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지역에는 한 때 ‘좋은 소리 잘 듣지 못하는 시의원보다 내 돈 안 들어가고 복장편한 조합장이 훨씬 좋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지역에서 상당한 인지도가 있었던 모 다선 시의원은 재출마를 접고 조합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사례도 있었다. 농·수·축협 및 산림조합의 조합장이 농어촌지역에서는 절대적이고 매력있는 직위였기 때문이다. 오는 3월 11일 실시되는 농·수·축협 및 산림조합 조합장 전국동시선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합장 선거는 원래 전국동시가 아니라 조합별로 각 시·군·구 선관위 관리 아래 다른 시기에 치렀지만 각종 부정선거가 끊이지 않자 깨끗한 선거를 치른다는 명분으로 이번에 중앙선관위가 관리하게 됐다. 이번 경주지역 조합장선거는 12개 농협과 수협, 축협, 산림조합 등 총 15곳에 40여명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일부지역 조합장 선거에는 6명이 도전할 만큼 치열하다. 임기 4년의 조합장 선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당선이 되면 농어촌지역을 대표하는 유지가 되는 것은 물론 적게는 5000만원, 많게는 1억 원 안팎의 연봉에 인사권을 갖게 되는 매력 때문이다. 또 연간 수억원에 달하는 교육지원사업비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 그래서 한번 조합장이 되면 현직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최소한 재선, 길게는 5선까지 거뜬히 조합장에 당선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추세였다. 특히 교육지원사업비의 경우 실질적으로 조합장이 사용할지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홍보활동비, 경조사비, 조합원 선물비 등이 이에 포함된다. 조합장이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의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선심을 쓰면서 조합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합장 자리의 매력 때문에 가장 안전하고 편한 선거직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에 중앙선관위의 관리 아래 실시되는 조합장 전국동시선거 일정이나 관련 법규를 보면 과거 개별 선거보다 크게 향상된 것은 보이지 않고 선거운동에 있어서도 신진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을 실감케 한다는 점이다. 후보자들의 면면을 알 수 있는 합동토론회나 정책설명회 등을 할 수 없도록 해 놓아 공명·정책선거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기존 조합장이 아닌 새로운 도전자의 경우 조합원들의 집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기존 조합장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선거란 불만이 나오고 있다. 특히 조합장 선거는 조합별로 투표권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서로 잘아는 처지라 정책보다 인정에 이끌리거나 매수행위 등 부정행위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번에 경주지역은 15개 조합장선거에서 3만3772명의 조합원들이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조합마다 가장 적은 곳은 1000여명, 가장 많은 곳은 4000여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갖고 있다. 이번 조합장 선거는 작년에 실시된 지방선거 경주시 유권자(21만6922명)의 15%에 달하는 주민들이 참여할 만큼 중요한 선거다. 아직 공식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사전선거운동이 적발돼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하면 더 치열한 공방전이 우려된다. 농어촌의 발전에 역할을 다하고 농어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는 조합은 건전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조합장의 역량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이번 선거가 ‘농어촌의 권력자’ 조합장이 주도하는 조합이 되지 않고 조합원들이 권리를 찾는 선거가 되어야 함은 당연지사다. 잘못한 선택은 조합원들 개개인뿐만 아니라 지역 농어촌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선관위는 이번 조합장 전국동시선거의 문제점을 면면히 살펴 불법선거를 철저히 방지하고 정책선거, 공정선거, 깨끗한 선거를 통해 조합과 농어촌이 발전할 수 있도록 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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