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경주신문 편집위원
동국대 교수
경주와 경주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이야기를 쓰신 본지 편집위원이신 김흥식 교수님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에 관한 글을 관심 있게 읽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의 정체성의 미흡과 경제적 타당성의 부족에 대한 우려에 대하여 함께 공감하면서도, 문화엑스포의 긍정적인 측면이 나에게 더욱 부각되어 왔다. 그래서 엑스포가 경주에서 계속되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간략하게 피력하고자 한다.
첫째, 21세기의 경쟁력은 문화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정보사회로 바뀌고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자연이 가치를 창조했고, 산업사회에서는 자본이 가치를 창조했다면, 21세기의 정보사회에서는 정신과 지식이 가치를 창조한다. 스필버그의 "주라기 공원" 영화 한편이 자동차 수 만대를 수출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였다. 즉, 우리는 문화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21세기의 경쟁력을 가져다주는 문화산업이기 때문에 시작은 미비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성숙시켜야 할 산업이다.
둘째, 경주가 타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는 관광산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우리가 경쟁할 상대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경주가 세계적인 경쟁우위를 지닐 수 있는 상품이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주만이 가지고 있는 신라천년의 문화이다. 그러나 현재 경주는 신라천년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지역으로 혹은 외국으로 관광객을 빼앗기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주가 관광객들에게 충분히 보고 즐기고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침묵하고 있는 경주의 문화자원에 생명력과 활력을 불어넣는 귀중한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다. 경주가 세계적인 관광지로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화엑스포와 같은 행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숙시켜야 할 것이다.
셋째, 건전한 문화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나의 자식이고 우리의 청소년들이다. 우리의 부모들은 어려운 경제여건에서도 우리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우리들에게 헌신적으로 투자하였다(경제적 논리로 따지자면 완전히 밑지는 장사임). 우리 역시 우리의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청소년들의 영혼을 황폐하게 하는 불건전한 문화가 사방에 널려있다. 문화엑스포는 바로 우리 청소년들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건전한 문화의 장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우리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고, 정체성을 확립해줄 수 있는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엑스포 행사장내에서 전시된 "人과 仁 특별전"이나 반월성에서 열린 오페라 우루왕은 경주시민은 물론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가치관을 심어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넷째, 신라문화를 지켜온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신라의 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라시대의 토기를 구어 내고, 신라의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관광객들에게 경주를 소개하여왔다. 그러나 문화사업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충분한 수입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단지 신라의 문화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 일을 해 온 것이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도중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도 했지만, 이들은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문화엑스포는 큰 희망을 심어주었고, 격려가 되었다. 왜냐하면, 문화엑스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문화행사에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첨성대 근처에서 밤중에 불빛을 밝힌 연을 하늘에 올려 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은 신라문화진흥원이나, 평생동안 신라토기 보급에 힘써온 선생님께서 관광객들이 직접 자신들의 토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여 사업의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화엑스포가 경주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제는 씨앗을 뿌릴 때이기 때문이다
씨앗을 뿌리는 것과 추수하는 것, 어느 것이 신나는 일일까? 아마도 추수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씨앗을 뿌리지 않는다면, 추수할 수가 없다. 우리 경주시민은 과연 씨를 뿌리는데 노력하였을까 아니면 추수하는데 정열을 쏟았을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경주시민은 우리의 조상들이 뿌려놓은 씨앗의 열매를 추수하는데 급급하였다 라고 생각한다. 천 삼백년전에 신라인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석굴암도, 불국사도 갖게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석굴암을 만들고, 불국사를 세울 때는 경제적인 타산이 맞아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그들이 경제적인 득실을 따졌다면 오늘날 우리는 이처럼 훌륭한 문화자원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이탈리아의 시스틴 성당의 천장에 있는 그림 역시, 미켈란젤로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 유럽이 관광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건물을 하나 짓는데 50년 혹은 100년 걸려서 짓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추수만 할 것이 아니라 씨앗을 뿌릴 때이다. 어떠한 씨앗을 뿌려야 할까? 우리의 옛 조상들이 석굴암과 불국사와 같은 유형의 씨앗을 뿌렸다면, 우리는 문화엑스포와 같은 무형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어떨까? 그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는 10년, 20년 혹은 50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일을 해 내야하는 것은 그 일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