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정말 오랜만에 본방을 사수한 드라마가 있다. 지난주에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이하 ‘낭닥’이라 함)다. 강렬한 인상을 준 첫 방송이후 얼핏얼핏 지나쳐보다가 결국은 완전 빠져버렸다. 김혜수가 깜짝 출연한 번외 편까지 찾아보다니 말이다.
낭닥은 드라마 자체가 거의 완벽하다. 캐스팅은 알짜배기며 압권이었다. 한석규의 김사부 연기는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낭닥으로 다시 극왕(劇王)의 자리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 정우에 밀렸던 칠봉이 유연석은 드디어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또 오해영’의 뉴 히로인 서현진은 앞으로 로맨틱 코미디물의 대표주자가 될 것 같다.
낭닥의 이야기 흡인력 또한 매우 강력했다. 선과 악의 선명한 갈등구조, 거침없이 스피디한 사건 전개, 물고 물리는 러브라인은 소위 잘 나가는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성요소다. 낭닥은 불륜, 배신, 복수와 같은 막장 드라마의 억지를 부리지 않고도 막판 시청률을 30% 가까이 견인했다. 정말 보고 싶어서 기다려지는 월요일 밤 10시였다.
하지만 필자가 본방을 사수한 이유는 완벽한 캐스팅과 이야기 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낭닥에는 사이다 같은 시원함이 있다. 사필귀정의 뻔한 해피엔딩이었지만 필자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 뻔한 엔딩을 갈구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가 기획 단계부터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금의 답답한 현실을 통쾌하게 타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특수한 장소지만, 낭닥에서 병원은 현실의 축소판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권력의 화신 도원장(최진호扮)에 맞서 싸우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도원장이 악의 축인 건 세상이 다 알고 있지만 그는 병원에서 계속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사부는 침묵한 채 도망쳤다. 그는 스스로 비겁했다고 고백한다.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이런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우리는 요즘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 용기 없는 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용기를 갖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거대권력 앞에선 특히나 그렇다.
“진실을 알면 세상에 알릴 용기는 있나?” 김사부가 자신을 괴롭히는 오기자(김민상扮)에게 던진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비겁했던 자신에게 거듭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시골병원에서 신회장(주현扮)의 인공심장 교체수술을 성공한 후 김사부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부조리한 권력자 도원장에게 “그냥 닥치고 조용히 내려와!”라고 외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사이다 구호 아닌가.
낭닥은 대통령 탄핵의 원인이 된 국정농단의 사태를 그냥 비켜가지 않았다. 김사부의 대사는 일반대중이 정권에 하고 싶은 말이다. 이것은 권모술수(權謀術數)가 판치는 세상에 던지는 경고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갈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도 이 드라마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만큼 공감대가 크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필자를 안방극장에 붙잡아 둔 낭닥의 힘, 그리고 낭만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