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의회 의원들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의원들이 읍면동 행정사무감사 직후 지역특산물을 선물로 받은 것은 결코 용납 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15일 경주시의회 제2행정사무감사특위는 건천읍, 산내면, 서면, 천북면 행정사무감사를 마치고 그 지역에서 미리 준비한 고사리, 버섯, 계란세트, 마늘, 참기름 등의 특산물을 받았다.
감사하러 갔다가 특산물을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선물로 받아 온 것이다. 다음날 감사 대상인 모 읍에서도 지역특산물을 준비했다가 논란이 일자 취소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경주시의회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은 클 수밖에 없다.
의회가 1년에 한 차례 실시하는 행정사무감사는 집행부의 행정수행을 점검하고 보조금이 지급되는 기관단체의 사업추진이나 예산집행 등을 살펴 바로잡는 중요한 절차다. 그리고 감사대상 기관에 대한 철저한 중립은 물론이고 사실에 근거한 투명하고 정당한 감사를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지방자치시대에 주민들은 의원들에게 감사권이라는 권리를 주는 대신에 그 역할을 잘 이행해야 한다는 의무도 요구하고 있다.
이번 경주시의회 제2행감 특위 의원들이 감사대상 기관으로부터 지역특산물을 선물로 받은 것은 의원들의 상식적 수준을 의심케 하는 것으로 밖에 판단되지 않는다. 의원들은 그들이 가져야할 의무가 과연 무엇인지를 알고는 있는지 의문이다. 감사를 끝내고 많은 지역특산물을 선물로 받고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더욱 놀랍다.
의원들이나 일부에서는 비싼 것도 아니고 지역특산물을 홍보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받은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감사를 하러갔다가 대상기관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은 금액이 많고 적음을 떠나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는다.
타 지자체의 의회에서는 ‘있을 수도 없다’는 일이 이번에 경주에서 벌어진 것이다. 10여 년 전 기자가 경주시의회를 출입할 때, 의원들은 행정사무감사 기간에는 집행부 공무원들과 식사도 하지말자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곤 했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식사비를 내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제재했다. 밥 한 끼 얻어먹고 괜히 구설수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당시 시의원들은 나름 룰을 지키려는 자세를 보였다. 문제는 이번 일에 대해 경주시의회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주시의회의원 윤리강령 및 윤리실천규범에 관한 조례 제6조(직무관련 금품등 취득금지)에 따르면 ‘의원은 조례안 기타 의안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으로 금품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공여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번에 경주시의원들이 지역특산물을 받은 것은 의원들이 스스로 지키겠다고 정한 윤리강령을 저버린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의회의 권위는 의원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달려 있다. 주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아 민의의 전당에 진출했기 때문에 더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아직도 의원들이 자신들에게는 관대하고 관행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의회의 권위는 의정활동을 통해 확인되어야 하고 작은 원칙하나라도 지켜나갈 때 주민들은 의원들을 신뢰할 것이다. 이번 행정사무감사기간 의원들이 지역특산물을 선물로 거리낌 없이 받은 것을 보면서 우리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은 관행이 만연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