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경주에 거주하는 젊은 청소년들에게 존경하는 지도자가 있느냐라고 물을 기회가 있었다. 약 50명의 청소년들 가운데서 단지 3명만이 존경하는 지도자를 만난 적이 있거나 만나고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행한 현실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고 자신들의 삶에 모델로 삼을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라고 느끼고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바로 경주의 미래이며 희망이다. 싸늘하게 식어 가는 이들의 마음에 꿈을 심어주고 불씨를 지펴주며, 자신의 삶을 이 지역과 민족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참다운 지도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흔히 좋은 지도자란, 실력과 능력이 있는 사람, 경험과 경륜이 풍부한 사람, 추진력과 정치력이 있는 사람들로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자질은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더욱 중요한 자질은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 태도와 자세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부인하는 지도자란 어떠한 지도자를 의미하는가? <font size=4.5>자신의 욕심이나 야망을 부인하는 지도자이다</font> 우리가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를 갖지 못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많은 지도자들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자신의 영달이나 욕심을 위해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야망이나 욕심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을 과감히 희생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자신을 부인하는 지도자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버릴 때 추종자 역시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게 될 것이다. 올바른 가치를 위하여, 공동체 구성원들, 특히 소외되고 약한 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지도자가 참다운 지도자이다. <font size=4.5>자신이 속해있는 이해집단만의 이익을 부인하는 지도자이다 </font>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집단간의 갈등 문제이다. 이 나라는 아직도 영호남으로 나뉘어 있으며,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뉘어 있다. 사주와 노동자로 나뉘어 있고, 권력을 잡은 자와 잡지 못한 자로 나뉘어 있다. 이 나라가 이처럼 나누어진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지도자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속하고 있는 조직을 자신들의 영달을 위한 거대한 이해집단으로 만들기에 바쁘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해집단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으면 가차없이 제거하는 것도 불사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집단의 이익추구는 결국 조직의 힘을 무력화시키며, 새로운 피가 수혈되거나 순환되지 않아 조직은 동맥경화증에 걸리게 되어 너도 죽고 나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지도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부인하고 공동체 전원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font size=4.5>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능력 있는 후계자를 키우는 지도자이다</font>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불행은 지도자들이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후계자로 삼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들이 자신에게 도전하여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다운 지도자는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더라도 공동체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후계자로 양성하거나 그들이 지도자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신의 욕심이나 야망에 머물러 있는 지도자들은 훌륭한 후계자를 키울 수 없다. 오직, 자신을 부인하는 지도자만이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경주는 지금 급변하는 21세기를 맞이하여 어느 때보다 참다운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 지도자는 바로 경주를 진정으로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자신을 부인하는 지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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