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가교…도심 속 유일한 사찰 법장사에서 부처님께 발원하다
‘도심 한 복판에 절’이 있다. 바로 경주시 시내권 유일의 역사 사찰이며 200년이 넘는 시간성을 지닌 법장사法藏寺(철우 주지스님)다. 천마총 후문의 맞은편이자 노동동 고분군 옆에 있는 이 사찰은 불국사의 말사로서 도심에 인접해 있어 많은 경주 시민들이 마음을 위안받았고 법장사에서의 추억담을 이야기 한다.
활짝 열어놓은, 검박하지만 미려한 법장사의 ‘정문’을 지나자 경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겨울 한낮의 햇살을 받아 경쾌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대웅전에서는 스님과 신도의 기도가 한창이었다.
고요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며 발원한 것을 기도하는 그들, 그것이 해묵은 기도라고 할지라도 자비의 도량에서 용해시키는 듯한 부처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성스럽고 자애로워 보였다. 윤색되지 않은 참 기도와 발원을 도심속의 법장사에서 부처님에게 속삭일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문화재보호구역 내 법장사는 문화재정비사업의 일환인 철거추진계획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법장사를 아끼는 많은 신도와 시민들은 경주시의 이러한 계획에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
법장사 측은 경주시에 ‘대웅전 및 정문에 대한 문화재 지정신청’을 요구한 바 있으며 이에 경주시는 “법장사에 대한 문화재적 접근이 필요하며 일방적인 철거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법장사의 대웅전 및 정문正門은.
법장사 대웅전의 초건 시기는 미상이다. 경주 최초의 경주부 관아 건물군의 일부로 원래는 ‘제승정’이라 했다. 조선 영조 30년(1754) 경주부윤 홍익삼이 중수해 일승정이라 하고 건물의 동쪽부분을 풍월루, 서쪽부분을 망경루라 칭했다.(‘동경통지’)
이후 고종 20년(1883년)부터 21년에 경주부윤 김원성이 중건해 일승각으로 개명(‘경주읍지’)하고 경주 동헌의 가장 주된 집채인 정당正堂으로 이용한다.
다시, 1937년 동부동 159-1번지에 있던 일승각 건물을 배씨 부인이 인수해 작고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위해 기림사에 기증한다. 이듬해인 1938년 현재의 자리인 노동동 275번지에 이건해 대웅전을 세우고 사찰로 개창하고 기림사 경주시 포교당으로 쓰인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의 말사인 법장사 대웅전이다. ‘정문’역시 초건의 시기는 미상이다. 경주부 관아 건물군의 하나로 지금의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중문이다.
대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이며 경쾌한 느낌을 주며 누각이나 정자에 많이 쓰이는 익공계 단층이다.
우진각 지붕(지붕면이 사방으로 경사를 짓고 있는 지붕형식으로, 정면에서 보면 사다리꼴 모양이며 측면에서는 삼각형인 지붕)의 건물로 1998년 한국문화보호 재단이 동부동 159-1번지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 결과 일승각으로 추정된 건물은 정면 5칸, 측면3칸의 규모였으나 노동동으로 이건 과정에서 규모가 확대 됐다고 밝혔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중문인 ‘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단층 맞배지붕(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의 양식이다. 현재 정문의 좌우 1칸은 판자로 막혀 있으며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200여년의 역사적 배경 가진 명품 사찰, 법장사의 미래는 밝다.
법장사는 노동노서 고분군을 끼고 있는 위치적 요인과 200여년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경주가 명품화 되면 될수록 더불어 명품화 될 수 있는 사찰이다. 특히 도심권에 있는 법장사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다.
법장사 철우哲祐 주지스님은 “수학여행단이 반드시 거쳐 가는 고분군의 바로 지척에 우리 절이 있는데도 고분만 보고 간다.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오늘을 사는 경주에서 과연 우리 문화역사의 근간이었던 것이 불교문화였는가를 의심할 정도로 소홀하게 간과하는 경향이 안타깝다”
철우 주지스님은 “법장사는 굳이 포교를 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포교가 되는 측면이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도심의 유적지를 관광하고 도심에 위치해 있는 법장사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미 세계정신의 중심이 된 불교를 말하지 않아도 외국인에게는 전통적인 한국의 불교가 이 신라를 통일 시키는 원동력이었음을 자연스레 알리고 접하게 되는 역할을 법장사가 하지 않는가. 법장사가 역사적인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며 다시 한 번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인자’ 독립투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행했던 아지트…법장사
법장사는 교훈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당시 청기와 다방의 맞은편에서 ‘조인자 한의원’을 운영하던 조인자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의 자금원이었으며 경주의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결사한다.
역시 독립투사였던 당시 법장사 주지 스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아지트’였다고 전한다. 그는 한의사로서 의료봉사를 하는 등 재능기부를 실천했던 사람이었으며 또한 불우한 이웃을 위한 선행을 펼친이 였다고 한다.
또한 법장사는 한국전쟁 당시 고아를 많이 보살폈던 곳이라고도 한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도심에 공공의 회의 장소가 없어서 주민들의 크고 작은 행사 및 회의를 이곳 법장사에서 진행했다고 전한다. 식사를 무료로 제공했으므로 회의가 더욱 용이했고 구국기도도 많이 했다고 한다. 법장사는 200여년의 시간을 경주시민과 함께 한 친숙한 사찰로서 지금도 유명한 스님들이 찾는 전국적인 사찰이다.
-법장사…시민과 함께하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강의를 맡고 있는 철우 주지스님은 “부처님 불법을 제대로 알려서 현세의 어려움을 부처님의 가르침과 명상이나 참선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도량으로 가꾸고 싶다. 또 황남대총, 서봉총, 금관총 등의 역대 신라의 왕들께서 왕생극락 하라고 기도도 한다”며 이곳 법장사는 훌륭한 주변환경 덕분에 걷기를 통한 명상을 하기에도 좋으며 우리의 얼을 배울 수 있는 절이라고 강조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토요일 오전 9시에서 12시까지 진행되는 ‘자비도량참법’ 참회의 기도를 통해 신도와 시민들이 마음을 정화시키고 공덕을 지을 수 있게 한다. 스님의 법문과 함께 이뤄지는 이 기도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도 가능하다. 이 기도로서 부처님의 자비로 가피를 입은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또 매월1, 2, 3일 ‘직장인을 위한 다라니기도’를 오후 7시~9시까지 한다. 이 기도는 불자가 아니어도 불교에 관심있는 이는 누구라도 참여 할 수 있다.
한편, 철우 스님은 외국으로부터 역수입 되어 들어오고 있는 참선을 왜 해야 하는지, 마음 밝히는 선을 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참선을 실천할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철저한 교리를 바탕으로 해서 참선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참선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주위의 고분군을 모시고 불교식의 ‘영산재(죽은 사람을 위한 재로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중요 무형 문화재 제50호)’를 지내고 싶다”면서 “이 일은 고분군 옆에 위치한 법장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법장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054)772-4840로 하면 된다.
-시내의 평지에 있는 유일한 사찰, 관광자원으로도 큰 기여
김성수 (사)경주문화발전주민협의회 회장은 최근의 법장사 철거론에 대해 “절대 보존하고 더욱 확장해야 한다” “경주 도심의 교회는 26곳이다. 사찰은 시내권에서 한 곳 뿐이다. 경주의 역사와 문화는 불교가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경주시와 법장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법장사는 전국에서 유명한 스님들이 수행한 곳이며 시내의 평지에 있는 유일한 사찰이다”며 법장사를 보존해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했다.
또 “문화재적 가치와 함께 경주 도심을 찾는 관광객들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으며 지역사회에 관광자원으로서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사찰이다. 더욱 명품화 될 수 있는 이 절을 당면한 정책에 의해서 없앤다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치나 행정적 차원에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