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필라델피아미술관을 비롯해 영국과 호주에서 줄줄이 초대전을 갖고 한국의 미와 그 안에 스며든 철학을 알려온 현대도예가 윤광조(70) 선생이 경주 안강읍 자옥산과 도덕산 자락 바람골에 살고 있다. 한국 작가에 대한 호평이 타 장르에선 매우 드문 일이나 전 세계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회에 이어 앞다투어 선생의 작품을 구입소장하고 있다. 흔한 조수도 두지 않고 청소부터 흙 만지고 불가마에서 굽는 일까지 오롯하게 혼자 해내는 이 비범한 대가는 유명세와는 거꾸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그 산곡에서 선생은 구름과 폭풍, 그림자와 강, 비와 바람에 담긴 사색들을 붙잡아 흙으로 빚은 작품 안에서 이야기한다. 인터뷰 내내 그의 호방한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지만 기자는 시종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대가 특유의 여유에서 발해지는 천진함과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는 비범한 카리스마는 그렇게 공존했다. 지난달 30일, 작업장을 찾은 그날도 선생은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가을비가 제법 내리던 안개 자욱한 ‘급월요’의 전경은 눈빛 형형한 그를 더욱 외경스레 보이도록 했다. 고희를 넘긴 나이지만 ‘청년’의 기개는 충천했으며 기자가 선물로 전한 국화에 연신 향을 맡는 선생은 천상 예술가였다. 윤광조 선생은 ‘예술은 기술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며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의 정체성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면서 줄곧 정신성에 대해 일갈했다. 문화 예술의 지나친 물질화를 경계했고 자본주의 말단을 쫓는 현상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웠다. 스물아홉때 도자대전공모전에서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다 흘려보낼 수 있는 대자연의 길을 가고 싶다”는 수상소감은 지금 선생의 현주소와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이 예술인줄 아는 우(愚)를 깨트리며, 선생의 지순한 작업이야말로 세계적 소통의 열쇠임을 깨달았던 만남이었다. 선생의 존재는 그 자체로 경주의 자부심이고 치유이자 힘이었다. -전통에 대한 이해와 사랑,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충족시키는 곳이 바로 ‘경주’ “내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작업의 세계가 곰삭아야지 자연스레 향이 번질거 아니요?” 선생은 1994년부터 이곳에 천착해 20년 넘도록 살고 있다. 경주에 정착한 것에 대해선 “전통에 대한 이해와 사랑,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즉 두 날개를 가져야 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곳이 바로 ‘경주’ 라고 생각했다. 물질만 판치고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경주는 더욱 소중한 곳이다”면서 “정체성과 보편성, 자존이 결국은 역사이고 역사 유물이 가장 많이 유존하는 곳이 경주 아닌가. 이것이 경주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했다. -‘급월당(汲月堂)’ 물 속에 잠긴 달을 길어 올릴 만한 기량을 가진 작가 작업실 한켠, 선생의 살림집은 ‘급월당(汲月堂)’이다. 내방객들을 맞는 이곳은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편액이 걸려 있다. 당호를 따라 가마 이름도 ‘급월요’라 한다. 1946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인 선생은 홍익대 미대 공예학부를 졸업하고 1974년 한국문화공보부 추천 일본 당진을 유학했다. 군 시절,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배속되고 이는 인생 유전의 일대 전기가 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관성이 많았고 그 역할을 선생이 하면서 당시 최순우 미술과장과 인연이 된다. 이 여정에서 분청 작업이 의미와 보람을 줄 것이라는 최순우 선생의 암시를 받고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분청작업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또 최순우 선생의 스승이었던 고유섭 선생의 아호를 따서 ‘급월당’이라는 당호를 지어주며 ‘물 속에 잠긴 달을 길어 올릴 만한 기량을 가진 작가’라 극찬했다 한다. -“나는 죽어도 모방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만든 것도 모방하지 않는다” 선생은 일년에 20점을 채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가마를 열때가 가장 괴롭다며 순정한 토로를 한다. “아무하고 이야기도 하기 싫을 정도야. 잦은 자책도 하지. 평생 작업에의 회한으로 가슴이 아플 정도거든” 그러나 이른바 신이 내리는 경지에서의 작업이기에 기술적으론 흠이 있지만 좋은 작품이 있어 금방 작품을 판단하지 않는다. 1~2년을 더 두고 보고 타작을 골라낸다. 흙 만드는 작업만으로도 일주일이 걸린다. 여러 가지의 흙을 섞어 작품 성향에 따라 달리 조합한다. 이런 과정에서 인대가 늘어나는 등 고희를 넘긴 선생의 몸은 고되다. 그러나 선생은 “늘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예술행위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이 예술가의 정신이다. 나는 죽어도 누가 만든 것을 모방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만든 것도 모방하지 않는다”는 자존심으로 독창적인 흙과 불 작업으로 분청사기의 현대화에 기여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의 현재 문화 환경에서 전업 작가가 작업을 계속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마치 알몸으로 가시덤불을 기어 나오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선생의 예술론은 이어졌다. “예술은 물질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결국 정신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면서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예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과정이 힘들고 불편함만큼 가치있고 자유스러운 일이잖은가. 그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일할 만하다”고 했다. 선생만의 독창적인 작업을 하는 근간에 대해선 “내가미술대학 간다고 했을때 집에서 쫓겨 났어. 굽히지 않고 집을 나와 버렸어. 나가랬다고 나온거, 그게 지금의 나로 계속 연결돼 있어. 어디든, 어떤 누구든 구애 받지 않아. 그게 나이 70이 되도록 이 길을, 이 산골에서 일관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지 싶어” -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에의 공감 분청사기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8년 경암학술상-예술 부문을 수상한 소감에서 선생은 ‘예술가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한 인간의 고뇌하는 순수와 노동의 땀이 독자적인 조형 언어로 표현되어 여러 사람과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은 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나 지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와 고독과 열정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이다. 새로운 조형인데 낯설지 않은 것, 우연과 필연, 대비와 조화의 교차, 이러한 것들을 통해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을 공감하고자 한다. 이 화두로 꾸준히 공부해 나아가면 언젠가 자유와 자연을 그대로 드러낼 날이 있을 것이다”고 피력했다. -‘분청’... 아취어린 간소함, 삶과 예술 가다듬는 치열한 수행과정 바람골의 자연을 버무려 만든 작품이 ‘산중일기’ 시리즈다. 최광진 미술평론가는 “山中日記, 일상을 통한 일상의 초월 에서 그의 산중일기는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다. 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에서 전통의 현대화에 골몰하는 한국화단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평했다. 인공적으로 정제된 완벽함 대신 한국의 자연이 그렇듯 건강하고 순후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는 것. ‘정체성, 보편성, 조형성’을 고민하는 그는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면서도 전통의 답습이 아닌, 현대적 변형에 관심을 쏟는다. 도자기에 ‘반야심경’을 못으로 새기는 ‘심경’ 시리즈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의식으로 태어났다. 이 작업은 그가 삶과 예술을 가다듬는 치열한 수행과정인 셈이다. 소주잔을 기울이고 작업에 대한 구상이 떠오르면 자연과 가장 가까운 흙과 불과 물로 분청을 빚어내고 있다. 선생은 그 자유로움에 도취되었고 분청만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표현에 골몰해왔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필립 루이스는 ‘윤광조의 예술세계’에서 ‘다듬어진 작품 안에 사로잡힌 자연의 생생한 힘이 작품의 존재감을 강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새로운 자유를 찾았다’면서 ‘자연의 모든 힘이 분청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아취어린 간소함과 미니멀한 느낌으로 연출되었다. 이 조각들은 자신의 비밀을 서서히, 그리고 고요히 털어놓는다’고 평했다. -윤광조 선생은 1973년 제7회 동아공예대전 대상 수상에 이어 2004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분청사기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8 경암학술상-예술부분 수상도 했다. 1976년 시인 김광균의 후원으로 최초의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국내외 유수 화랑에서 크고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2003 필라델피아미술관 초대전(미국의 3대 뮤지엄 중 하나로, 이 전시는 동양 작가 최초 초대전), 2005 시애틀뮤지엄(미국)에서의 개인전을 필두로 국내에서 가졌던 ‘분청사기 명품전: 한국미의 원형을 찾아서(호암 갤러리 ,2001)’도 보람이었다고 한다. 지난 7월 서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놀다 보니 벌써 일흔이네: 유희삼매(遊戱三昧) 도반 윤광조·오수환’ 전을 최근 개최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다수의 전시가 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대영박물관(영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뉴욕,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샌프란시스코, 미국), 국립현대미술관(서울), 삼성미술관(서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호주), 필라델피아미술관(필라델피아,미국), 시애틀미술관(시애틀, 미국) 등에서 작가의 작품들이 사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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