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만든 복제품 중에는 국보급 유물이 많다. 전국 각 국립박물관, 전시관의 유물이 그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그의 작품은 진품과 구별하기 힘들다는 평을 받을 만큼 정교하다. 그는 바로 금속유물 복제 최고전문가인 ‘삼선방’ 김진배(56) 대표다.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35년째 금속유물 복제에 정통한 김 대표는 진정한 전문가이자 장인이다. 지난 7일, 경주시 하동 민속공예촌 내 작업장인 ‘삼선방’에서 만난 김진배 대표는 경주시에서 의뢰한 금관과 황남대총의 팔찌, 신라복식 중 허리띠 등을 의뢰받아 작업을 막 마쳤다고 했다. 유물들의 얼과 혼까지 재현시키고 있는 그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남자의 손이라기 보다는 여자의 섬세하고 고운 손에 가까웠다. 그 손끝에서 고대의 걸작유물들은 또 하나의 소중한 유물로 재창조 되고 있었다. 경주가 자랑할만한 국보급 장인으로서 그가 경주에 있다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다. 그동안 묵묵하게 그의 일을 돕고 있는 부인 박정희 씨와 함께 운영하는 작업장에는 그가 만든 황남대총 출토 금관 복제품, 감은사지 출토 사리기, 백제금동대향로 등의 복제품이 그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천직으로 여기며 전력을 다해 30년 넘게 유물의 복제에만 전념한 그에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옛 신라 장인이 그랬을까? 신라인의 숨결과 솜씨를 그대로 오늘에 재현해내고 있는 그는 바로 신라인의 정체성이자 후예였다. -금속공예계 독보적인 존재였던 아버지이자 스승인 김인태 선생 명성 이어 작업에 정진 그를 설명할 때 그의 부친인 고(故) 김인태 선생을 배제할 수 없다. 그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김인태 선생은 금속공예명장(제91-5)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금속공예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부친이 작고한 199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부친의 빈 자리를 메꾸면서 작업에 정진해 그가 복원한 유물만도 1000점이 훨씬 넘는다.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작업을 봐왔고 자연스레 관심이 많아졌고 입문하게 됐지요. 신라문화동인회, 박물관 답사 등을 쫓아다니곤 했지요. 동국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것도 이의 확장이었고요” 그는 대학 1학년 때인 1982년부터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가며 유물 복원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었다. “선친 타계후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때 돌아가신거죠.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저로선 본격적인 작업에 서둘러 매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선친의 기술을 거의 전수 받았을 때였고요” -수많은 복제품, 전국 국립박물관에 소장전시중이며 진품인지 복제품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 그가 지금까지 복제한 유물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금관, 장신구(허리띠, 귀고리 등), 청동기, 철기, 기와 등 그가 제작한 수많은 복제품은 현재 전국의 박물관에 소장, 전시중이며 진품인지 복제품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실물을 그대로 재현해내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1993년 국립부여박물관 무령왕관식 외 7종 복제를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부부총 귀걸이(1999), 국립경주박물관 천마총 목관모형(2002),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 제작과정 모형(2003), 국립민속박물관 황남대총 금관(2004),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전시유물 금동용두 등, 발해유물과 백제금동대향로(2005), 국립중앙박물관 요시노가리 특별전(2007),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황금유물 20점, 불교 조각(2010), 국립부여박물관 미륵사지 사리기(2011), 전북대학교 박물관 청동유물 동경 외 3종 복원복제(2011), 국립중앙박물관 성덕왕릉 십이지상 원숭이 상(2013), 구리 시청 쇠화덕 고구려 신발 제작(2016) 등 수많은 유물 복제품들이 전국의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어 선생의 진가가 발휘되고 있다. -한 작품당 사진만해도 수백 장 찍는 과정 통해 복제 할 수 있어, 섬세한 손길과 지난한 과정 끝에 완성 “수많은 문화재 유물을 복원했습니다. 그 작업 모두가 중요한 일이지만 굳이 손꼽으라면 2003년 백제금동대향로(국립부여박물관), 신라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관(국보 제191호) 등의 작품 등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경우 이 작업만 약 10개월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문화재를 복제하기 위해선 일단 박물관에 가서 실측을 하고 여러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는다. 대향로의 경우도 수백 장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복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모양도 모양이려니와 색채도 같아야 하므로 아주 작은 장식이라도 360도 돌아가면서 전체를 찍습니다. 하루 종일 한 작품에 대한 사진 작업만 해야 할 정도지요. 우리가 하는 작업은 창작이 아닌 그대로 똑같이 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실측과 사진을 비교하고 모형 떠 온 것을 바탕으로 분석하면서 복제 작업을 시작한다. 또, 황남대총금관의 관 부분은 다른 금관과 거의 유사하나 수식부 장식이 세 쌍으로 모두 6개여서 매우 화려한 장식을 자랑한다. 수식부 제작은 관보다 제작 기간이 더 오래 걸릴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손길이 가야한다고 했다. 수없이 두들기고 붙이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금관복제작업은 신라예술의 백미로 꼽히지만 화려한 외양만큼이나 정교하고 꼼꼼한 공정이 필요한 것. 또,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 의뢰로, 외국박물관 10여 곳에서 한국관 지원사업을 할 당시 황남대총 금관 10점, 허리띠 10점, 금동대향로 10점 등을 6개월간의 작업 끝에 완성했습니다”면서 그런 의뢰는 흔치 않는 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절대 대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정성을 들여 최선을 다합니다” “똑같이 만들려고 노력해서인지 제 염원대로 나오는 편입니다. 제작중 흡족하지 않으면 중간에 다시 작업합니다. 부부총 귀걸이 등의 경우, 제작하던 것이 금일 경우엔 녹여서 다시 판으로 만듭니다” 부부총 귀걸이 한 쌍의 경우, 0.7㎜의 깨알 같은 금구슬만 하더라도 하나에 6000~7000알을 붙여야 한다. 누금 기법(가는 금줄이나 모래알 보다 작은 금알을 늘여 붙여서 물형을 만드는 정교한 세공기법)으로 완성하는데 단일 작업으로는 꼬박 두 달여 걸린다고 한다. 구슬을 꿰어 몸에 달아 장엄하는 영락 수식도 마찬 가지다. 그만큼 완벽을 기하고 정밀한 작업이라는 것. 섬세한 작업을 계속해야하는 그의 시력이 걱정되는 기자에게 “돋보기 낀지는 오래됐어요. 15㎝이내 거리를 두고 작업을 하는 일이 많다보니 자연히 2년에 한 번씩 도수가 올라가고 있어요(웃음)”라고 했다. “똑같이 만들어 얼핏 보면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절대 대충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몇 회 사용하고 마는 단순한 행사용이라도, 어떤 곳에 납품 하더라도 똑같이 정성을 들여 최선을 다합니다. 제가 흡족하지 않으면 밖으로 작품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고 하는 대목에서 철두철미한 장인 정신을 발견한다. -“지금까지의 작품들, 전시 공간 마련해 한 곳에서 전시해보고 싶은 것이 작은 꿈”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유물까지 그가 작업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구리시청 아차산박물관에서 의뢰한 고구려 철제 유물 복제품은 모두 그가 한 작품들이다.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각각의 특징이 있지만 제가 경주에서 나고 살아선지, 금관을 비롯해 신라의 유물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신라유물들이 우수하고 위대합니다” 그의 유물 복원 기술과 복제품의 작품성은 수상 경력이 뒷받침해준다. 유물을 모티브로 해 팬던트, 목걸이 등의 창작품을 출품해 전국 공예품경진대회 특선, 전국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장려상을 차지했다. 93∼2001년 경북도 공예품 경진대회, 관광기념품 경진대회에서 9년 연속 금상과 장려상 등을 수상하고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행사 공로를 인정받아 도지사 표창에 빛난다. 그런데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건이다. 그는 판금, 주물, 누금 등 유물 전체분야를 복제하고 있어 각 분야별로 지정되는 무형문화재 지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친을 이어 대한민국 ‘명장’ 지정이라도 적극적으로 서둘러 그의 진가가 배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내년에 어떤 일들이 들어올지, 누가 어떤 일을 의뢰해올지는 모릅니다. 일년 계획을 세울 수가 없지요”라고 하는 그는 한가할 틈이 없을 만큼 수시로 전국 박물관 등지에서 의뢰가 들어온다고 했다. “손재주가 좋은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이 일은 엉덩이가 질기지 못하면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웃음).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매우 힘들기는 하지만 보람도 크고요. 나중에 아이들이 원하면 전수하고 싶습니다” “전국의 박물관에서 제가 만든 복제복원품이 전시되고 있을때 보람을 느낍니다. 자부심도 생기고요. 앞으로는 지금까지 작업의 결과물인 작품을 전시 공간을 마련해 한 곳에서 전시해보고 싶은 것이 작은 꿈입니다. 언제가 될런지는 모르지만요. 유물들이 전국에 흩어져 전시돼 있는데 시대별 유물의 비교를 일목요연하게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 보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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