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고, 남에게 바보 취급이나 받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지요”, “바라는 것 없습니다. 계속해서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은 아직 많아요” 그는 차량도 없다. 사륜 구동오토바이가 그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1973년부터 지금까지 농사짓고, 꾸준하게 생업에 종사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있는 이가 있다. 굳건한 뿌리의식 없이는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갬디미(내남면 이조1리)’에 살고있는 권순채(64) 시인이자 농부다. 선생은 평생 농사를 지으며 고향 향토사 연구를 거듭하면서 1985년부터 사라져가는 경주의 고유한 땅이름을 건져 내기로 한다. 또 경주 지방의 땅이름, 동제, 전설, 방언, 나무 등과 문화유적 등을 조사 연구하고 있다. 땅이름(지명) 관련책만 해도 시집까지 4권으로, 지금까지 총 9권의 책을 발간했다. 고속철도 기초노반 공사, 공공근로, 문화재 발굴현장 등에서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돈을 마련해 책을 낸다. 순박하고 부지런하기 이를데없는 선생은 우리 고유어의 바탕인 진한 한글 사랑과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토박이 땅이름’ 뿐만 아니라 ’토박이말’도 널리 수집하고 있기 때문. 지난 13일 선생댁을 찾았다. 서른 두 해째 수집하고 연구한 그 많은 지명과 유래와 의미를 주술처럼 외우며 속사포처럼 내뱉는 선생은 마치 ‘달인’ 같았다. 그간 기고를 하거나 자료로 모은 수백 권의 자료집에는 그간의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해 두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근거나 자료까지도 보관하고 있었다.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석하고 연구하고 정리하는데는 그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역사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근저일 것으로 보였다. 선생은 심각한 고도 근시를 앓고 있었는데도 삶의 언저리에서 보배를 이끌어내기를 그치지 않는 이였다. -농사짓고 직장생활하며 32년간 직접 발로 찾아 쓰다 ‘마을마다 이름있고/ 산과 들/ 논과 밭/골과 등성이 마다/ 이름 있고 뜻있다.//중략// 봄이면/ 매화꽃 곱게 피는/ 향기로운 고향 마을/ 그리움에 아름다운 옛이름// 철마다 곱고 고운/ 꽃피워 주면/ 옛마을 이름따라 그리웁고/ 마을 사람들 땅이름에 정들고/ 바삐 살아 가는 요즈음/ 옛 정취 사라져도/ 이름만은 옛날 그대로다’ -권순채 시 ‘토박이 땅이름’ 중에서. 권순채 선생은 1953년 내남면 망성1리 둥굴 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조1리 갬디미 마을에 살면서 고향 마을인 망성1리 둥굴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직장생활도 하고 있다. ‘토박이 땅이름’, ‘박 추억속의 그리움’, ‘토박이 마을 지킴이 나무와 숲’, ‘토박이 마을과 땅이름을 노래하다’, ‘한글과 농촌문화’, ‘농부와 수녀의 유별난 한글 사랑’, 시집 ‘풀꽃 나무들아’ 등을 발표하면서 최근엔 지난 32년간 직접 발로 찾아 쓴 ‘토박이 마을 땅이름과 나무(리얼북스 발행)’를 펴냈다. 이 책은 경주 지방의 땅이름, 동제, 전설, 방언, 나무 등을 조사 연구한 내용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토박이 마을의 땅이름과 오래된 나무를 찾아 떠난 30여 년의 기록으로 내남면과 황남동의 지명을 망라하는 것으로 사라져가는 땅이름을 찾아내기 위해 산천의 구석구석을 헤매며 발로 쓴 책이기도 하다. 전국의 땅이름을 모두 조사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 뿐이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일이어서 일부에 그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한다. -다섯가지 철학을 신념으로 삼고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각오” 선생이 하는 일을 보고 ‘그런 짓을 하고 다니면 돈이 생기나 명예를 얻나’ 이런 식의 핀잔을 받기 일쑤였고 때로는 수상한 사람으로 몰린 적도 하다했다. 또 땅이름의 유래를 성가시게 캐묻다가 말다툼을 벌인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무조건 참고 견디며 열심히 뛰어 다닌 결과가 오늘에 와서 책 한 권으로 묶여 나오지 않았는가’한다. 선생에게는 다섯가지 철학이 있다. ‘최고는 못되어도 최선을 다하자, 탑을 쌓되 아름답고도 단단하게 쌓아라, 선의로 남을 돕자,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우자, 나를 시기하는 주위 사람들도 사랑하자’등 다섯가지 철학을 명심하면서 오늘도 땅이름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우리말과 전설, 나무 등 풍속과 풍습들도 조사 연구해 볼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 그의 공로에 대한 시상은 거의 전무한 편이다. 관심도 부족하고 지원 한 푼 없음에도 지속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동력을 묻자 “제가 하지 않으면 후대는 할 수 없는 일이고 기록으로 남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해두지 않고 기록해 두지 않으면 묻히고 잊혀지고 말것이니까요” 라며 기록의 중요성을 힘주어 강조했다. 선생은 이 많은 양의 원고도 직접 육필로 쓰고 아들 유름씨가 워드 작업을 해 보관해두고 있다. 선생은 남이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시대의 마을들의 땅이름을 조사하고 기록했다. “땅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기록을 할때는 먼저 그곳의 도시 이름이나 거기에 따른 땅이름을 적거나 말하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나 문화,문명이라도 기록이 없으면 묻히고 잊혀지는 법이죠”라고 한다. 선생이 기록한 30여 년의 값진 기록은 소중한 우리문화 자산으로 ‘으뜸’이다. -한 동네 땅이름 조사하려면 10~20번 찾아가야 선생은 시간을 내어 한글 새소식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한글학회 (전)근화여자 중고등학교 교장 정의순(베드로) 수녀와 함께 식물채집을 하게 된다. 한글새소식에서 전국 지명에 대한 글을 자주 접하게 되고 우리 주변에도 많은 지명이 널려있음을 공감하게 되고 선생이 살고 있는 마을부터 조사하기 시작했고 이는 내남면 전체를 조사하는데 이른다. “수녀님과 학교 차로도 움직이고 시내 버스로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내남면, 선도동 등 본격적으로 조사한 것은 1987년부터입니다” 그렇게 조사한 결실을 처음 낸 것은 1993년 ‘토박이 땅이름’으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다. “주민들도 땅 이름에 대해 알지 뜻은 모릅니다. 자료 수집 후 연구를 해야 합니다. 조사를 하면서 동제까지 조사하게 됐습니다. 마을과 동제, 그리고 마을의 나무는 불가분의 관계지요. 한 동네를 조사하려면 골짜기 이름 논이름, 개울이름 등을 알기 위해 10~20번 찾아가야 합니다. 지명을 조사하다 보면 남의 족보까지도 다 알아야 합니다(웃음)” “땅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조사해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나무, 바위, 산, 지형, 풍수, 인물, 역사 등 이렇듯 지명을 연구하면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죠. 벼슬 이름까지 다 나온다니까요” 30여 년간 조사해도 모르던 것을 최근 알아낸 것이 있을 정도로 지명은 다양하다고 한다. 늘 조사를 하다가도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무척 기쁘다는 그다. 또 신라문화동인회 회원으로 전설 조사나 경주문화유적 지도를 만들 때 협업하기도 했다. -에피소드...“죽다가 살아났죠” “에피소드 많았지요. 아들과 노거수 조사하러 가다가 안심1리 청도마을에서 막다른 길을 만나 오토바이가 낭떠러지에 쳐박혀 두 시간만에 건져 내고도 조사를 마친 일, 임도 관리인을 할 때,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낭떠러지에 떨어져 오토바이 열쇠조차 잊어버린 일 등 그럴때는 죽다가 살아났죠” 망성, 비지1리, 박달2, 3, 4리, 화곡1,2리 등은 수도 없이 갔다고. 산이 많아야 지명이 많다고 한다. 산에는 골짜기가 많고 산등성이, 골짜기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주민들과 말다툼을 한 적도 있고 자꾸 캐묻는다고 욕도 많이 얻어먹었지요. 하하. 지명 조사를 하다보면 순우리말과 방언과도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지요. 지명에는 순우리말이 있는가하면, 한자어와 순우리말의 조합, 순수한자 지명 등이 있습니다. ‘냄비, 둥굴, 도꼬불, 갬디미, 새들, 시루골, 너븐드리, 못골’ 등 순우리말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 편이고요” “하찮게 내뱉는 한마디 말속에 우리 역사와 얼과 정이 살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매년 조사를 하면서도 땅이름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땅이름을 찾고 바로 잡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통해 우리의 문화를 우리가 지키는데 앞장 설 것입니다” -“경주시 12개읍면, 11개동 지명까지 조사하고 싶습니다. 경주시 전설집도 집대성하고 싶어요” 선생은 차후에도 내남면의 전설, 유적, 문화재 등을 다룬 자료를 묶어 발간할 예정이다. ‘경주 전체 지명 조사는 누가 하던지 하긴 해야 한다’는 선생은 종신토록 경주시 전체 지명에 대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대락적으로도 조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경주시 12개읍면, 11개동 지명까지 조사하고 싶지요. 또 노거수, 희귀목, 나무들의 경주 유입 연원 등을 조사해 집대성하고 싶습니다. 이들의 기초 자료는 대강 모아 둔 상태입니다. 경주시의 전설도 틈틈이 조사를 해 자료를 확보 해 둔 상태고요. 경주시 전설집은 반드시 조사를 마저 해야 합니다. 경주 방언도 연구해야 하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네요(웃음)” 발품을 팔아 수집한 자료들은 전문가에 제공한 적도 많다. “조사는 제가 하지만 연구는 학자가 해야 할 몫”이라고 하면서. 선생은 현재 전국농업기술자협회 통일회원(종신회원), 신라문화동인회 자료분과위원장, 남경주문화연구회 부회장,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문학세계 수필 부문 신인상(등단), 2014년 자유문학 민조시 부문 3회 추천, 2016년 한국신춘문예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향토 사학자, 수필가, 시인, 농부로서 그는 제2회 전국농산물품평회 유기농산물부(콩:재래종) 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제’를 주선해 지내고 있다. 선생은 또, 세속오계를 실천한 신라 화랑 ‘귀산과 추항 숭모제’를 2011년부터 주체적으로 주관해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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