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향교, 고택, 서원은 옛 선현들의 숨결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우리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번호부터는 지척에 두고도 잘 알지 못해서 그 가치가 묻혀있는 이러한 문화재 혹은 비문화재들을 매주 기획해 소개하고자 한다. 지역의 사찰은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사찰 15곳을 포함해 360여곳의 사찰이 있다. 서원은 원院,사祠,당堂을 합해 43곳이 있으며 제향을 모시는 곳은 37곳이다. 이 중에서 경주시에서 향사비를 지급하는 곳은 30군데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고택은 양동마을의 향당, 서백당, 관가정, 무첨당, 안강의 독락당, 내남면의 충의당, 탑동의 김호장군고택, 황남동 숭혜전, 숭덕전, 숭신전 등으로 모두 11곳이다. 이들 중 우리의 이목을 새롭게 집중시킬 명소를 발견해내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보며 연재를 시작한다. 김유신 장군과 신라학자인 최치원, 설총을 모신 곳…서악서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까이 있는 자들이 기뻐하며 멀리 있는 자들이 오게 하여야 한다”고. 경주시 서악동 615번지에 위치해 단정한 운치와 함께 웅장미를 뿜어내는 서악서원은 그런 맥락에서 합당하다. 뒤쪽으로는 포근하게 선도산이 감싸고 있어 서악서원이 안겨있는 듯한 형국으로 서원 본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해사한 풍치는, 어둑어둑 저물어 가는 한겨울 늦은 오후에 일점이 되었다. 강당인 시습당時習堂에는 유교의 도를 지키며 학문을 하는 유생들의 경전외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해 옛 선인들의 숨결이 손에 잡힐 듯 그윽하다. 서악서원은 경북도 기념물 제19호로서 김유신 장군과 신라학자인 최치원, 설총을 모신 곳이다. 이곳은 조선 명종때 경주부윤 이정(1512∼1571)이 김유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1561년 사당을 세웠으나 당시 경주지역 선비들이 설총과 최치원의 위패도 함께 모실 것을 건의했다. 선비들과 뜻을 함께 한 이정은 퇴계 이황과 의논하기에 이르렀고, 그 뜻이 받아들여져 명종 18년(1563)에 ‘서악정사西岳精舍’를 건립했다. 서악정사는 퇴계 이황이 직접 명명하고 그의 글씨로 현판을 달았다. 이후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02년 3인의 위패를 모신 묘우와 1610년엔 강당과 동·서재를 새로 지었다. 또 인조 원년(1623년)에는 국가가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서악’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현재 시습당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당시 명필인 원진해가 쓴 것이다. 서악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전국 650개 서원 중 살아남은 중요서원 47개 중 하나다. 경주지역에서는 옥산서원과 함께 당시의 서원철폐령을 피했던 귀한 서원. 마치 궁궐같이 웅장하고 시원스러워 서악서원의 건축은 여유롭고 마치 궁궐같이 웅장하고 시원스럽다. 영귀루에서 시습당까지 양옆의 동재, 서재와 함께 평지이면서도 시원스레 관통하는 구조를 자랑한다. 외삼문인 도동문道東門으로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는 누각인 영귀루詠歸樓가 늠름하다. 이어 시습당과 신위를 모신 묘우 등이 차례로 배치돼있다. 사당까지의 일직선 배치가 시원스럽다. 사당까지는 강당인 시습당을 지나는데 대문 3칸, 사당대문 3칸, 사당문 3칸등 모두 9개의 문을 통과해 갈 수 있다. 즉 앞에는 강당을, 뒤에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인 것이다. 또 80여칸 정도의 규모로서 서원으로서는 웅장하다는 인상을 준다. 한편, 서악서원은 대문이 딸려 있는 곳간채, 행랑 대문채, 행랑채, 안채, 화장실채 등 다섯 행랑채를 거느리고 있다. 서악서원의 사당은 앞면 3칸에 옆면 2칸의 겹처마이며 지붕면이 양쪽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을 가진, 즉 八자형을 하고 있는 맞배집이다. 먼지 앉았던 서악서원, 새로운 활기를 띄다 이 서원은 역사적, 건축적인 가치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주말 문화답사를 위한 여행객들이 간간히 찾고 있을 뿐이었다. 이 먼지 앉았던 문화재는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 상시 활용프로그램 지원에 힘입어 시행된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의 ‘월암재’ 정비이후 빛을 보게 된다. ‘월암재’ 정비를 긍정적으로 지켜보았던 최현재 경주향교전교의 서악서원 관리요청제의로 지금의 서악서원이 새로운 활기를 띤 것이다. 전국적으로 서원의 현실이 어려웠던 차제였다. 3년전 서악서원은 문화재청, 경북도, 경주시의 도움으로 대대적인 청소 및 수리가 진행된다. 전기시설의 재점검과 벽면을 보수해 숙박 및 문화행사를 접목할 수 있는 장으로 변모한다. 상시적인 숙박을 하고부터 보다 나은 관리가 이뤄지게 되었고 설총, 김유신, 최치원, 세 분을 모시고 있는 만큼 이 세 문중의 공감대를 이끌어 낸 것은 지역유림들의 오픈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악서원의 성공적인 활용사례를 통해 여타의 경주서원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진병길 신라문화원 원장은 “2012년 12월, 전국서원연합회 200여군데 중 서악서원 활용의 경우를 우수사례의 한 예로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또 전국의 서원과 향교를 대상으로, 개보수를 통해 숙박을 할 수 있는 지원공모사업에서 전국향교 10곳과 서원 2곳 중 경주는 향교와 서악서원이 결정되면서 5000만원을 지원 받아 조만간 서원의 공간을 수리하게 된다. 수세식 화장실로 개조하고 창고를 휴게공간으로 변모시켜 문화체험이 용이하도록 돕게 된다”고 밝혔다. 서악서원에서는 1일 최대 20~30명까지 숙박이 가능하고 선비체험을 비롯해 청소년이나 직장인들의 문화재 가꾸기 봉사체험, 다도나 예절 체험 등의 문화체험, 원어민 대상의 한국문화체험, 택견, 투호놀이, 국악공연, 시·시조 낭송, 판소리 공연, 달빛기행, 다도, 서당체험 등과 전통결혼식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한 커플의 결혼식1호도 치룬 바 있다. 서악서원에서 유留한 유명 인사들이 남긴 기분좋은 에피소드 서악서원은 전국의 서원 대부분이 조선시대 선현을 모시고 있는데 반해 신라시대 선현들을 모시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과 함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 2㎞의 위치에 있어 내외국인들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또 서악서원의 주변으로는 김유신 장군 묘와 무열왕릉이 에워싸고 있다. 주위의 선도산이 신라의 전설을 품고 있으며 선도산 자락에 서악동 삼층석탑, 그리고 영경사지 삼층석탑·선도산 마애삼존불 등이 있으니 주변의 여러 유적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김유신, 설총, 최치원 이 세 신라인의 서기가 서려있는 상서로운 곳이기도 하다. 재밌는 것은 이 서원에서 유留한 최광식 문화재청장이 판소리 한 대목을 뽑았는데 한 달 뒤 문광부 장관으로 발령이 났고, 하나은행 행장 부인이 유하고는 바로 하나은행 회장 부인이 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런 스토리는 이곳을 다녀간 유명 인사들이 남긴 기분좋은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현재, 서악서원은 상시적으로 개방 되어 있어 숙박도 할 수 있고 때에 따라 차도 한 잔 할 수 있어서 더욱 친근하다. 지난해의 경우 이 서원에는 1500명 정도가 숙박했다고 한다. 고택 서원으로서는 욕실과 화장실 도입 1호였다. 진 원장은 “올해 5월중에는 안장헌 문화재사진가가 전국의 서원을 테마로 한 사진을 서악서원에서 전시 할 예정이다. 특히 올 4~6월 문화재청의 ‘문화재생생프로그램’이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펼쳐진다”고 전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엄숙하고 경건하게 선현을 추모하기 위한 제사를 지내기 위한 모임장소였던 서악서원의 경우는 문화재 보존은 지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 사람들이 활용함으로써 더욱 보존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문화재를 직접 가꾸고 체험해보면 더욱 애정을 가지고 보존하려 하는 선 순환이 이뤄지는 것. 서원 본래의 기능인 교육의 장과 후학배출의 목적을 유지하면서도 전국에서 서원을 가장 잘 활용해 교육적, 문화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서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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