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어학자도, 방언 학자도 아닙니다. 재야 학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연구하고 수집해도 인정하지 않았고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경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가 ‘제1회 경주말 겨루기 한마당’과 ‘경주말(語)의 보존과 활용방안’ 학술발표회 및 출판기념식을 열면서 특별하게 조명된 이가 있었다. 바로 아무런 대가없이 경주말 수집을 35년간 지속적으로 해 온 김주석 선생(79)에 대한 헌사였다. 김주석 선생은 무언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몰두하고 실천하는 것의 최종적 미학을 보여주는 이였다. 만시지탄이었지만 지난 20일, ‘경주말(語의 보존과 활용’ 출판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서 경주를 찾은 선생을 귀하게 만났다. 한 사람의 지지자도 없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고향 경주말의 파편들을 모아 오늘에서야 조명되기까지 인고의 길을 오롯하게 혼자 걸어온 선생의 ‘육성’은 너무나 생생했고 외경스러웠다. 각고의 노력으로 발로 뛰면서 귀중한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한 선생에겐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든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것이며, 그 근간에는 경주말에 대한 그의 끝없는 애정과 사명감이 진하게 배여 있었으리라. 화공학도로 자신의 천직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남는 시간을 모으고 짜내 경주말 수집에 힘쓴 선생의 업적은 이제야말로 구체적으로 재조명돼야하고 빛을 발해야 한다. -경주의 소중한 문화와 언어 유산을 물질적 보상이나 정신적지지 없는 가운데 주목하고 수집 실천 선생은 1938년 경주시 건천읍 용명리 장승마을에서 태어났다. 경주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 졸업했다. 이후 한화그룹에 입사해 에너지 산업과 화학 공업 분야에서 평생을 헌신했다. 한국화약 상무와 계열사인 경인에너지 상무를 거쳤다. 지금은 경기도 용인시에서 살고 있다. 김주석 선생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35여 년 전부터 발품을 팔아가면서 고향에 대한 애향심과 고향 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오래 전부터 경주말에서 많이 쓰이는 방언이나 어휘들, 나아가 지역에서 즐겨 쓰였던 속담 등 소중한 문화와 언어 유산들의 현황을 어떤 물질적 보상이나 정신적 지지가 없는 가운데 주목했고 수집을 실천했다. 마냥 수집하는 일에만 매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선생은 우선 중간보고서 격으로, 영남대 최명옥 교수와 함께 ‘경주 속담·말 사전((최명옥 공편저, 2001년)’과 ‘경주지역어 텍스트-1(역시 공편저, 2007년)’ 등을 편찬해 세상에 경주말의 현황과 자료를 제시했다. 이런 노력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올해 ‘경주 지역어 대사전이라는 방대한 결과로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보석같은 말이 사전에 없다는 것은 화나는 일, 그 보석을 나라도 주워 모아야겠다고 생각” 선생이 경주말 채집에 나선 1983년엔 경인에너지 이사를 마치고 대구 경상석유 사장(경인에너지 계열사)을 하던 때였다. 지금까지 35여 년 간 경주말을 채집한 것. 국내 굴지의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고향 경주말에 관심을 가졌던 계기를 묻자 “좋아서요. 보석이잖아요? 매일처럼 보석이 쏟아지는데요? 지금도 그 보석을 수집하고 있어요(웃음). 일차적으로 보석같은 말이 사전에 없다는 것은 화나는 일이었어요. 내 눈에는 전부 보석인데 큰 사전에도 없으니 그 보석을 나라도 주워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했다. 사명감에서 시작해 매주 짬이 날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 현장에서 어휘 수집에 나섰다. 방법론을 세우기 전에 어휘와 그 활용형들을 카드에 하나하나 적어나갔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양이 옛날 15Kg 들이 큰 사과 상자 5개 분량으로 늘어나게 됐다고 한다. -유일한 조력자, 방언학 연구자 영남대 최명옥 교수와의 인연 대구 경상석유(경인에너지 계열사)를 운영하던 시절, 대구 서점에서 우연히 ‘월성지역어의 음운론(1982년)’이란 책을 보게 되었고, 당시 영남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방언학 연구자 최명옥 교수를 수소문 끝에 만나 경주말 수집과 연구에 뜻을 모으게 되었다. 선생은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일을 맡았고, 최명옥 교수는 이를 학문적,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에 치중했다. “생래적으로 알고 있는 말이었지만 품사도 모르는 사람이 사전을 만들려니 막연했습니다. 학문적 바탕과 조사 방법, 방향제시 등에 대해 최 교수가 일러 주었지요”흔히 쓰는 말인지, 드물게 쓰는 말인지, 반대어, 유사어를 단어마다 달아달라는 최 교수의 주문을 받았던 것. 이렇게 협력자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선생의 경주말 수집은 더욱 진척을 보게 된다. -‘경주말은 겨레말의 줄기세포’...경주말을 모르고는 한국어를 연구할 수 없어 ‘경주말 속담 말 사전’ 서문에서 경주어는 현대 한국어의 발상지이자 한국어의 시원을 위해서는 경주말 연구와 이론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이의 근거로 선생은 “삼국통일 후 통일신라는 경주가 수도였으므로 경주말이 당시는 전국의 중심언어였습니다. 신라가 망하고 경주의 귀족 즉 상류층이 개성으로 가서 고려 조정 500년 동안 신라 귀족으로서 대접받고 살았지요. 고려 언어는 상류 계층이 사용하는 것을 중심으로 흘렀고 조선의 개국후 한양으로 옮겨 오지요. 그래서 현대 한국어는 경주말을 모르고서는 온전치 않은 것이지요. 다시말해 ‘경주말이 우리 겨레말에 줄기세포’라는 것입니다. 줄기세포이기에 모든 언어로 분화돼 나가는 언어이고 뿌리인 셈이죠. 경주말을 모르고는 한국어를 연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 강조했다. 이는 선생의 주장이기도 하고 동시에 방언학 전문가인 최명옥 교수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 작업 초기에는 뿌리인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언어인줄 몰랐던 거죠” 선생은 경주말에는 고저장단이 분명한데 표준말에서는 액센트를 무시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하면서 ‘겨레말의 고저장단의 표준은 경주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했다. 높낮이나 장단이 살아있는 연극대사는 세계 어디에 있는 한국 사람도 다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고 하면서 그 높낮이가 ‘바로 경주말’이라고 강조했다. “어휘만 포준어로 사용한다는 것뿐이지 고저장단은 바로 경주말입니다. 이것이 경주말이 한국어의 시원에 맞닿아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근거입니다” -‘경주지역어 대사전’ 올해 출간할 예정, 최종판 출간 위해 열성 다해 ‘경주 속담 모음집’에서는 경주 지역민의 삶의 편린을 보며 경주인들의 역사나 풍수, 언어와 사고 방식을 유추할 수 있다. 이에 선생은 “말하는 식으로 썼습니다. 말을 옮겨쓰는 것도 힘들었지만 다른 이가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발음대로 썼고 제다로 쓸려면 어원을 밝혀 쓰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런데 그러지못해 아쉽습니다” 고 전했다. 단순한 의미의 설명을 넘어 경주 지방민들의 언어생활에서 활용까지를 제시한 선생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속담만큼 멋진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속담을 제대로 활용하면 언어 생활이 풍부해지죠. 표현이 아주 맛깔져요”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다면서 경주말은 분명히 전해지고 있는데 표준어에 해당하는 말이 없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손등 맞기는 ‘심패’라는 경주말이 분명히 있는데 사전에는 없는 식이다. 이외에도 동식물 이름은 부지기수라고 한다. 김주석 선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경주말 어휘가 결집된 사전을 만드는 일이다. ‘경주지역어 대사전’을 올해 출간할 예정인 선생은 최종판 출간을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다. 현재 나온 사전에는 약 3500여 개의 어휘가 실려있는데, 집대성될 사전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어휘들이 수록될 예정이다. 곡용 어미와 활용 어미의 변화 등도 실어 놓았으며 예문만 6만개를 수록했다고 한다. 이에는 민속, 민간약(조약), 문화인류학적 자료까지 망라돼 있는 것. “혼자서 한다는 것이 역부족임을 절감합니다. 소위 ‘내 영역’에 국한 될 수 있어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환경이 조성된다면 누락된 것들에 대해 연구를 집약해야 할 것입니다”고 하면서 “한 지역방어사전으로는 제대로 몇 만 단어가 수록된 사전은 없습니다. 저는 이제 불씨를 겨우 일으킨 정도에 불과하지요. 앞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방언 지도도 제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정확한 경주말의 구현도 가능하고요. 경주말의 기존의 억양을 다시 찾아주면 되는 것이니까요” 라고 했다. -‘전자 경주방언사전’ 만들어야...활자만의 사전은 이용에 ‘제한’ 선생은 그간 35년간 작업 중 표기의 일관성을 원고지 4만 장 분량 내내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녹음한 것을 받아쓰는 것은 지루하고 귀찮었지요. 표준어 대역을, 단어별로 달았다가, 문장별로 고치느라 두 번째로 다시 쓰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했습니다. 그건 본보기로 삼을만한 방언사전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출판사엔 사투리를 교정 교열해 줄 이가 없어 공저자가 직접 교정을 볼 수밖에 없었는데, 워낙 다양한 내용에, 방대한 분량이라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집중해서 봐야만 했었죠” 또, “가장 듣기 거북하고 싫었던 말은 ‘아직도 그 일을 계속 하고 있나?’하는 시선이었습니다. 별난 일에 몇 십 년씩 매달려 있는 저를 지켜보기가 무척 안타까웠나 봅니다”고 했다. 소중한 경주말의 보고를 정리하고 활용하는 일에 있어 동참자의 부족과 주변의 무관심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선생을 만나며 선생에 대한 조명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조금씩 선생의 공이 알려지고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선생의 업적이 더욱 빛을 발하려면 살아 있는 자산으로 활용해 더욱 다양한 결과물을 생산해내는 것이라고 본다. 선생은 정만서 테마파크 설립과 경주말을 소멸 위기 언어로 유네스코에 등재할 것과 경주말 교육 훈련, 경주말 보전육성조례제정, 경주말 보전마을지정 등을 희망했다. 특히, “살아있는 사전, 즉 전자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활자만의 사전은 이용에 제한이 있지요. 계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 살아있는 자료가 될 것입니다. 이 사업에는 재원이 확보돼야 하며,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적어도 경주가 표본으로서 방언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김주석 선생이 발굴한 ‘정만서’이야기는 다음호에..,경주말의 원형과 활용 입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어 다음호에선, 기상천외한 행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해학가의 일생에도 주목했던 선생의 저서 ‘거꾸로 본 정만서 세상’을 바탕으로 경주말의 활용을 다룰 예정이다. 조선시대 말기를 살다간 ‘정만서’의 생애와 기행, 일화 등을 발굴해 채집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선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경주지역에서 활동했던 뛰어난 언어 사용자인 춘강(春岡) 정만서(鄭萬瑞,1836~1896)의 자료와 현황들을 수집, 정리해 ‘거꾸로 본 정만서 세상’을 펴낸 것이다. ‘거꾸로 본 정만서 세상’에서는 선생이 편찬한 사전과 더불어 경주말의 원형과 활용을 입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큰 구실을 한다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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