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 The Doorway
루이스 글릭
나는 머물고 싶었다
세계가 가만히 있지 않듯이 가만히
한여름 아니라 첫 꽃이
피기 직전의 순간, 그 어떤 것도
아직 과거가 되지 않은 그 순간 -
취하게 하는 그 한여름이 아니라
늦은 봄, 정원 가장자리
풀이 아직 웃자라지 않고, 이른
튤립이 막 열리기 시작하는 때 -
먼저 가는 이들, 다른 이들 지켜보며
입구에서 서성이는 한 아이처럼,
다른 이들의 낙오를, 그 공공연한 휘청거림을
의식하며, 팔다리 꼿꼿이 모으고,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이 유약함을 물리칠 준비를 하는
임박한 힘을 믿는 아이의
열렬한 확신과 함께, 때는 바로
꽃 피기 전, 그 통달의 시대
그 선물 나타나기 전,
소유 이전
‘임박한 힘’을 믿는 시간의 ‘입구’에서 살기
2020년 노밸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루이스 글릭의 이 작품은 이미 잎사귀를 떨구고 줄기마저 시들어버린 튤립을 바라보면서도 튤립의 첫 꽃이 마악 봉오리를 열 무렵, 아직 벌과 나비가 그 꽃봉 속으로 들어가기 전의 그 시간을 예감한다. 그녀는 “세계가 가만히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시간의 흘러감과 계절의 바뀜과는 무관하게, 쿵쿵거리며 설레는 첫 시간에 “머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시는 튤립의 개화와 함께 시인의 어린 시절 경험 하나를 나란히 병치함으로 독자로 하여금 실감의 시간을 살게 한다. 그건 아마 초등학교 뜀틀 같은 종목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 아이가 “먼저 가는 이들, 다른 이들 지켜보며/ 입구에서 서성”인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이미 “다른 이들의 낙오를, 그 공공연한 휘청거림을” 보았기에 “팔다리 꼿꼿이 모으고,”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이 유약함을 물리칠 준비를 하는” 자세를 한다.
우리는 그 아이가 그 종목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지 실패할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가 얼마나 신선한 시간을 살고 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한다. 얼마나 신선했으면 “첫 꽃이/피기 직전의 순간, 그 어떤 것도/아직 과거가 되지 않은 그 순간”을 시인은 “통달의 시대”라고 명명했을까.
그것을 우리 생으로 생각해 보자. 그건 이미 꽃이 흐드러져 “취하게 하는 그 한여름” 같은 성년의 시간은 아니다. 시행착오를 다 겪은 “그 선물”의 시간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일에도 자기가 소유하기 이전의 “첫 꽃이 피기 직전의 순간”, 미지수로 남은 그 무구한 시간의 ‘입구’를 살 필요가 있다.
우리 생이 연치는 이미 그 시기를 넘어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를 아니 다가올 시간을 ‘영원한 현재’의 시간으로 슬로비디오처럼 몸속에 간직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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