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헤그세스가 누구던가? 군 장성들 앞에서 “모든 것은 체력과 외모(!)에서 시작된다”라고 일갈하던 인물이 아니던가. ‘전사 정신(warrior ethos)’을 슬로건으로 한 그의 군 개혁 과정에서 난데없지만 ‘호르몬 농도’가 우선 덕목임이 분명해 보인다. 채혈로 ‘사내다움을 관리하겠다’는 식의 농담이 적어도 그에게는 심각한 진실이다. 그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관계를 과시하는 팟캐스터 조 로건, 논객 터커 칼슨도 즐겨 다루고, 밴스 부통령,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도 남성성과 신체 건강을 강조한다. 세계 곳곳에서 명분 없는 전쟁을 이어가더니만 어느새 팬티 속 테스토스테론이 정치 기호가 되어버렸다.
그럼,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란 무엇인가? 남성의 정자 생성과 성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근육량과 골밀도를 높이며 신진대사·기분·에너지에도 관여한다. 문제는 ‘남성호르몬’이라는 별명에 있다. 남탕에 출입하는 그들만의 전유물인 듯싶지만, 여기엔 깊은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놀랍게도 테스토스테론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만든다. 정말이다. 여성 몸에서도 에너지 수준과 뼈 강도를 떠받치는 중요 호르몬이 바로 테스토스테론이다. ‘여성호르몬’으로 잘 알려진 에스트로겐 역시 남자 몸 안에서 뼈와 심혈관 건강, 성기능, 콜레스테롤 조절에 관여한다.
그래서 뭘 말하고 싶으냐고? 호르몬은 남자 대(對) 여자라는 식의 정치적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가 드라마를 보면서 훌쩍거리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가정 내 긴급한 상황에서 여자가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호르몬은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더하고 덜하고 식의 균형 문제다. 처음부터 나뉜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연스레 바뀐다는 뜻이다. 신장 바로 위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부신(副腎)만 해도 그렇다. 흔히 남성 호르몬을 만드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오해다. 같은 전구 물질이 어떤 효소를 만나느냐에 따라 테스토스테론이 되기도, 에스트로겐이 되기도 한다. 쉽게 말해 남자 몸에서 여자 호르몬을 만든다는 말이다. 한 번의 채혈로 전사와 겁쟁이를 가르겠다는 발상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유행하는 ‘테토남, 에겐남’ 논쟁은 충분히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여성성이 우세한 남자’와 ‘남성성이 짙은 여자’라는 각각의 정의는 마치 남자에게서 부드러움을 제거해야만 진정한 사내고, 여자에게서 단호함을 빼야만 비로소 여자라는 성의 고정된 공식을 고착시킬 뿐이다. 현실에서는 주도적이고 직설적인 남자(테토남)도 좋지만 다정하고 섬세한 남자(에겐남)도 환영한다.
헤그세스 장관의 이번 발표에 미 민주당은 재깍 반발했다. 서머 리 하원의원은 “그럼 국방부가 ‘성 결정 치료’를 지지한다는 것이냐”라고 비꼬았다. 트랜스젠더 장병의 복무를 금지해 온 정부가 특정한 성별 표현을 확정하려고 호르몬을 운운하는 모순을 꼬집는 것이다. 젠더 이슈에서는 금기시되던 호르몬 치료가 방향을 바꾸자 국방 정책이 되었으니 웃픈 일이다. 늘 그런 것처럼 사안 그 자체보다 거기에 덧대는 의미나 프레임이 문제다.
한편 이란과의 전쟁이 5개월째 지루하게 이어지는 바람에 장거리 유도미사일과 방공 요격탄이 부족해지자, 미 대통령이 국방장관을 추궁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웬걸, 국방장관은 탄약 재고 부족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책임을 국방부 부장관에게 돌리더란다. 과연 이들이 테스토스테론남이 맞나 의심마저 드는 장면이다. 일단 백악관에서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테스토스테론 뿜뿜일 것 같은 둘이 사실은 에겐남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홈
오피니언
연재
박성철의 문화단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