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까지 경주는 독보적인 신혼여행지였다고 한다. 당시는 비행기 이용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제주도는 그다지 접근성이 좋은 곳이 아니었다. 수도권을 떠나 부담 없이 신혼여행을 즐기기엔 경주만한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주는 젊은 남녀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매우 희망적인 공간이었다. 그런데 신혼여행지의 패권은 이내 제주도로 넘어갔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경주는 신혼여행지로서의 입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경주는 비슷한 원인으로 수학여행지로서의 매력도 잃어버렸다. 이제 경주는 전국의 젊은이들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공간이 더 이상 아니다. 젊은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도시, 관광보다 지진의 진원지로 더 유명한 도시, 솔직히 이것이 요즘의 경주다. 필자는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지난 22일 경주엑스포공원에서 열린 ‘러브페스티벌 in 경주 2016’에서다. 이 행사는 작년에 경주엑스포공원의 경주타워(여)와 황룡원의 중도타워(남)를 결혼시키고 선포한 ‘세계 연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열렸다. 올해가 경주타워와 중도타워의 결혼 1주년인 셈이다. 많은 연인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주지하다시피 천년 고도 경주에는 신라시대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한 탑이 2개나 있다. 하나는 음각으로 만든 경주타워고, 다른 하나는 양각으로 만든 중도타워다. 두 탑은 서로 500미터 떨어진 보문의 최신 랜드 마크로, 경주의 지배적인 이미지가 되고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남녀의 사랑이다. 남녀와 음양의 조화를 이토록 점잖고 근사하게 표현하고 있는 건축물이 세상 어디에 있던가! 경주는 양각과 음각의 초대형 탑으로 이루어진 이 지배적인 이미지를 관광마케팅에 적극 활용해야한다. 이 이미지가 전하는 메시지는 젊은이들에게 향해 있다. 이를테면 ‘사랑하려면 경주로 와라!’이다. 이 구호는 과거 신혼여행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만 쓰이진 않을 것이다. 경주가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는 ‘장소성’을 획득하는데 종국적인 목표가 있다. 경주는 다행히도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인프라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4월 벚꽃부터 10월 억새까지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충분히 유혹적이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도 그렇다. 그래서 인근 지역의 젊은 연인들이 경주를 많이 찾는다. 그러나 훨씬 폭발적이고 광범위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보강이 필요하다. 먼저 연인들이 갈만한 곳을 지정하고, 교통, 음식, 숙박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연인들에게는 먹고 즐기는데 다양한 할인 혜택을 주면 어떨까. ‘1+1 마케팅’을 다소 변형시키면 충분하다. 몇몇 장소에는 ‘프로포즈 존(propose zone)’을 만들어 은밀한 약속이 오갈 수 있도록 해주면 좋다. 대릉원 돌담길과 보문 호반길 물너울교가 최고의 후보지다. 러브페스티벌은 향후 연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로 계속 발전해가면 좋겠다. 축제를 통해 기상천외한 프로포즈 기법을 소개하는 건 어떨까. 경우에 따라선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도 있다. 포로포즈엔 누구든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공유하면서 때론 축하하고, 때론 위로받는 축제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사랑과 관심은 작금의 경주에 최고의 명약이다. 사랑이 함유된 프로그램은 관광객들의 수용가능성을 높이고, 그들의 가슴에 추억을 각인한다. 그리고 그 추억은 사람들을 다시 경주로 불러들인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이 좋은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모두에 필자가 말한 한줄기 희망도 바로 이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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