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옥’으로 은유된 잠든 노숙자의 표현이 절묘하지 않은가. 어머니 뱃속의 태아를 닮은 곡옥,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상징이다. 시인은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웅크리고 잠든 한 노숙자를 발견한다. 삶이 불안한 노숙자한테서 오히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캐낸다. 박물관 유리장 속의 곡옥보다 더 아름다운 건, 방금 출토된 진흙 속에 있는 곡옥이다. “방금 출토된 것 같은 펄럭이는 유리문’의 신선한 비유를 보라. “흐린 빛에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뒤척일 때마다 비췻빛 새어나오는” 노숙자의 꿈. 시인은 노숙자의 불안한 삶에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어깨를 두드릴까/손을 내밀어도/천 년쯤 떨어져 있는 것처럼 닿지 않았다” 존재는 어떤 존재이든 그 살아있음 때문에 존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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