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 시대 민중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생활도구이다. 따라서 말에는 시간적, 공간적 정서와 정신적인 곬이 스며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토박이말에서 풋풋한 향과 정감을 더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속에는 더 많은 우리 것이 베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획일화된 교육과 말의 표준화정책으로 지역마다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아름다운 말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에 경주신문은 우리말의 발상지인 경주에 남아있는 토박이말을 찾아 정리하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어렵게 수집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시고 집필을 허락해 주신 한기철 선생께 깊이 감사드린다.(편집자 주)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기철(사진)
약력)1949년 경주생/경주중고등학교/동국대 국어국문학/대구대 대학원/경상대 대학원 박사과정/국어국문학박사/198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현 부산 경성대 및 국립 경상대 국문과 강사
필자는 이곳 경주에서 태어나 외지로 나가 공부했던 기간을 빼고는 줄곧 경주에서 살아왔다.
그러던 중 이곳의 방언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되었고 나름대로 수집하고 또 그것을 기록한 카드를 만들었다. 그것이 벌써 한 이십년 너머 된 것 같다.
처음엔, 이 지방에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보석 같은 그 낱말 하나하나가 이른바 현대교육의 세례로 점점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였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내 이웃들의 말들이 궁극적으로 내가 써야할 소설들이 아닐까해서 그 말들을 소설 속에 쓰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목적에 따라서는 향가연구 같은 어학분야에서도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특히 이 경주지방의 말들 채록과 조사연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되었다.
어쨌던 그 말 하나하나는 아득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또 그 할아버지 할머니 적에 쓰시던 말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쓰는, 사실 소중한 금싸라기 같은 말들이다.
우선 그때 당시는 앞으로 십년 후면 이런 말들이 다 없어지리라는 위기감 같은 절박함도 느꼈고 사학이나 사회학, 고대법률, 사회제도, 국학 등 다른 인접분야 학문에도 그 기초자료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기회가 닿는 대로 꾸준히 수집했다.
말은 나름대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생을 가지는데 소위 언중(言衆)들 사이에 한번 사라진 말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국문학을 공부했지만 언어학자는 아니다. 따라서 어학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소양이 부족하다.
그래서 대략 지금까지 이 경주말들을 채록한 방법은 어떤 표본집단을 정해 기획하고 조직적으로 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경로당이나 상가(喪家)같은 현장에서 이루어졌으며 일단 대원칙은 현대교육을 받지 않은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중심으로 했다.
또한 『한국구비문학대계』(경주편), 『경상북도 방언 자료집』,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편) 같은 이미 조사된 자료나 문헌에서도 도움을 받았다. 물론 생활어일 수도 있고 민속에 관계된 말일 수도 있고 더러는 지명도(지명의 겨우 古語가 많다) 있고 일상생활에서 잘 안 쓰이는 비속어, 특수한 집단·직업에서 쓰이는 은어(隱語: 예를 들면 무당들의 변이나 백정들이 쓰는 말이나 목수들이 쓰는 말 등)와 일상어, 속담, 민요, 동요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거창한 일이나 했고 또 그걸 발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는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렇지 않고 사라져 가는 소중한 우리의 것을 아끼고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가닥을 여기기록으로 남기는 것 일뿐이며 오십 몇 해를 함께 몸 비비고 살아온 이웃과 이 고향사람들의 삶의 기록일 뿐이다. 따라서 외람되게도 그 정감 가는 말들을 새삼 되살려 더러는 추억으로, 소중한 자료로 남기고 싶다. 독자들의 많은 도움말과 함께 애독을 부탁드린다. 아울러 어학적인 전문적인 문제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장영길교수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