그는 전문 작가로서의 길을 30년째 걸어오고 있다. 2007 KIAF 한국국제아트페어(코엑스/ 서울), 1995 현화랑-예술의전당(서울) 등 30회 넘는 초대개인전 외, 2008 코스타리카-한국국제교류전(한국국제교류재단/서울), 2006 천년의 황금도시 경주(북촌미술관/서울, 경주국립박물관/경주) 등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으며 신라미술대전 대상 (1995),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 5회(1985,86,89,90,92) 등을 수상했다. 화가는 뛰어난 기량을 지녔는가 하면, 소박하고 따스한 감성의 소유자다. 무엇보다도 농촌마을 율동에서 그림만을 그리며 치열한 예술가 기질에 휩싸여있는 작가인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유화기법에서 뛰어난 기량을 드러내며 예리하고도 소박한 미술세계의 영역을 확보해왔다. 그가 구사하고 있는 유화의 독특한 처리, 서정성이 농밀하게 흐르는 색채감각, 햇살이 손에 잡힐듯 민감하게 포착해내는 예리한 시각은 나름의 영역을 확보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당에 놓인 꽃들을 대담하게 위치시켜 그린다든지,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환경을 담담하게 바라보면서 짙게 우러나오는 서정을 화면 가득 흩뿌린다든가 하는 그런 마음의 배려와도 만나고 있다. 특히나 그의 작업의 주된 특징은 무엇보다도 현장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 위치한 자연을 지켜보면서 그로인해 야기되는 감흥과 정서를 그대로 옮겨 놓고자 하는 철저한 자연회귀 순응을 읽을 수 있다. 경기대학교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는 그의 작품에 대해 “그가 포착해내는 빛과 색채의 조화로운 접촉은 종래의 진부하고 상투화된 구상회화의 경직된 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애쓴 흔적이 지금의 그림에서 도출돼 나오고 있다”고 평했다. -“밀레의 아뜰리에에 홀딱 반했죠...10년간 그림 그리고 돈 모아 드디어 집 지었습니다” 화가의 정원 곳곳에 적절하게 심어져있어 매우 유기적으로 어울렸던 해당화, 백장미, 불두화, 모과나무, 감나무, 아이리스, 블루베리, 수국, 야생화 등의 꽃과 나무들에는 주인장의 살가운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건물 지을 때 기존 농가에 있던 나무들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지은 지 20년 되니 정원과 어우러져 조화가 되는듯 하네요” 울창한 탱자나무 울타리는 유럽 정원의 담장수처럼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고 수국이 한창 필때면 포토 존이 되고 한켠의 허름한 농가는 그대로 작품의 소재가 된다. 2층 아뜰리에의 내부에선 자신의 입지와 화가의 정체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 작품인 ‘화가의 아뜰리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묵직한 매스를 큼직하게 분리해 시원하게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음악에 미끄러지듯 흘러 화가의 공간에 화사한 생명을 더했다. 아뜰리에 한켠의 창을 열면 물결치는 청보리밭이 꿈인 듯 펼쳐진다. 맞은편 창을 통해선 호수의 잔물결이 일렁이는데 그 자체가 작품이다. 마치 유럽의 어느 아뜰리에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의 집은 어느 한 곳 화가의 손길이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다. 그의 손은 화가의 손이라기보다는 농부의 거친 손 마디를 닮았다. 그는 이 집을 짓게 된 배경에 대해 “89년 심상회 활동 당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골집을 찾던 차제에 동료 화가의 권유로 이 집 대지를 먼저 샀습니다. 이후 10년이 지난 99년에 이 집을 지었고요. 10년간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하고 돈을 모아 드디어 집을 지었습니다”고 했다. “9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 달 머물렀는데 ‘문화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트장 같은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한 거였죠. 밀레가 살던 바르비죵을 갔는데 밀레의 아뜰리에가 너무 아름다웠고 그 아뜰리에 건축이 그때부터 제 아뜰리에의 모델이 됐지요” 지베르니, 오베르 등지의 건축 양식에 홀딱 반해서 이 집을 짓게 됐다는 것. 화가는 프로방스 인테리어 책을 샀고 이 집의 기본 양식을 전형적 프로방스 풍으로 정했다. 전체적인 색과 형태와 재질은 오묘하게 잘 어울렸다. “제가 직접 시공을 했습니다. 이 집은 무뚝뚝하면서도 굵직한 남성적 느낌으로, 무게감있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구상했죠. 가정집에서는 흔치 않은 ‘인방(lintel, 창틀위에 돌을 올리는 양식)’을 손수 작업했고 장석 등도 일일이 직접 구입하고 타일도 직접 골랐습니다. 조적과 미장도 인부들과 같이 했고요” 착공후 7개월여 걸려서 여느 집 보다 두배 정도 더 걸렸다고 한다.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창호 디자인이었다. 벽면의 질감, 인방의 질감 등을 통일감있게 인테리어 했다. 창호의 나무틀은 100년 된 고재를 이용해 문틀을 제작하고 경북 영해의 200년 수령의 소나무를 2그루 구입해 한 달 반 동안 말려 제재소에서 문틀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집을 짓기 전, 공사장을 직접 찾고 조언을 구하는 등 일년간 인테리어 공부를 했다고. -“저는 아웃사이더입니다. ‘위리안치’하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생활속에서 얻어지는 소재로 그릴 것이고 생활이 곧 작품으로 이어지니까요. 예전 대학 재학중에는 아방가르도하고 실험적인 작품도 시도했었는데 결국,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지요” “저는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예술의 최신 유행이나 흐름, 사조 등에 휘둘리지 않고 저만의 스타일을 통해 자연주의적인 작업을 추구하는 것이죠. 대세에 편승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김 화백은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수십년간 그림만 그렸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림값도 20년간 올리지 않았구요(웃음)” 그는 지금도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여기는 내 소우주 공간이니 늘 가꿔야 합니다. 생각지도 않는 일거리가 생기기도 하고요. 우선, 그림 그리는 작업부터 시작하지요” 예전엔 아침 일찍부터 현장에서 하루 종일 그려, 많이 그렸을때는 50~70점 정도를 일년간 그렸다고 했다. 그런 성실함은 30회가 넘는 꾸준한 개인전으로 이어졌고 ‘그래서 이나마 이런 집을 지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지만 앞으로 70대가 되기 전 더욱 열심히 작업할 것임을 다짐하고 강조했다. “정원의 꽃이 개화하기 시작하면 시기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꽃이 빛의 각도에 따라 하루하루 달라지므로 서둘러 그리지 않으면 놓치고 맙니다. 부지런히 그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트레이닝을 많이 해야 합니다. 마음에 담아놓아야 하는 것이죠. 그림은 그냥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심상의 단련을 통해 연습해야 합니다. 심상을 끌어들여 그림으로 발현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그림을 그릴수 있습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려면 안에서도 깨치려는 노력이 함께 병행돼야 하듯, 화가는 충격과 자극을 동시에 필요로 합니다”고 하면서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작가만의 세계와 진정성있는 작가 정신을 강조했다. “저도 쉰 즈음, 힘들었습니다. 회의가 생긴 거죠. 방황도 따랐고요. 3년 정도 돌을 모아 돌담도 쌓았죠. 육신을 괴롭히면서 지난 과거도 생각하고 정리했죠. 이제는 편합니다. 열심히 그리니까 밥은 먹게 해주는 것 같아요. 하하” 부지런을 떨어야 겨우 작품 한 점이 나온다며 쉽게 그리는 것을 경계했다. “추사 선생의 치열한 정신을 본받아 이 아뜰리에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귀양을 간 죄인이 그곳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어 둠)’하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잖아요?(웃음)” 김 화백은 끊임없이 연마하고 작품에 매진할 것을 20년 된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자신의 집에 비유해 말했다. 김종수 화백이여. 앞날은 부디, 마침내 꽃길만 걸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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