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주의 문화재 복원 이전 상태인 1920년대말에서 1930년대 초, 경주 문화재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희귀 사진들이 최근 대거 공개됐다.
90년 전 경주문화재와 발굴현장이 담긴 이 사진들은 한국의 십이지상에 매료돼 파괴된 원원사 석탑 등을 재건하고 사진으로 남긴 ‘노세 우시조(能勢丑三, 1889~1954)’의 업적 덕으로, 실로 90년만에 그가 그토록 몰두하고 사랑했던 경주에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은 노세 우시조라는 인물과 그 사진들이 사라질 위기에서 가치를 알아보고 보관해 온 일본 나라시 문화재 전문회사 ‘아스카엔(飛鳥園)’의 감동적인 스토리로 집약된다. 또 자칫 사장될뻔한 경주 유물사진들을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도 우리땅 경주에서 소개될 수 있도록 공을 들여온 경주학연구원(원장 박임관)의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간과되서는 안된다.
경주학연구원은 지난 2014년부터 아스카엔 측과 교섭한 끝에 지난해 12월 유리건판 3700여 장을 복제 촬영했다. 이중 700여 장이 한국과 관련한 사진과 실측도면이며, 그외 일본과 중국의 문화재 사진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스카엔에서 미처 정리되지 못한채 보관해오던 1920년대말-30년대초의 한국 관련 문화재 유리건판 필름 700여 장을 재촬영해 공개한 것.
이 사진들은 일본인 건축·고고학자였던 노세 우시조가 일제강점기에 황복사터, 헌덕왕릉, 원원사터 등 경주 일대를 발굴 조사해 유리건판에 남긴 사진들로 정비되기 전의 유물들 실태를 확인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노세가 찍은 사진과 도면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세 우시조...신라 문화재만 보면 감격해서‘감격선생`, 한국 십이지상 중요성 가장 먼저 파악하고 선구적 업적 남겨
노세 우시조는 1926년 경주 서봉총 금관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의 수행단 일원으로 경주와 첫 인연을 맺는다. 당시 교토제국대학 공학부 건축학교실 조수였던 그는 37세였다. 이 짧은 경주 방문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경주의 문화유산에 흠뻑 빠지게 된다. 특히 십이지신상에 매료돼 12지와 관련된 국내 유적지는 모조리 찾아다니며 1931년까지 당시의 경주 문화재와 발굴현장을 유리필름에 남겼다. 교토의 재력가 자제였던 그는 경주 방문을 계기로 조선의 문화유산에 매료돼 사비까지 털어 한동안 조선 각지를 뒤지고 연구하는 생활을 계속한다. 노세는 1926년 경주 방문 이래 1931년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조선을 찾아 유적 견학과 (발굴)조사, 그리고 문화재 복원을 벌인다.
고대학협회 이사장이자 동료 학자였던 쓰노다 분에이는 ‘고고학 교토학파’라는 글에서 “노세는 열정적으로 조선 고고학과 일본 석조공예사, 회화사를 연구했다. 특히 그는 신라 문화재만 보면 감격을 해서 당시 경주에서의 애칭이 ‘감격선생’으로 불렸다”고 소개했다.
이번에 소개된 사진 중에서는 특히, 1928~1931년 원원사 터에 완전히 붕괴된 채 벼랑 아래로 방치돼 있던 삼층석탑재를 수습하고 탑지를 발굴 조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복원하는 전 과정을 도면과 함께 유리건판에 남겨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밖에도 헌덕왕릉과 구정동 방형분, 진평왕릉, 흥덕왕릉, 경덕왕릉, 성덕왕릉, 김유신장군묘 등 신라 왕릉을 비롯해 개성 고려왕릉에 대한 조사도 병행해 사진으로 남겼다. 이번 사진자료 발굴은 지금처럼 정비·복원되기 이전의 신라 왕릉 옛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박 원장은 “노세 우시조가 원원사 석탑 복원에 얼마나 정열을 쏟아 부었는가는 그의 조사행적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경주 황복사지 십이지상과 헌덕왕릉 십이지상을 수차례 걸쳐서 발굴조사를 했다. 원원사 십이지상과 관련해서 예천 개심사지 석탑, 구례 화엄사 서탑, 경주시 미방리 폐동곡사지, 암곡리 무장사지 등의 십이지상을 최초로 주목한 것도 노세 우시조였다”면서 “또한 한국 십이지상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그와 관련한 선구적 업적을 남긴 연구자였다”고 했다.
-이 귀중한 사진들이 경주에 오기까지...“경주 관련 사진 대부분이므로 사진들의 고향인 경주로 와야한다”
그동안 미공개로 있던 사진 자료가 소개되기까지는 경상북도와 (사)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경주학연구원은 2014년 12월 아스카엔에 처음 방문했다. 2015년 4월경부터 구체적이면서 본격적으로 접촉해 한국관련 문화재 사진 2만5000여 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경비 마련이 시급했다. 2016년 연차적 사업으로 추진해 경북도에서 당장 급한 경비가 지원됐다. 경주학연구원이 경비를 구하기 위해 고심하던 과정에서, 모 국가기관에서 아스카엔 측에 교섭을 제의한다. 자칫 그 기관과 일이 진행될려는 찰나였다.
사실, 2009년경부터 이 사진의 소재가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2014년 이미 여러 민,관기관에서도 교섭제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경주학연구원은 아스카엔측에 간곡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린 경비도 부족하다. 그러나 열정 하나로 시작한다. 이 사진들을 현재 상태로 사장되게 할 순 없다. 빛을 보게 해야 한다. 경주 관련 사진이 대부분이므로 이 사진들의 고향인 경주에 와야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당시 유리건판 필름은 비용도 비쌀뿐더러 일본서 가져와서 찍고 다시 일본에 가져가는 등 상당히 공을 들인 작업이었기에 “그 분(노세 우시조)의 공을 충분히 현창하고 지금껏 보관해 온 아스카엔도 충분히 선양하겠다”고 설득했고 아스카엔측은 경주학연구원의 진정성을 인정해주었다.
한편, 이 일이 성사되기까지는 아스카엔과 인연이 있는 가종수 교수(일본 슈지츠대학)가 가교역할을 했다. 아스카엔은 100여 년 된 문화재 전문 사진회사로 창업자는 오가와 세이요(小川晴暘)라는 이다. 사진가 오가와 세이요는 1918년, 아사히 신문사에 입사하고, 1921년 문화재 전문 사진사로 아스카엔을 창사했다. 가종수 교수는 일본 유학중, 오가와 세이요의 큰 아들(당시 교수)에게 수제자로 눈에 띄었고 그 인연으로 아버지 오가와 세이요가 보관해 온 한국 문화재 사진들에 대해 듣게 된다.
가종수 교수는 한국의 고고학지에 오가와 세이요가 보관해 온 노세 우시조의 문화재 사진에 대해 발표한다. 노세우시조의 사진에는 원원사 사진들이 대거 있음도 알려진다. 2014년, 가종수 교수는 경주학연구원에도 소개해 박 원장 일행이 일본으로 가게 된다.
박 원장은 “지금의 결실이 있기까지는 작은 학술연구 모임의 힘으로는 경비도 그러려니와, 여러 과정적 난관으로 힘이 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자존심과 사명감으로 이 일을 추진하게 됐다. 자칫 다른 기관으로 넘어갈 뻔했던 자료들을 다시 원위치시켜 승낙을 받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처음에는 인화해서 가져가라고 제의했으나 우리 손으로 직접 찍겠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은 아스카엔측이 갖고 우리측은 보고서 작성과 전시를 하는 조건으로 2016년 11월 드디어 협상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아스카엔 측의 카메라 점검 등을 위해 12월 연구원 팀이 다녀왔으며 노세 우시조의 사진 작업이 두 달여 소요될 것이라는 아스카엔의 예측을 나흘만에 완료시켜 그들을 놀라게 한다. 박 원장은 “현재, 이번에 공개되는 사진 이외, 나머지 사진들도 우리와 같이 작업하자는 제의까지 받은 상황이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노세 우시조의 사진자료가 어떻게 아스카엔 측에 소장돼 있었을까?
일본 패전 후 많은 재산가가 경험한 것처럼 노세가의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한 것에 기인한다. 그 때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촬영한 한국 문화재사진의 유리 건판도 유리가게 손에 건너가 녹여져 유리창으로 재생되려던 시기에 노세의 제자인 야스이 료조(전동지사대학교수)가 오가와 세이요에게 부탁해 아스카엔이 구매해 소장하게 된 것이다.
-이번 성과의 의의, “1920년대말~1930년대 초 경주 문화재 상황 통해 복원과 정비에 대한 오류 바로 잡을 수 있어”
귀중한 협약을 이끌어 낸 경주학연구원 박임관 원장은 “그동안 국내 여러 기관에서 접촉을 시도했지만 우리가 협상에 성공해 결과치를 도출해 국내에 최초 소개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겠다”면서 “현재 경주의 문화재는 복원 정비를 해놓은 것들이 많다. 복원 이전에의 상태를 모르는 상황이 대부분으로, 사진 공개를 계기로 1920년대말에서 1930년대 초에 경주 문화재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준다는 점”을 큰 성과로 꼽았다.
또 “우리가 몰랐던 실체에 대해 접근함으로써 고고학적, 고고미술학적 관련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물꼬를 틀수 있는 자료들이다. 당시 경주 문화재 현황들을 사진기록을 통해 복원과 정비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한 의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의 경주 유적이 처한 상황을 입증하는 기록이기 때문에 향후 문화재 연구를 위해 보고서 발간 및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올 상반기에 열릴 전시를 즈음해서 그들을 초청하고 명예시민증 수여도 추진할 예정이다. 노세 우시조는 중국, 일본, 한국의 십이지신상에 대해서 처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이다. 이에, 한중일 3국의 십이지신상에 대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스카엔측과 잘 협상해서 나머지 사진자료들도 소개하고 싶은 것이 희망이다”면서 이는 보람된 일이자 경주인으로서 당연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