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룡놀이` 신라 원성왕때 전설에서 유래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 1년중 달이 가장 밝고 크게 빛나는 날이다 하여 소원과 풍년을 기원하는 날이다.
올해는 2월 7일이 정월대보름이 된다.
정월대보름에는 여러 가지 민속놀이가 전해져 오고 있으며 아침에 일찍일어나 `부럼`을 깨물고 `더위`를 팔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온다.
또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에 반찬으로는 묵은 나물들을 삶거나 볶아 먹고 `귀밝기 술`이라 하여 맑은 청주를 한잔씩 먹는다.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는 민속놀이는 거북놀이, 기세배놀이, 놋다리 밟기(기와 밟기), 다리밟기(답교놀이), 봉죽놀이, 달맞이, 사자놀이, 쌍룡놀이, 쥐불놀이, 지신밟기, 차전놀이, 방놀이, 햇불싸움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봉죽놀이
봉죽놀이는 정월 열나흘 날 어촌에서 풍어를 위해 행하던 놀이로 소리와 춤으로 엮어지는 집단적인 가무놀이이다.
정월 열나흘 날 아침 뱃사람들이 놀이터로 모여들면 북잡이와 꽹과리 잡이가 장단을 맞추고 선창자가 가운데 서서 소리를 한다.
이에 뱃사람들 역시 소리를 주고 받으며 노래소리와 잡이들의 울리는 장단이 어울어지면서 사람들은 흥에 겨워 춤을 춘다.
이같은 봉죽놀이는 보통 일주일쯤 행해진다.
황해도와 경기도 일부지역에서는 고기를 많이 잡으면 이를 `봉죽 받았다`고 하며 배가 만선의 깃발을 달고 포구로 들어올 때 사람들은 꽹과리 장단에 맞춰 봉죽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기뻐했다.
▲사자놀이
사자놀이는 정초부터 보름날까지 밤마다 노는데 마지막 날을 보름에 맞추기 위해 근 마을에선 일찍 시작하고 작은 마을에선 좀 늦게 시작한다고 한다.
마을 젊은이들이 저녁밥을 먹고 도청마당에 모여 사자탈을 쓰고 퉁소가락에 맞춰 한 번 놀고 나서 마을 한쪽에서부터 집집이 들러 사자를 놀아준다.
집안에 풍물을 울리고 사자를 놀리면 잡귀가 물러나고 액을 막아준다고 한다.
사자를 앞세우고 양반과 꺽쇠와 퉁소잡이 징잡이 젊은이들이 따라가는데 집집에 놀 때는 길라잡이, 사당, 거사, 꼽추는 따라가지 않는다.
▲쌍룡놀이
쌍룡놀이는 김제 `벽골제`에 얽힌 전설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신라 제38대 원성왕때의 일이다. 벽골제 아래 원평천 용추에는 착한 `백룡`이 살았고, 연포천 용추에는 심술사나운 `청룡`이 살고있었다.
한 번은 청룡의 장난으로 벽골제의 둑이 무너져 내릴 위험에 처하게 되자 나라에서는 `원덕랑`을 보내 보수공사를 하도록 했다. 원덕랑과 김제 태수 `유품`은 백성들에게 부역을 시키며 밤낮없이 공사를 진행시티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겁에 질린 백성들은 "이러한 공사를 하려면 예로부터 처녀를 용추에 넣어주고 청룡을 달래야 하는데 원덕랑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고 원망했다.
청룡이 사람을 해치고 벽골제를 무너뜨리려 하자 백룡이 나타나 청룡을 막았으나 피나는 싸움 끝에 백룡은 어리론가 사라져 버리고 청룡의 기세는 한층 높아졌다. 마침내 유품과 백성들은 원덕랑의 약혼녀 `월내`를 몰래 용추에 넣기로 했다.
원덕랑을 짝사랑하던 유품의 딸 `단야`는 이사실을 알고 고민 끝에 자신이 대신 희생하기로 결심한다. 월내방에 대신 누워있던 단야는 보쌈을 당하여 결국 청룡에게 먹히고 그와 동시에 비가 그치며 청룡이 사라졌다.
이후 백성들은 단야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소복을 한 아낙네들이 연포천 용추에 수없이 모여들어서 진혼제를 올려주었다.
지금도 벽골문화제전이 열리는 김제 지방에서는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전해 내려오는 `쌍룡놀이`라는 민속놀이 한마당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