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 때 중국정부가 내어놓은 처방이 ‘청폐배독탕’인데 이를 보고 의문이 생겼습니다. 청폐배독탕은 하기도 감염을 전제한 처방으로 그 병의 원인을 낮은 기온과 높은 습도에서 보고 있습니다. 즉 추위와 습기라는 거죠. 일반적으로 감기라는 병의 기운은 추위와 건조한 공기인데 우한은 중국대륙 한복판에 있습니다. 알려진 우한의 기후는 ‘평균적으로 온난하고 연평균기온이 서귀포보다 높다. 겨울의 습도가 75%이고(중략), 체감온도가 낮다. 서유럽과 비슷하다’입니다. 박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러스가 한습한 환경을 만나 변형되면서 인간에게 넘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우한과 비슷한 기후를 가진 서유럽에서 코로나가 쉽게 퍼지는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호흡기바이러스는 잘 달라붙습니다. 지난 19일 발표된 코로나바이러스 반감기를 살펴보면 공기 중에서는 66분, 스테인리스 5시간 30분 정도, 플라스틱 약 7시간, 구리 46분입니다. 대략 일상생활에서 12시간 이상은 돼야 바이러스가 사라진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손 씻기랑 마스크사용이 중요합니다. 또한 배달한 식재료의 경우 소독이 불가능하다면 12시간 정도 방치 후에 조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입니다. 에탄올소독 후에는 몇십분내로 사멸하니이 또한 권장할만 합니다. 면마스크도 안하는 것보다는 좋지만 가급적 면마스크도 일회용으로 쓰고, 확진자의 근거리에서는 면마스크로는 막을 수 없다는 점 알고 계십시오. 현재 대기건조, 난방 마스크 착용 등으로 코·입·목 건조 환자분들이 많이 내원하고 있습니다. 건조한 경우 호흡기에 미세한 상처가 생기고 이에 코로나뿐 아니라 모든 바이러스들이 잘 달라 붙습니다. 지금은 환절기로 코로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감기도 많이 유행됩니다. 평소보다 따뜻한 물을 조금씩 많이 자주 드시길 권합니다. 특히 생수보다 유자, 오미자, 매실 등 진액을 돌게 하는 새콤달콤한 차가 좋습니다. 바이러스는 열에 약합니다. 다만 밖에서 열로 사멸시키려면 70~80℃ 이상의 열이 필요해서 사람이 다칠 염려가 있습니다. 대신 숙주의 열에는 1℃의 변화에도 민감합니다. 그래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를 이기기 위해서 인체가 견디는 내에서 열을 올리게 됩니다. 즉 습기를 줄이고 열을 올릴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운동입니다. 집에서라도 약간의 땀이나고 열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숨소리 호흡기관리법[BREATH] (B)lock 좋지 않은 공기 막아주기 마스크 (R)elieve stress 스트레스 풀어주기 (E)ssential nutrient 충분한 영양 보충하기 (A)erobic exercise 유산소 운동하기 (T)ea 따뜻한 물을 차마시듯 조금씩 자주 마시기 (H)eat 몸을 따뜻하게 하기 (E)nough sleep 충분한 수면 취하기은 모든 호흡기 계통의 문제에 항상 옳습니다. 기억하세요.
신라의 왕족과 귀족들이 묻힌 경주 쪽샘지구 발굴현장에서 신라시대의 토기가 출토됐다. 토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그림은 지난 10월 17일자 언론에 공개되었다. 향가를 연구하는 필자는 그림의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향가 제작법에 의해 설명이 가능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림들은 향가 문화를 있는 그대로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향가 제작법을 토기 그림에 적용해 그림이 가진 의미를 풀어보겠다. 최초의 향가는 <서동요>다. 진평왕 때 만들어졌다. 진평왕은 서기 579~632년 재위했다. 토기의 그림은 1500여 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서기 500년 대 만들어진 토기다. 즉 향가가 만들어지던 시기에 토기도 만들어졌다. 시기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림을 보면 행렬 맨 앞에 기마무인이 가고 있다. 이 기마무인은 흉노의 왕으로 분장한 사람일 수 있다. 흉노족은 기마 유목민족이었다. 흉노는 신라와 관계가 깊다. 흉노의 일파가 경주에 이주해 신라의 헤게모니를 잡았다는 여러 증거가 제시되고 있다. 신라 향가와 고려향가에는 ‘돌(頓)’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있다. 신라향가는 <원가>이고, 고려향가는 <보개회향가> 등 6개의 향가에 출현한다. 25편에 불과한 향가에서 이 정도라면 엄청난 양으로 보아야 한다. 돌(頓)이라는 글자의 사전 상 뜻은 ‘흉노왕의 이름 돌’이다. 흉노의 왕 중에서 ‘돌(頓)’이라 는 글자를 쓰고 있는 왕은 ‘묵돌(冒頓)’이다. ‘돌(頓)’은 향가의 보언(報言)으로써 ‘묵돌’을 특정해 가리키고 있다. 향가의 작자가 향가를 연출하는 이에게 ‘묵돌왕’을 나오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글자였다. 그림의 행렬 맨 앞에 서있는 기마무인이 흉노족의 왕 ‘묵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기원전 202년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자신을 공격해오자, ‘백등산’이라는 곳에 7일간 포위하여 ‘유방’을 죽음 직전까지로 몰아 넣었다. ‘유방’은 겨우 도망친 뒤 ‘묵돌’ 형제의 맹약을 맺는 처지가 되어야 했다. ‘묵돌’ 동시대의 중국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화신이었고, 흉노족에게는 전설의 영웅이었을 것이다. 흉노족의 위대한 왕을 알고 있었을 신라인들은 그로 분장한 기병장수를 맨 앞에 세워 무력시위를 벌이도록 하였다. 흉노의 왕은 아마도 자신의 후손이었을 망인이 나가는 길을 앞에서 열어 주었다. ‘묵돌’의 뒤를 이어 3명의 춤추는 사람이 나온다. 남자 2명, 여자 1명이다. 여자가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신라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했을 것이다. 삼국사기 잡지(雜誌)에는 춤추는 이들을 무척(舞尺)이라고 했다. 이들의 독특한 춤사위 모습은 ‘노를 젓고 있는 동작’과 흡사하다. 우리 향가와 일본의 만엽집을 막론하고 보언(報言)으로 ‘노젓는 소리 애(乃)’라는 글자가 많이 나온다. 무척(舞尺)들의 자세가 노젓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본다면 행렬 아래 있는 기하학적 문양은 물결일 것이다. 영혼이 배에 타고 물을 건너가고 있다. 행렬 윗부분의 기하학적 문양은 별이다. 망자의 영혼은 별 빛 아래 배를 타고 이승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망인은 뱃사공이 부르는 노젓는 소리를 이별가 삼아 가까운 가족들과 헤어진 다음, 저 멀리 저승으로 나서고 있다. 신라인의 내세관을 보여준다. 또한 귀인의 앞에서 춤을 추는 문화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처용가> 이야기에 따르면 길을 가던 헌강왕 앞에 동해 용왕이 아들 7명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토기 그림에는 주인공 앞에 6명이 있다. 헌강왕 앞에서 ‘처용’의 일행이 행하던 무용극과 비교해 볼 때 장면이 흡사함은 물론이고, 규모까지도 비슷하다. 특히 일본 만엽집 89번에는 서기 700년대 ‘헨바이’라는 장례의식이 나온다. 헨바이(反閇, へんばい)는 귀인이 외출 등을 할 때 陰陽師(おんようじ)가 행한 주법(呪法) 으로서, 주술문을 외며 춤을 추며 특이하게 발을 내딛는 걸음걸이다. 이는 사기(邪気)를 물리치고 정기(正気)를 불러와, 행복을 빌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장례풍습일 것이니 그림의 무용 장면은 일본 헨바이(反閇, へんばい) 문화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활을 쏘는 두 사람이 나온다. 향가에 의(矣)라는 보언(報言)이 나온다. 의(矣)라는 글자를 보면 화살촉 모양의 삼각형(厶, 마늘 모) 아래 ‘화살 시(矢)’라는 글자가 놓여 있다. 사전은 화살 모양을 본뜬 문자로 풀이하고 있다. ‘화살을 쏘는 동작을 하라’고 지시하는 문자다. 활을 쏘아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이다. 제물로 바치겠다는 뜻일 것이다. 특이한 점은 활의 방향이 행렬의 진행 방향과 거꾸로라는 것이다. 무언가 의식을 치르고 있고, 그 의식에 담긴 의미가 있었기에 망인 쪽을 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동물로는 말, 개, 멧돼지, 사슴이 나오고 있다. 말은 향가에도 나온다. 신라향가에는 <처용가>에 나오고, 고려향가에는 <예경제불가> 등 3곳에 나온다. 그러나 개와 멧돼지, 사슴은 신라와 고려향가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향가 연구 방향 하나가 제시되고 있다. 맨 마지막에 망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말을 타고 있다. 망인 역시 기마인물이다. 토기의 그림은 말을 탄 망인의 영혼 앞에서 기마 무사가 무력시위로써 길을 열고, 무희들이 나와 사기(邪氣)를 물리치거나 저승으로 인도하는 모습의 춤을 추고, 화살을 쏘아 제수를 마련하고 있다. 장례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당시 신라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고대인들의 떠들썩한 장례 행사가 그려져 있는 것이 토기의 그림이다. 그러한 문화는 향가에 녹아들어 있고, 토기에도 그림으로 스며 들었다. 토기의 그림은 신라 문화의 한 단면을 정확히 포착해 사진처럼 찍어놓은 작품이다. 신라사회에서 흉노의 위치를 설명하는 작품을 실물로 보게 되어 반갑다. 흉노왕 ‘묵돌’은 장례를 치르고 있는 집단(왕족)이 그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고, 자신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매개체였고, 자기집단 외의 신라인들에게 자신들의 과거를 자랑스럽게 과시하던 인물이었다. 향가가 신라의 문화를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특히 향가 제작법이 유물까지 해독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 향가 연구자로서 의미심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향가 제작법으로 그림을 풀었지만, 역으로 토기의 그림이 향가 제작법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민족 대 명절 추석이 지나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부니 정말 가을이 온 걸 말해주는 듯하다. 축제의 계절답게 전국적인 행사·축제에서부터 동네 소모임, 야유회까지 각종 행사와 모임이 개최되고 있다. 우리 고장 경주에서도 새로운 가을의 상징으로 거듭난 핑크뮬리가 아름다운 군락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하고 있고, 지난 3일부터 시작한 ‘2019 제47회 신라문화제’를 시작으로 각종 행사와 축제가 한창이다. 규모가 크든 작든 각종 행사·축제가 열리는 것은 지역민·관광객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지만 선거관리위원회 입장에서는 염려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정치인들의 기부행위이다. 내년에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예정돼 있기에 많은 정치인들과 그 관계자들이 이 시기에 지역 행사·축제·모임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얼굴을 비추고 유권자들의 호의를 사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전이나 물품이 오고 갈 수도 있는 데 공직선거법에서는 이것을 ‘기부행위’라고 한다. 공직선거법에서 말하는 기부행위란 “선거구안에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 및 선거구민의 모임이나 행사 또는 당해 선거구의 밖에 있더라도 그 선거구민과 연고가 있는 자나 기관·단체·시설에 대하여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의 제공, 이익제공의 의사표시 또는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말한다. ‘기부행위’ 라는 말만 놓고 보면 바람직한 행위 같지만 선거와 관련하여 정치인들의 기부행위를 무제한 허용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행사·모임에서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의 제공 또는 찬조·후원금 명목으로 막대한 금전을 살포하는 등 유권자들의 표심을 돈으로 사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공직선거법에서는 이러한 ‘금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의장·정당의대표자·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 포함)와 그 배우자에 대해 상시적으로 기부행위를 제한하고 있으며 위반 시 처벌 조항도 두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부행위를 한 자 이외에 기부행위 수수자에 대해서도 제공받은 금액 또는 음식물 등 가액의 10배 이상 50배 이하에 상당하는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최고 3000만원)을 두고 있다. 과거 입후보예정자가 지역 축제에 참석해 주민들에게 상품권을 돌리거나 산악회 모임에서 출마 예정자가 차량지원과 음식물을 제공한 것이 적발되어 금전·물품 등 수수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가 모두 이 때문이다. 이처럼 선거와 관련없이 단순히 선의인 줄 알고 받았다가 나중에 수십 배의 과태료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과태료 부과 대상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각종 행사나 모임 참석 전에 해당 행사·모임의 성격이나 주체 등을 반드시 확인하고 누군가 선물을 건네거나 단체모임에서 식사를 제공한다고 할 때 거절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정치인들로부터 금전이나 물품, 식사 등을 제공받았더라도 자수를 한다면 과태료를 감경 또는 면제 받을 수 있으니 선거범죄신고 대표전화 1390으로 걱정말고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 정치인들의 기부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매년 각종 홍보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철마다 기부행위로 인한 조사와 처벌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끊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주의를 기울이고 적극적인 신고·제보를 통해 대한민국 공명선거의 뿌리를 더욱 튼튼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활동성이 극대화되어 있는 시니어세대를 위한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젊은이들과 함께 어떻게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 지금의 50~60대는 기존의 그들과 달라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어떤 좋은 단어라도 ‘고령을 의미하는 말로는 불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동안 노인하면 긍정적인 느낌보다 부정적인 느낌의 언어가 더 많다. 이렇게 노인의 인식을 바꿔주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디어. 100세 시대에 맞춰 다양한 노인들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시니어 예능은 2013년 <꽃보다 할배>을 시작으로 <님과 함께 > < 불타는 청춘> 등 많은 프로그램이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니어 예능의 매력은 신선함, 편안함, 진솔함, 은은함이 아닐까 한다. 20대나 30대가 주를 이루었던 예능 무대에 시니어 세대가 등장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신선하다고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는 자기 표현력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연륜에서 나오는 대화 속 진솔함 등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70만명이나 되는 구독자를 보유한 박막례 할머니(73)는 유튜브를 통해 얻은 인기로 TV에도 진출 해 시니어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막례 할머니는 ‘박씨네 미장원’을 통해 베트남에서 미용실 도전기를 펼치고 있다. 박씨네 미장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5인의 뷰티 셀럽이 베트남호이안 올드타운에서 야심차게 미장원을 개업하고 K-뷰티를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뷰티 예능프로그램이다. 박막례 할머니는 “내 유명세 처음에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엄청 무서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날 보러와요-사심방송제작기’를 통해 유튜버로 데뷔한 가수 노사연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아 유튜브 뷰티 채널 ‘식스티 앤 더 시티(sixty and the city)’를 개설했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뛰어들었다”는 출사표에서 알 수 있듯 시니어 세대가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뷰티, 패션,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를 경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가에서도 시니어 배우들의 예능도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에서는 연기 경력 도합 120년이 넘는 배우들의 할리우드 도전기가 펼쳐지고 있고 ‘오늘도 배우다’에선 배우들이 일명 ‘인싸 문화’(인사이더, 최신 유행과 트렌드를 잘 아는 사람)를 배우는 과정을 그린다. TV에 나오는 시니어 예능인은 일부에 그친다. 그러나 지역에는 많은 시니어 예술인들이 구석구석 찾아가 많은 젊은이들과 시니어들을 감동으로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다. 바로 액티브 시니어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며 외모와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하며 지역사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하여 예능활동을 한다. 나이를 떠나 당당하고 멋진 춤과 노래 악기연주로 솜씨를 뽐내는 그들이 진정한 연예인이다. 경주에도 다양한 경험과 지혜를 가진 하늬소리연주단, 행복예술공연단, 아리랑보존회, 하나예술공연단, 경주상록봉사단 등 노인재능나눔 활동가들은 모두 시니어 예능인이다. 시니어가 출연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이유는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니어의 예상 밖의 반응이 재미를 높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시니어가 직접 콘텐츠 생산자로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뷰티, 패션, 라이프스타일을 몸소 체험하는 방식도 실버층 뿐 아니라 젊은층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방송가에서 시니어들이 새로운 콘텐츠 소비층인 ‘실버서퍼(인터넷, 스마트폰 등 스마트기기를 능숙하게 조작하는 고령층을 일컫는 용어)’로서, ‘콘텐츠 프로슈머’로서 자리매김하는 건 시간문제다. 세대 간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출연진들처럼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시니어 트렌드를 주도하는 '실버 서퍼'를 예로 들 수 있다. 실버 서퍼는 노인을 의미하는 실버(Silver)와 인터넷 서핑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서퍼(Surfer)를 합친 말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을 잘 다루는 장년층을 말한다. 시니어세대의 활약은 지속될 것이고 그들을 겨냥한 문화콘텐츠도 계속 개발될 것이다. 이렇듯 대중의 일상적 삶에 시니어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시니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제시한다면 생산적 존재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니어 문화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 시작과 함께 투자유치와 시장개척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였다. 대구·경북에서 장거리 국제선 비행기를 타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KTX를 타든지 자동차를 이용하든지 인천공항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한나절을 꼬박 길 위에서 허비해야 한다. 불편하고 시간이 아까워도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참을 수 있지만 외국의 투자자나 바이어들은 그런 불편을 감수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어렵게 외국에 나가서 그들을 만나도 투자 요청 이야기를 꺼내면 공항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기 일쑤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오가는 길이 불편하니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100명 중 겨우 다섯 명 정도만 대구·경북에 온다. 여객도 중요하지만 공항의 핵심기능은 물류다. 현재 연간 3만t에 이르는 대구·경북 항공물류의 대부분은 300km나 떨어진 인천공항을 이용하고 있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제품을 무진동차량으로 수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대구·경북에 물류공항이 있다면 수송비는 크게 절감되고 지역산업의 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지금의 대구공항으로는 불가능하다. 3500m가 넘는 활주로를 보유한 새로운 통합신공항을 건설해야만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지방에 그런 공항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의 논리이고 지방을 무시하는 말이다. 우리 스스로 평가 절하할 필요는 더욱 없다. 대구·경북은 인구나 경제규모 면에서 웬만한 나라와 비슷하다. 인구는 싱가포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선진국들과 비슷하고 GRDP도 약 150조 원으로 핀란드의 절반에 육박한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대구·경북과 인구가 비슷하지만 세계적인 창이공항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경북이 하나로 뭉쳐 경쟁력을 만들면 얼마든지 하나의 나라처럼 운영할 수 있다. 통합신공항이야말로 경쟁력의 필수 인프라다. 대구·경북은 산업화시대 까지만 해도 모두가 부러워할 정도로 잘 나갔다. 1960년대에는 인구가 가장 많을 때가 있었고 대구 섬유, 포항 철강, 구미 섬유는 수출입국의 상징으로 불렸다. 그러나 21세기 세계화시대에 국제관문을 제때 만들지 못했고 그것이 오늘날 대구·경북이 힘겨워진 가장 큰 이유다. 반면에 인천은 2001년 영종도에 국제공항을 마련한 이후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는 대구를 추월해 3위 도시로 커졌고, 지역내총생산은 부산을 앞질러 서울 다음의 2위 도시로 성장했다. 대구·경북이 지금이라도 만사를 제쳐두고 세계와 연결된 하늘길부터 열어야 하는 이유다. 한편, 부산·경남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이 먼저 된다면 상관할 까닭이 없다. 가덕도 추진에 부정적인 것은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차질을 우려해서이다. 가덕도와 달리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공항이전특별법에 따라 진행되는 만큼 하루빨리 최종 후보지가 확정되고 신속하게 건설되는데 집중하면 된다. 대구시민과 경북도민들께서 대구·경북의 하늘길이 될 통합신공항에 뜻을 모아주셔야 한다. 대구와 경북이 손을 잡고 세계로, 미래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10년 후 한적한 시골마을이 멋진 국제공항으로 변모하고 세계 각국으로 오가는 비행기가 분주하게 뜨고 내릴 것을 기대한다. 공항을 중심으로 고속도로와 전철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대구와 경북이 함께 비상하는 모습을 말이다.
내남사거리 대릉원 서쪽 담에서 시작되는 황리단길은 경주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성하여 만든 닉네임이다. 이 길은 tvN의 인기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언급될 정도로, 요즘 경주에서 가장 많은 이목을 끌고 있는 거리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점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에 화답하듯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급기야 경주시장도 관심을 갖고 상인들과 만나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황리단길을 많이 찾는 이유가 뭘까?” 페북의 한 지인이 던진 화두다. 필자는 지역재생이란 차원에서 황리단길의 신선한 변신과 그 긍정적 효과들에 대해 마침 관심이 많았던 터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황리단길 신드롬’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황리단길은 좋은 부동산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간 너무나 침체되어 있었지만 입지와 접근성만큼은 양호한 곳이었다. 몇몇 선구자 역할을 한 상인들의 등장으로 활기를 찾기 시작하더니 이내 젊은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잠재되어 있던 부동산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리단길의 성공으로 인해 유사 이름의 ‘*리단길’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황리단길이나 망리단길에 앞서 경리단길의 좋은 이미지가 선행하기 때문이다. 간혹 황리단길이 뜬금없는 이름이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 네이밍이 이곳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건 분명하다. 황리단길의 건물은 비록 속은 현대식 상점이지만 겉은 황남동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통 안에 현대가 파고든 독특한 외관이 특별한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음식점, 사진관, 서점, 카페, 빵집 등 상점 구성이 다양하다. 그래서 황리단길은 걷고 싶은 거리가 되었다. 몇 걸음만 걸으면 다른 풍경이 연이어 펼쳐져 심심하지 않다. 그래도 ‘황리단길 신드롬’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민간의 자발적인 생태계 구축 노력에 있지 않나 싶다. 상인 각각의 이기적인 노력이 전례 없는 명소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관주도로 만든 ‘봉황로 문화의 거리’와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는 경주시의 역할 변화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쭙잖은 도심재생 기획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잘 듣고 해결해주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 황리단길의 부동산 가격은 유명세에 비례하여 급속하게 올라가고 있고, 언젠가는 이곳의 상인들도 비싼 임대료 때문에 떠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이들이 도심재생 및 활성화에 기여한 만큼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사유재산제도와 충돌하지 않도록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 성동구는 지난 2015년 9월에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강남구는 건물주와 수차례 간담회를 진행한 후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착한 임대료’ 방침을 세웠다. 서울시는 5년 이상 임대료 인상 자제를 약속한 ‘장기안심상가’ 신청 건물주에게 상가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대책들은 건물주와 임차 상인에게 미리 신호를 보내 불확실성을 줄이고 영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다. 황리단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주시가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다.
tvN의 새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지난달에 경주 편을 방영했다. 알쓸신잡은 유희열(뮤지션)이 사회를 보고, 유시민(작가), 황교익(맛 칼럼리스트), 김영하(소설가), 정재승(과학자) 이상 네 명이 패널로 출연해 말 그대로 잡다한 지식의 향연을 펼친다. 한마디로 중년 남성들의 지적 수다 프로그램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알쓸신잡은 벌써 시청률 6%를 넘어섰다. tvN이 케이블 방송국이라서 그렇지, 만약 지상파라면 10%를 넘을 것이 확실하다. 스타급 인사들이 출연하기는 하지만 알쓸신잡은 그래도 교양 프로그램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알쓸신잡은 왜 이리 인기가 많은 걸까? 이 프로그램은 명사들의 지적 대화를 엿듣고 싶은 일반인들의 욕망을 해소시킨다. 보통의 중년 남자들이 나누는 돈 이야기나 뒷담화가 아니다. 별로 쓸데가 없는 것 같지만 뇌에 청량한 자극을 주는 지적 대화가 오간다. 알쓸신잡을 보면 내가 명사들의 대화에 살짝 끼어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는 매스미디어인 TV가 부리는 마술이다. 대화 중에 방출되는 정말 다양하고 흥미로운 지식들이 지적 즐거움을 준다.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진 뷔페에 온 느낌이다. 출연자들은 자신의 전문분야 말고도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와 소설가가 만나더라도 거침없이 풍성한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그들의 대화는 현장답사를 통해 진정성을 획득한다. 스튜디오에서 머리만 써서 나누는 대화가 아닌 신선도가 제대로 높은 대화다보니 시청자들의 수용도가 커진다. 요컨대 알쓸신잡의 인기비결은 ‘지식을 재미있게!’, 즉 지식에 오락을 참으로 잘 버무린데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신라에 황금이 왜 많을까라는 화두를 던지면 서역과의 교류로 들어왔을 거라고 받아친다. 곧 처용가가 도마에 오르고, 처용의 국적이 오만이라는 썰(오만의 문화부 장관이 주장하는)이 등장한다. 오만에는 신라라는 지명도 있단다. 또 ‘감주’를 김유신 음료라 이름 붙여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로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장군이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장수(漿水)를 맛보고 출정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 때문이다. 2주 동안 알쓸신잡 경주 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경주시도 학연과 지연을 무시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을 모아 알쓸신잡과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정책을 개발하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다행히도 경주는 온 국민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도시라 특별한 지식인들의 남다른 애정을 받고 있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들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 필자는 알쓸신잡의 출연자들이 테이블에 모여 대화하는 모습이 마치 신라시대의 화백회의처럼 보였다. 아마 옛날의 화백회의는 이처럼 자유롭게 의사가 개진되는 장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장일치는 자유로운 논의 끝에 도달하는 후회 없는 선택의 결과일 터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액션(action)이다. 회의에서 도출된 아이디어가 좋은 줄 알고 과감히 시행하는 것은 오늘 날의 경주시에 필요한 공감능력이자 행정능력이다.
과거에 문화는 뭔가 고상한 걸 의미했다. 예술이나 학문 정도는 되어야 문화의 축에 낄 수 있었다.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도 한정적이었다. 문화인은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호칭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문화는 인간 생활양식의 총체로 외연이 확장되었다. 예술이나 학문 말고도 음식이나 패션, 그리고 주거방식까지도 문화를 꾸미는 수식어가 됐다. 문화는 일상생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 돼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생활문화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문화가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새 정부 문화정책의 핵심 이슈다. 일단 공연장, 전시장, 영화관, 유적지, 경기장 등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설에서의 문화소비와 생산이 공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따라서 지역에서 문화시설을 위탁 운영하는 문화재단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역문화시설은 생활문화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해야 한다. 좋은 공연과 전시로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건 기본이다. 나아가 주민들이 훌륭한 문화 생산자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는 문화예술교육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교육을 통해 문화소비를 더 잘 하게 되고, 생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클래식 기타 마니아인 A씨는 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하는 기타연주 공연을 빠짐없이 관람한다(문화소비). A씨는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문화예술회관 예술아카데미에 수강신청을 한다(문화예술교육). A씨는 맹연습 끝에 문화예술회관에 가족과 친구를 초대해 독주회를 연다(문화생산). A씨의 사례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이때 지역문화재단은 A씨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먼저 악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다. 유용한 구매정보를 주든지 공동구매를 주선하면 된다. 다음은 좋은 선생님이다. 역량 있는 선생님을 합리적인 수강료에 모신다. 마지막은 공간적 배려다. 생활 예술인을 위한 연습장 및 공연장 대관에 인색하면 안 된다. 나아가 생활 예술인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마당까지 만들어주면 더욱 좋다. 생활문화의 확대는 어린아이부터 A씨 같은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까지 대상에 제한이 없다. 또한 음악, 미술, 체육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어린 아이에게 문화를 공기처럼 향유하게 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이들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은 정서가 결여된 공교육의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나아가 창의력 제고는 물론 예술영재나 체육영재가 출현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문화소외계층에게 생활문화는 탈(脫)소외를 촉진한다. 문화를 통한 공감은 요즘 같은 공동체 붕괴의 시대에 특효약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경주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경주예술의전당은 생활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사업이 펼쳐지는 다목적 문화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할 것이다. 전당이 예술이라는 미명으로 시민들을 주눅 들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전당은 시민들이 만만하게 보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찾게 된다. 생활문화의 확산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문화재단은 전례 없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무대 위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예술가와 스킨십을 나누고 함께 즐거운 문화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다. 대선 승리의 기쁨에 취할 여유가 없다. 풀어야할 과제가 참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중에서 문화정책만 살펴보기로 하자. 대선공약을 참고하건데,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행정의 공정성 강화와 생활문화의 확대에 초점이 있다. ‘공정성’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다름 아닌 ‘블랙리스트’ 파동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에 큰 영향을 미친 사안이니만큼 적폐청산 차원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더불어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의 준수가 요망된다. 이 원칙은 정부가 문화예술지원에서 팔길이 만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흔히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한다. 경주의 상황은 어떤가. 팔길이 원칙은 경주문화재단에 대한 시의 지원에 꼭 적용해야할 원칙이다. 1945년 영국에서 예술평의회(Arts Council)를 창설할 때 이 원칙은 정치권력과 관료의 간섭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예술평의회는 독립성을 갖고 문화예술 지원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팔걸이 원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원칙은 문화재단이 지역 예술가(또는 단체)를 지원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시에게 팔걸이 원칙의 준수를 요구하면서 정작 문화재단이 이 원칙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문화재단은 시와의 관계에서 간섭받지 않을 역량이 필요하다면, 예술가(또는 단체)와의 관계에서는 따뜻한 믿음이 필요하다. 두 번째 화두인 생활문화의 확대는 무엇인가. 누구나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한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는 문화·체육·관광 지출에 대한 세액공제, 통합문화이용권(문화누리카드)의 사용처 확대 및 지원금액 현실화,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확대, 동네 생활문화 환경 조성 및 생활문화 동아리 활성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경주는 이중에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확대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소비를 늘리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문화생산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진정한 문화예술의 향유는 후자에 있다.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거나 축구경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내가 직접 연주하고 공을 차는 것이 더 만족스럽다. 이참에 먼저 경주시의 생활문화 현황도 파악해보자. 생활문화 동아리가 얼마나,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생활문화 정책 입안의 기초행위다. 이들의 애로사항을 들어보면, 지원의 방향이 나온다. 활동공간이 부족하면 공간을 구해주고, 사람이 모자라면 채워주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공공시설물의 가동률이 높아지고, 지역 네트워킹이 가속화된다. 지금껏 살펴 본 새 정부의 문화정책, 즉 문화행정의 공정성 강화와 생활문화의 확대는 사실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추진되어야 할 과제들이다. 문화의 주체는 지역이다. 지역 특유의 문화를 정책을 통해 발현해야한다는 뜻이다. 경주시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기존의 지역문화정책을 되돌아보고 지역밀착형, 시민친화형 문화정책으로 개선의 방향을 모색하면 어떨까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는 것’은 지혜이고, ‘보이는 것’은 포착됨이다. 지혜가 있어야 어떤 사안을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할 수 있다. 이 말은 공공행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야 한다. 자칫 ‘앎’이 부족해서 국민들의 애로사항을 포착하지 못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 공부해서 내공을 쌓으면 대체로 얻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내공이 지식이 아닌 지혜가 되려면 다른 실천적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저암(著菴) 유한준(兪漢雋)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라 했다. 앎의 전제가 사랑임을 피력한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에로스(eros)적 사랑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떤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에 가깝다. 아이디어 뱅크로 소문났던 경주시의 한 고위간부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곳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곳이 고향이든 아니든 관심을 기울이면 좋은 아이디어가 생긴다는 것이다. 공공행정은 국민들의 세금을 투입하여 무형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과에 해당하는 무형적 가치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책임설명(accountability)이라고 한다. 사업계획서에서 기획의도나 기대효과, 결과보고서에서 정성적 성과가 책임설명에 해당한다. 이는 통제환경인 의회나 언론의 견제에 대응하는 집행부의 가장 긴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의 행정에서 이러한 책임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사업은 담당자조차도 왜 하는지를 잘 모른다. 관성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편이다.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은 ‘앎’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앎’은 사랑에서 발현한다. 만약 책임설명이 안된다면 그건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공공행정, 특히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문화예술행정에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정말 필요하다. 문화예술행정은 시민과 예술가를 만나게 하는 매개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에 대한 헌신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 수반되지 않으면 어떠한 문제도 포착해 낼 수 없다. 반면에 헌신과 존경이라는 사랑에 창의적 아이디어가 조금만 가미되면 위대한 정책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 경우 책임설명은 굳이 꾸미지 않아도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도 진리지만 사실은 ‘사랑해야 보인다’가 더 큰 진리다. 문화예술행정의 주요 미션은 어디서나 문화적 아픔의 치유이다. 사랑하면 국민들의 아픔이 보인다. 사랑하면 더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랑하면 책임설명이 어렵지 않다.
경주시립극단의 올해 첫 번째 정기공연이 막을 올린다. 작품명은 ‘임대아파트’, 3월 9일 경주예술의전당 소공연장이다. 요즘을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임대’라는 단어에서 결코 편편치 않은 그들의 일상을 눈치 챌 수 있다. 이 연극은 고단한 삶에 지친 경주의 청년들에게 어떤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은 작품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시립예술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경주시가 극단 배우와 합창 단원에게 급여를 지불하면서 예술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얼까. 필자는 ‘지역예술진흥’이 시립예술단의 가장 큰 목표라고 생각한다. 작게는 계속적인 공연 준비로 단원들의 예술역량이 향상될 것이고, 크게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경주시민들의 예술향유권이 신장될 것이다. 이것은 민간에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시립예술단이 제대로 운영되려면 먼저 능력 있는 예술 감독의 존재가 필수다. 다행히도 경주에는 출중한 예술 감독이 시립예술단을 이끌고 있다. 극단의 김한길 감독과 합창단의 김강규 지휘자. 그분들을 품고 있는 건 분명 경주의 축복이다. 그 다음 요건은 편리한 접근성이다. 시민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도록 관람료는 저렴하고, 위치도 시내에 있으면 좋다. 시립예술단 공연 관람료는 몇 년째 5천원이고, 공연은 시설이 가장 좋은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다. 자, 그렇다면 남은 일은 무엇인가. 좋은 작품을 많은 경주시민이 관람하기만 하면 된다. 필자는 경주시민들이 시립예술단의 공연을 꼭 봐야할 이유를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시립예술단 공연만큼 가성비(價性比)가 뛰어난 공연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 바 가격(관람료)대비 성능(예술적 감흥)이 탁월하다. 관람료가 5천원이라고 해서 공연의 가치도 5천원인 것은 아니다. 김한길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1987년부터 109번째 공연을 준비해온 단원들의 연기내공이 합쳐진 연극 ‘임대아파트’의 1인당 가치가 어찌 5천원이라 할 수 있겠는가! 경주시는 문화 복지 차원에서 이렇게 저렴한 관람료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이 없다면 문화 복지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공연이라도 관객이 없다면 예산 낭비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가성비 산식에서 분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립예술단의 공연을 5천원에 관람하는 것은 사실 ‘횡재’이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청소년 공교육 영역부터 차근차근 관객을 늘리면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지역예술가를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주시민들이 시립예술단의 공연을 많이 보게 되면, 단원들이 스스로 긴장을 하게 되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된다. 노력의 대가는 ‘전석매진’으로 선순환을 이룬다. 꽉 찬 무대에서의 공연은 그 자체가 기쁨이다. 나아가 전국구 스타의 출현을 기대할 수도 있다. 시립극단에 황정민 같은 명배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꼭 필요한 아이템을 흔히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라고 한다. 이처럼 경주에서는 시립예술단의 공연이 ‘머스트 씨(must see)’ 아이템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고생을 중심으로 빠른 시일 내에 ‘1년에 1공연 보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 운동은 품격 있는 도시, 경주에서 자란 청소년들의 차별화된 감성 형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시립예술단의 우수하지만 저렴한 공연은 당연히 ‘꼭 봐야 할’ 첫 번째 아이템이다.
부산행, 터널, 판도라. 작년에 개봉하여 화제를 모은 재난영화 리스트다. 지난 3년 동안 세월호, 메르스, 9.12지진이 잇달아 훑고 지나간 사이에 ‘재난’은 충무로의 메인 테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는 의도대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더불어 재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설마?’ 했던 재난이 실제로 엄습했을 때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었던가. 믿었던 국가가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배가 가라앉고,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땅이 요동치는 긴박한 상황에서 국가는 무능했다. 이제 믿을 건 ‘나’ 자신뿐이다. 각자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신념이 사람들 마음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9.12지진 후 인터넷 오픈마켓에서는 20만원이 넘는 고가의 생존배낭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또한 재난 관련 도서의 판매량은 평소보다 10배 정도 폭증했다고 한다. 1분에 20개 이상의 지진발생 제보 글이 뜨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지진희 알림’ 앱은 국가재난문자보다 빠르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각자도생의 결과다. 재난이 현실이 되어버린 요즘에 각자도생의 방식은 재난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와 대응으로 초기 피해를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국가의 재난대응능력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사회 조장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공동체의 유대감은 상실되고 개인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재난만큼이나 큰 위기다. 지금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대전시실에서는 ‘재난에 대처하는 법, 준비족 연대기’라는 전시가 한창 열리고 있다. 준비족(preppers)은 미국의 TV시리즈물 ‘둠스데이 프레퍼스(doomsday preppers)’의 인기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도 재난에 대비한 생존 아이디어를 인터넷 카페에서 서로 공유하고 있는 준비족들이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알천미술관 전시에서도 준비족들의 생존비법은 필수 메뉴다. 각자도생에 충실한 ‘나’를 위한 정보들이 그림처럼 걸려있다. 하지만 전시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외연을 확장하여 ‘우리’들의 환경문제를 다룬다. 가뭄에 강한 올리브 나무를 재배하러 지중해의 작은 섬에 온 네덜란드의 토양복원전문가, 한국에서 잘 나가던 공기업을 그만두고 수도권에서 도시양봉을 시작한 꿀벌학교장, 태양광 연구보다 환경파괴 방지가 더 시급해 보여 환경운동에 투신한 젊은 과학자는 모두 준비족이지만 각자도생과는 거리가 멀다. 필자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은 작품은 서원태 작가님의 ‘human trees’(2016)이다. 이 작품은 미래숲이라는 NGO단체가 중국의 쿠부치 사막에 천만그루의 나무를 심는 모습을 드론(drone)으로 촬영한 것이다. 나무를 심는 이유는 한반도의 황사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드론이 광활한 사막 전경에서 나무 심는 사람들 위로 줌-인(zoom in)할 때, 관람객들은 벅찬 감동을 받게 된다. 사막 위에 심은 나무는 작품 제목처럼 인류를 위한 나무임에 분명하다. 이번 전시는 재난에 대한 각자도생의 방식이 초래할 수 있는 공동체 해체와 이기적 편협주의를 탈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대형재난이 일어나면 이젠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각자도생도 좋지만 미연에 방지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영화 판도라에서 재혁(김남길扮)의 희생이 연대감을 상실한 이기주의에서 온 재앙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필자가 정말 오랜만에 본방을 사수한 드라마가 있다. 지난주에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이하 ‘낭닥’이라 함)다. 강렬한 인상을 준 첫 방송이후 얼핏얼핏 지나쳐보다가 결국은 완전 빠져버렸다. 김혜수가 깜짝 출연한 번외 편까지 찾아보다니 말이다. 낭닥은 드라마 자체가 거의 완벽하다. 캐스팅은 알짜배기며 압권이었다. 한석규의 김사부 연기는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낭닥으로 다시 극왕(劇王)의 자리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 정우에 밀렸던 칠봉이 유연석은 드디어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또 오해영’의 뉴 히로인 서현진은 앞으로 로맨틱 코미디물의 대표주자가 될 것 같다. 낭닥의 이야기 흡인력 또한 매우 강력했다. 선과 악의 선명한 갈등구조, 거침없이 스피디한 사건 전개, 물고 물리는 러브라인은 소위 잘 나가는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성요소다. 낭닥은 불륜, 배신, 복수와 같은 막장 드라마의 억지를 부리지 않고도 막판 시청률을 30% 가까이 견인했다. 정말 보고 싶어서 기다려지는 월요일 밤 10시였다. 하지만 필자가 본방을 사수한 이유는 완벽한 캐스팅과 이야기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낭닥에는 사이다 같은 시원함이 있다. 사필귀정의 뻔한 해피엔딩이었지만 필자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 뻔한 엔딩을 갈구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가 기획 단계부터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금의 답답한 현실을 통쾌하게 타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특수한 장소지만, 낭닥에서 병원은 현실의 축소판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권력의 화신 도원장(최진호扮)에 맞서 싸우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도원장이 악의 축인 건 세상이 다 알고 있지만 그는 병원에서 계속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사부는 침묵한 채 도망쳤다. 그는 스스로 비겁했다고 고백한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이런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우리는 요즘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 용기 없는 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용기를 갖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거대권력 앞에선 특히나 그렇다. “진실을 알면 세상에 알릴 용기는 있나?” 김사부가 자신을 괴롭히는 오기자(김민상扮)에게 던진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비겁했던 자신에게 거듭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시골병원에서 신회장(주현扮)의 인공심장 교체수술을 성공한 후 김사부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부조리한 권력자 도원장에게 “그냥 닥치고 조용히 내려와!”라고 외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사이다 구호 아닌가. 낭닥은 대통령 탄핵의 원인이 된 국정농단의 사태를 그냥 비켜가지 않았다. 김사부의 대사는 일반대중이 정권에 하고 싶은 말이다. 이것은 권모술수(權謀術數)가 판치는 세상에 던지는 경고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갈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도 이 드라마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만큼 공감대가 크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필자를 안방극장에 붙잡아 둔 낭닥의 힘, 그리고 낭만의 힘이었다.
연말연시에 망년회니 신년회니 모임이 잦다. 자연히 술자리가 많아진다. 이런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놀이가 있다. 바로 건배사 릴레이다. 건배사에는 건강, 화합, 비전, 소원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세태를 풍자하는 건배사도 자주 등장한다. 센스 있는 건배사 하나로 술자리의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목격한 일이다. 어떤 회사의 신년회 모임인 듯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역시나 건배사 릴레이가 등장한다. 기발한 건배사에는 킥킥 웃음이 절로 나온다. 가만히 들어보니 가장 빈도가 잦은 ‘단어’가 도출된다. 무엇일 것 같은가? 이 모임의 건배사 키워드는 ‘사랑’이다. 사랑을 키워드로 하는 건배사는 크게 두 가지로 표현된다. 하나는 ‘사랑합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합시다.’이다. 전자는 넘치는 사랑, 즉 과잉사랑의 표현이다. 본인 자체가 사랑스러운 사람,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 열렬히 연애 중인 사람들이 이런 건배사를 애용한다. 반면 후자는 애정결핍이 반영된 구호다. 레츠 러브(Let’s love.)라니, 얼마나 사랑이 필요하면 이리 외친단 말인가. 건배사 ‘사랑합니다.’와 ‘사랑합시다.’는 이처럼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사랑’이란 말은 원래 은밀한 대화와 어울리지 않던가. 굳이 연인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 앞에 대놓고 말할 성질의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당당히, 공개적으로, 대놓고 사랑한다고 혹은 사랑하자고 말한다. 지금 경주예술의전당 1층에는 ‘그 남자 그 여자’라는 타이틀의 로비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남녀사이의 사랑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필자는 이중에서 김지애 작가님의 ‘가난한 날의 행복(2001)’이란 작품이 가장 좋다. 이유는 이렇다. 그림의 공간적 배경은 초라한 단칸방이다. 낡은 벽지 아래로 남루한 매트리스가 놓여있다. 그리고 그 매트리스 위에서 빨간 내복을 입은 여자와 흰색 런닝을 입은 남자가 사랑(키스)을 나누고 있다. 얼굴은 뭉개져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우리는 두 사람이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안다. 특히 1970~80년대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한 부부는 격한 공감을 하리라 생각한다. 이 그림이 전혀 외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공감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말이 건배사에도 난무하는 세상이다. 필자는 이런 상황이 조금 불편하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해서 꼭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진짜 사랑은 표현하지 않아도 안다. ‘가난한 날의 행복’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필자는 요즘 매일 마주치는 이 그림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형편이나 사정이 전에 비하여 나아진 사람이 지난날의 미천하거나 어렵던 때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처음부터 잘난 듯이 뽐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 속담을 잠시 뒤집어 음미해보면 어떨까? 개구리는 올챙이의 꿈이요, 도달해야할 이상향이 된다.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운영하는 예술아카데미에 ‘올챙이, 개구리를 꿈꾸다’라는 강좌가 있다. 아마추어 연극교실이라고 보면 된다. 전문 연극인이 아마추어 수강생들을 멘토링한다. 특이한 점은 동일한 수강생을 대상으로 최대 4년 동안 심화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작년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공모사업으로 선정되어 국비를 지원받은 ‘올챙이, 개구리를 꿈꾸다.’는 올해 2년차 심화과정을 진행했다. 올해는 30주 동안 몸짓, 발성 등 연극 기초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기성 연극을 관람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일부 수강생은 경주시립극단의 정기공연에 출연하는 행운도 누렸다. 모든 수강생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뜻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극 ‘하나꼬’를 낭독공연으로 준비했다. 30주차에 강의실에서 실시한 낭독공연은 분장도 하고, 의상도 갖춰 입는 격식을 차렸다. 비록 무대에서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이들 ‘올챙이’들에게는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난달에는 매우 감격스런 사건이 있었다. 참가에 의의를 두고자 ‘그냥’ 참여한 2016 문화예술교육축제(11월29일/대구아양아트센터)에서 ‘올챙이, 개구리를 꿈꾸다.’팀이 낭독공연 ‘하나꼬’로 4등상인 장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천석 규모의 대공연장 무대에 올라 연기한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큰 경험이 되었지만, 상까지 받게 되어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역시 상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경주에 돌아와서 장려상 수상을 자축하는 조촐한 저녁모임을 가졌다. 모두들 뜻밖의 쾌거에 다소 들떠 있었다. 평소에 하고 싶던 말을 자연스레 들려주기도 했다. 어떤 분은 연극을 하면서 우울증을 극복하고, 소극적인 성격이 쾌활하게 바꿨다고 고백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 수강생은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확인해서 좋다고 한다. 연극은 그 자체가 명약이고, 삶의 에너지인 것이다. ‘올챙이, 개구리를 꿈꾸다.’팀은 나이가 20대에서 60대까지 골고루 분포되어있다. 일본어 강사, 방앗간 사장님, 피부관리사, 대학생, 회사원, 전업주부 등 직업도 다양하다. ‘배우’라는 꿈을 잊고 살다가 뒤늦게 연극을 시작한 분들이 많다. 이들은 연극을 관객으로서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생산에서 오는 쾌락은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잘 모른다. 장려상의 부상으로 3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 이들은 연말에 봉사활동을 한 후 해당기관에 이 상품권을 기부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연극하고, 상 받고, 봉사하고, 기부하고...... 참 아름다운 흐름이 아닌가? ‘올챙이, 개구리를 꿈꾸다.’의 기획의도는 연극이 우리 경주에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있다. 2년차인 올해에 벌써 이런 좋은 일이 생겨 정말 기쁘다. 올챙이의 앞다리가 쑥 튀어나와 반쯤은 개구리가 된 것 같다. 앞으로 완전체 개구리가 될 수강생들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것보다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지난주에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행사를 치렀다. 고교 졸업 후 무려 30년 만이다. 열두 반 담임선생님 중 벌써 두 분이 돌아가셨다. 동기들은 30년 전 선생님들보다 더 늙어있었다. 전체모임으론 죽기 전 마지막이라는 농담도 오갔다. 하지만 올드 보이들의 모임은 화기애애했다. 사제지간의 옛 추억을 곱씹으며 저녁 내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마침 지난주엔 2017년 수능시험도 있었다. 30년 전엔 ‘학력고사’라는 다른 이름의 대입시험이 실시됐었다. 30년이 흘렀지만 대입시험은 여전히 사람을 등급화하고 있다. 등급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믿음 또한 여전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30년 전에 우수한 등급을 받은 학생이 과연 지금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요즘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에선 주말에 100만 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집회가 열린다. 놀라운 것은 불상사가 없는 비폭력 평화집회라는 점이다. 30년 전(1987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 선언으로 촉발된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박근혜씨는 그 후로 여섯 번째 직선제 대통령이 되었다. 30년 만의 홈커밍데이는 모처럼 과거를 더듬게 만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30년 전의 상황이 현재와 너무나 흡사하다. 이른바 판박이 데칼코마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고, 요구하고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은 통치 권력의 정당성 때문이라고 치자. 하지만 작금의 대통령은 뭔가.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이유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흔히 하는 말씀이 “훌륭한 사람이 되라!”다. 동기 중에는 정말 존경할 만한 ‘훌륭한’ 친구들이 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훌륭한 성품과 희생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에 1등급 우량학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러워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1등급 엘리트의 몰락과정을 요즘 자주 목격한다. 이들은 늘 1등급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나라가 법적으로는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지만 이걸 온전히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들이 안하무인인 이유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해서란다. 대통령 측근들의 밝혀진 작태를 보면 특히나 그렇다. 그의 선생님이 그리 가르치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우리 동기들은 격변의 1980년대에 중·고·대학을 다닌 50살 아재다. 한때는 386세대라 불리며 역사의 중심에 서있었다. 30년 전의 선생님과 동기들을 만나는 정말 설레는 자리에서 조차도 동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에 신경을 쓴다. 이미 많은 동기들이 가족들과 함께 광장에 나간 걸로 안다.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크고 작은 지병으로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든 처지에 나라 걱정이 한발 앞선다. 유쾌하지만 씁쓸하기도 한 홈커밍데이였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는 30년 만에 50살 아재들에게 준 시대의 숙제인 것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 법이 발효한지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워낙 논란이 심했던 법률이라 시행 초기부터 우여곡절을 많이 겪고 있다. 학생에게 캔 커피를 받은 교수가 고발(1호 고발)당하는가 하면, 고마움의 표시로 떡 한 상자를 경찰에게 보낸 민원인이 재판(1호 재판)을 받게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엄연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500원짜리 캔 하나가, 그리고 4만5000원짜리 떡 상자가 법적 처벌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런데 김영란 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금품 수수가 없어도 청탁만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과거의 관성적인 습관을 근본적으로 버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범법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영란 법을 3.5.10법이라고 요약하기도 한다. 시행령에서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으로 가액 범위(상한선)를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액은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법률 제8조 제3항 제2호)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가액 범위 안이라도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있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김영란 법과 관련하여,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공연장에서는 공연 초대권이 고민거리다. 법률 제2조 제3호 가목에는 금품의 하나로 ‘초대권’이 명문화되어 있다. 초대권은 경조사비가 아니니 선물로 봄이 마땅하다. 따라서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의 목적으로 5만원까지는 초대권이 허용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있으면 안 된다. 그간 공연 초대권은 언론사 기자와 공직자들에게 간간히 제공되었다. 기자들에게는 공연홍보를 목적으로, 공무원이나 시의원들에게는 ‘관례’상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초대행위가 모두 위법이 될 수 있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다른 공연장들을 살펴보니, 김영란 법 발효이후 공연담당 기자에게는 5만원 이하의 초대권이 제공되고 있었다. 이처럼 중저가 공연의 경우는 기존 방식대로의 초대권 발행이 가능하다. A석이나 B석 같은 5만원 이하의 좌석에 초대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티켓 가격이 10만원을 넘는 고가공연이다. 어떤 공연은 가장 저렴한 티켓이 5만원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기자들에게 초대권을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일각에서는 언론사가 소속 기자들에게 취재비로 공연티켓을 제공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언뜻 ‘더치페이법’의 취지에 맞는 것 같지만, 공연 선진국들의 사정은 이와 다르다. 뉴욕의 브로드웨이나 유럽에서는 기자들에게 ‘프레스 티켓’을 제공하고 있다. 프레스 티켓은 단순 초대권과 다르다. 후자는 어떠한 의무도 수반되지 않지만, 전자는 리뷰 등 취재 후 행위에 대한 의무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간 공직자들에게 초대권이 제공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공연장의 예산편성(공무원)이나 예산심의(시의원)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초대권을 제공할 수 없다. 이들에 대한 초대권 제공은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의 목적이 아니고, 직무관련성은 크기 때문이다. 괘씸죄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잘못하면 양자가 모두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지난달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개막식 초대권이 대폭 줄었다고 한다. 부산시는 지난해와 달리 영화제 조직위원회로부터 개막식 초대권 1000매를 받지 않았다. 초대권을 받아 유관기관이나 단체장에게 돌릴 경우 김영란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영란 법 시행 이후 진성 관객의 증가로 공연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초대권이 줄어든 만큼 그 자리가 진성관객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잡음이 생길 여지는 있다. 다양한 사례에 대한 법적 해석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김영란 법의 제정 취지를 고려하여 심사숙고하며 슬기롭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까지 경주는 독보적인 신혼여행지였다고 한다. 당시는 비행기 이용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제주도는 그다지 접근성이 좋은 곳이 아니었다. 수도권을 떠나 부담 없이 신혼여행을 즐기기엔 경주만한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주는 젊은 남녀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매우 희망적인 공간이었다. 그런데 신혼여행지의 패권은 이내 제주도로 넘어갔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경주는 신혼여행지로서의 입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경주는 비슷한 원인으로 수학여행지로서의 매력도 잃어버렸다. 이제 경주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공간이 더 이상 아니다.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도시, 관광보다 지진의 진원지로 더 유명한 도시, 솔직히 이것이 요즘의 경주다. 필자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지난 22일 경주엑스포공원에서 열린 ‘러브페스티벌 in 경주 2016’에서다. 이 행사는 작년에 경주엑스포공원의 경주타워(여)와 황룡원의 중도타워(남)를 결혼시키고 선포한 ‘세계 연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올해가 경주타워와 중도타워의 결혼 1주년인 셈이다. 많은 연인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주지하다시피 천년 고도 경주에는 신라시대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한 탑이 2개나 있다. 하나는 음각으로 만든 경주타워고, 다른 하나는 양각으로 만든 중도타워다. 두 탑은 서로 500미터 떨어진 보문의 최신 랜드 마크로, 경주의 지배적인 이미지가 되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남녀의 사랑이다. 남녀와 음양의 조화를 이토록 점잖고 근사하게 표현하고 있는 건축물이 세상 어디에 있던가! 경주는 양각과 음각의 초대형 탑으로 이루어진 이 지배적인 이미지를 관광마케팅에 적극 활용해야한다. 이 이미지가 전하는 메시지는 젊은이들에게 향해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려면 경주로 와라!’이다. 이 구호는 과거 신혼여행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만 쓰이진 않을 것이다. 경주가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는 ‘장소성’을 획득하는데 종국적인 목표가 있다. 경주는 다행히도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인프라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4월 벚꽃부터 10월 억새까지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충분히 유혹적이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도 그렇다. 그래서 인근 지역의 젊은 연인들이 경주를 많이 찾는다. 그러나 훨씬 폭발적이고 광범위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보강이 필요하다. 먼저 연인들이 갈만한 곳을 지정하고, 교통, 음식, 숙박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연인들에게는 먹고 즐기는데 다양한 할인 혜택을 주면 어떨까. ‘1+1 마케팅’을 다소 변형시키면 충분하다. 몇몇 장소에는 ‘프로포즈 존(propose zone)’을 만들어 은밀한 약속이 오갈 수 있도록 해주면 좋다. 대릉원 돌담길과 보문 호반길 물너울교가 최고의 후보지다. 러브페스티벌은 향후 연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로 계속 발전해가면 좋겠다. 축제를 통해 기상천외한 프로포즈 기법을 소개하는 건 어떨까. 경우에 따라선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도 있다. 포로포즈엔 누구든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공유하면서 때론 축하하고, 때론 위로받는 축제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사랑과 관심은 작금의 경주에 최고의 명약이다. 사랑이 함유된 프로그램은 관광객들의 수용가능성을 높이고, 그들의 가슴에 추억을 각인한다. 그리고 그 추억은 사람들을 다시 경주로 불러들인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모두에 필자가 말한 한줄기 희망도 바로 이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역성(地域性)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비근한 예로 의식주(衣食住)를 들 수 있겠다. 입고, 먹고, 사는 방식에는 지역 고유의 특성이 녹아 있다. 그럼 한 지역에서 조상 대대로 써온 언어는 어떠한가? 의식주만큼이나 강한 지역성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말’이다. 말은 지역성을 즉각적으로 보여준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의하면, ‘언어는 사고의 집’이다. 말은 생각이나 행동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생각이나 행동은 곧 문화이니 말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말, 사투리는 지역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상징체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사투리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유네스코는 제주도 사투리를 소멸위기의 언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다른 사투리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사투리 위기는 1960~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에 기인한다. 당시는 경제성장이 지고지선의 가치였고, 효율성을 위해 표준화가 필요했다. 말도 마찬가지다. 규격화된 말이 바로 표준어다. 압축성장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말에도 규격이 적용된 것이다. 그 결과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왠지 시대에 뒤쳐진 사람 취급을 받았다. TV 드라마에서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하층민이거나 빈곤층이었다. 대중매체가 근거 없는 고정관념(stereotype)을 만들어냈다. 당시 사투리를 쓰는 필자의 친구들도 서울생활 초기에 말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완벽한 표준말 구사자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투리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고, 문화다양성이 문화의 핵심인자로 부상하면서 사투리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영화 ‘황산벌’(2003)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를 보면 영남과 호남의 사투리가 재미난 대결양상을 보인다. 걸쭉한 사투리가 주는 청각적 즐거움이 흥행(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4일 열린 ‘경주말 겨루기 한마당’은 시의 적절했다. ‘모디소! 떠드소! 즐기소!’ 라는 슬로건 아래 경주 사투리의 고수들이 모여 경연을 벌였다. 1회 대회라 풍성치 못한 참여가 다소 아쉬웠지만 사투리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상투적인 신라문화제의 콘텐츠에 참신성을 더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경연은 스타를 낳기 마련이다. 대상을 수상한 39세의 주부는 자신의 출산 경험을 소재로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때로는 웃기면서 때로는 울리기도 했다. 이 주부 스타가 사람들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한 건 다름 아닌 경주 사투리다. 경연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사투리를 마음 놓고 구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누구들처럼 주눅 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투리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지역민과 함께한 문화유산이다. 경주말은 경주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지역문화의 진수다. 소중하기에 반드시 보존할 필요가 있다. 연말까지 경주말 단행본을 발행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올해 처음 열린 경주말 겨루기 한마당이 경주말 보존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투리는 문화유산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난 9월 10일, 두 번째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 행사가 폭우 속에 겨우 열렸다. 사전 신청자가 3천명을 넘어서 날씨만 도와주었다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꽤나 알찬 2년차 행사가 되었을 텐데 아쉽다. 필자는 내년을 기약하며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았으면 한다. 작년에는 행사 첫 해라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자 목표인원을 정해 놓았지만 이젠 그러지 말자는 거다. 담당자들이 숫자 채우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창의적인 발상이 제약을 받는다. 왕릉벌초 본연의 진정성을 행사에 녹여내는데 집중했으면 한다. 왕릉벌초 기술은 경주고유의 문화다. 다시 말해 잡아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3인 1조의 벌초기술에는 현재를 사는 경주인의 지혜가 담겨있다. 이러한 벌초기술의 과학성을 증명하는 작업은 어떨까. 더불어 신라시대 이래 벌초기술의 발전추이를 짚어보는 것도 재미나겠다. 한편 왕릉벌초에 3인 1조 방식 말고 “더 좋은 기술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한번 던져보자. 공모를 통해 벌초기술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 행사의 취지를 전국에 확산시키고 참여를 촉진시킬 수 있다. 벌초는 무덤에 자란 풀을 제거하고 주위를 정리하면서 조상을 기리는 행위다. 한마디로 교육적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벌초할 조상의 묘가 없는 사람이 많다. 가까운 미래엔 매장 방식이 완전히 사라지게 될 거라고 한다. 이러면 신라 왕릉은 매우 희귀한 교육 콘텐츠가 된다. 신라 왕릉이 ‘벌초’라는 교육적 체험을 파는 유일무이한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행사를 외국에 많이 알려야 한다. 이 거대하고 오래된 신라 왕릉을 3인이 1조가 되어 꼭대기부터 원을 그리며 벌초하는 광경은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다. 우리는 작년 행사를 통해 경주가 보유한 고유자원의 힘을 이미 확인했다. 지상파 7개 프로그램이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을 ‘자발적’으로 취재하러 내려왔다. 외국이라고 해서 보는 눈이 다르지 않다.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을 해외에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세계적인 명작 소설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에 단서가 있다. 경주를 소설 속의 대인국(大人國)으로 묘사하면 외국인들이 한층 더 흥미롭게 여기며 방문할 것이다. 이렇게 신라 왕릉을 해외에 알리다보면, 앞으로 세계의 모든 교과서가 신라 왕릉을 이집트의 피라미드만큼 소개할 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은 금기(禁忌)를 깨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신라 왕릉은 조상의 묘이기도 하고, 오랜 동안 삶을 함께 한 문화재이므로 당연히 잘 보존되어야 한다. 하지만 왕릉에 올라가고 싶은 욕구 또한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는 금지하지만 이 날 만큼은 일정시간 동안 허용하는 절충안도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