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신문은 지역의 자연부락을 찾아 연재하여 독자들에게 우리지역에 대한 이해를 북돋우고 한자표기식 마을이름에서 잃어버린 토박이 마을이름을 되찾아 그 이름값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되새김으로 그에 얽힌 전설과 설화를 알아보고 전통을 전승하고자 마을탐방을 기획했다. 독자여러분의 성원과 참여를 당부드린다.
천북면 성지리, 천북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1KM 가면 성지못이 나온다. 그 아랫마을이 바로 성지마을이다. 이 마을은 천북면사무소 바로 동편에 위치한 마을로 지금은 보문-천북간 신설도로가 나있어 보문단지에서도 갈 수 있다. 보문단지에서 갈 경우 갈곡리를 지나면 이 마을에 다다른다.
성지는 소리못(聲池), 소리지(素里池), 소오리(所五里), 소리(所里)라 일컫기도 하고 신라시대는 광곡(廣谷)이라 불렀으나 조선초기 못이 이루어져 그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하여 소리못이라 불렸으며 또한 이 못둑에서 봉덕사 종소리가 잘 들려 조선 정조때 손여원(孫汝元)이란 선비가 소리지(素里池)라고 부르던 것을 성지로 못이름을 개칭하였다고 전한다.
"옛부터 있어온 못으로 짐승 소리가 났다고 하는 전설에 의해 소리못이라 불렀다고 전해온다."고 말한 성지1리 이장 손인석(60세)씨는 "작으마한 못이었으나 일제때 중수하면서 지금의 규모로 크게 막았다."고 못의 유래를 전한다.
또한 손씨는 "마을 뒤산에 넓은골이라는 곳이 있어 광골(廣谷)이라고도 했다."고 말해 신라시대 이름인 광곡과 소리못, 성지가 혼용되어 쓰여 왔음을 입증했다.
월성손씨의 집성촌인 소리못골은 60여호의 마을에 50호 정도가 손씨다. 그래서인지 아직 촌인심 그대로다. 지금도 제사라도 지내면 마을회관에 어른들을 청하고 음복을 베풀고 있을 정도로 마을전체가 한가족처럼 오손도손 살고있다.
소리못골의 자랑은 못외에도 수령200년을 넘긴 세그루의 회화나무가 있다. 월성손씨 16세 오헌공 손성도(孫星度)님이 세아들을 기념하여 식수했다고 전해오는 이 회나무는 높이가 13-15M이고, 둘레가 4.2M로 82년에 천북면 나무로 지정되어 보호되고있다.(이상 오헌공 6세손 손원택씨(54세)씨 증언)
또 이 마을은 100년에 이르는 웃어른에 대한 공경의 전통이 전해오고 있다. 월성손씨 선대에서 마을 뒷산(임야 130정보)를 문중재산으로 물려주면서 60세 이상 어른들에게 봄가을로 년2회 경로잔치를 베풀어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시켜온 것이다. 계중형태로 이 전통을 문중이 이어오고 있고 지금은 이장인 손인석씨가 회장을 맡아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150여명의 마을주민이 논농사에 의존하고 있는 전통 농촌마을인 소리못의 최고령은 이태연(94세)할머니로 기자가 쓴 취재수첩의 메모글씨를 안경없이 읽을 정도로 아직 건강하시다.
인심만큼이나 물좋고 공기맑은 이 마을의 자연환경이 이처럼 건강을 유지할수 있게끔 했을것으로 생각된다.(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