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옷차림에 낡은 짐 자전거를 의지해 가는 곳마다 우리말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일깨우고 외국어의 남용에 맞서 평생을 싸우시던 최햇빛 할아버지가 93세의 생을 마감하고 우리곁을 떠나셨다.
겉보기에는 거동조차 불편한 촌로였지만 한글에 대한 강연을 할 때면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솟구치는 기운으로 듣는 이들의 폐부를 찌르던 그 열정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감사합니다`를 일제의 잔재라 하시며 `고맙습니다`를 보급하기 위해 청와대, 국회, 방송국, 신문사, 관공서, 학교 등에 수 천통의 서신을 보내고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감사합니다` 대신 `고맙습니다` 하라고 외치셨다.
지금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고 방송 출연자들도 `고맙습니다`를 자연스레 사용하고 있다.
부르기 좋고, 뜻 좋고, 정감있는 한글이름을 지어 부르자며 당신의 이름을 최칠규에서 최햇빛으로 고치고 산부인과를 찾아다니며 태어난 아이들에게 예쁜 한글이름을 지어주길 수 천명, 지금 경주지역 중고생들이 한글이름을 많이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93년 한글물결모임을 만들어 어린 학생들에게 한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가르쳐 이 지역에 한글운동의 새 바람을 일으켰고, 전국 각 대학과 주부모임을 찾아다니며 우리말의 우수성과 민족혼을 일깨우기에 평생을 바쳐 한글할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드러내 놓을 학위나 논문은 없지만 한글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어느 학자보다 뛰어났었다.
할아버지는 넉넉하지 않은 농촌생활을 하시면서도 우리말과 글에 당신의 청춘과 생애를 바쳤던 것은 우리말과 글을 통해 우리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주체성을 찾으려고 하셨던 것이다.
가족들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던 할아버지의 삶은 고독하고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겨진 우리들에게 길게는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우리민족의 우수한 민족정신과 자긍심을 키우는 불씨일 것이다.
우리들은 햇빛 할아버지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 당신이 남기신 순결하고 고귀한 민족애를 배우고 반만년 역사속에 면면히 흐르는 민족혼을 일깨우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는 마음가짐을 가져보자.
<482호 00.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