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문화는 뭔가 고상한 걸 의미했다. 예술이나 학문 정도는 되어야 문화의 축에 낄 수 있었다.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도 한정적이었다. 문화인은 선택받은 자들에 대한 호칭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문화는 인간 생활양식의 총체로 외연이 확장되었다. 예술이나 학문 말고도 음식이나 패션, 그리고 주거방식까지도 문화를 꾸미는 수식어가 됐다. 문화는 일상생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 돼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생활문화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문화가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새 정부 문화정책의 핵심 이슈다. 일단 공연장, 전시장, 영화관, 유적지, 경기장 등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설에서의 문화소비와 생산이 공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따라서 지역에서 문화시설을 위탁 운영하는 문화재단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지역문화시설은 생활문화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해야 한다. 좋은 공연과 전시로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건 기본이다. 나아가 주민들이 훌륭한 문화 생산자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는 문화예술교육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교육을 통해 문화소비를 더 잘 하게 되고, 생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클래식 기타 마니아인 A씨는 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하는 기타연주 공연을 빠짐없이 관람한다(문화소비). A씨는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문화예술회관 예술아카데미에 수강신청을 한다(문화예술교육). A씨는 맹연습 끝에 문화예술회관에 가족과 친구를 초대해 독주회를 연다(문화생산).
A씨의 사례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이때 지역문화재단은 A씨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먼저 악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다. 유용한 구매정보를 주든지 공동구매를 주선하면 된다. 다음은 좋은 선생님이다. 역량 있는 선생님을 합리적인 수강료에 모신다. 마지막은 공간적 배려다. 생활 예술인을 위한 연습장 및 공연장 대관에 인색하면 안 된다. 나아가 생활 예술인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마당까지 만들어주면 더욱 좋다.
생활문화의 확대는 어린아이부터 A씨 같은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장애인과 다문화 가정까지 대상에 제한이 없다. 또한 음악, 미술, 체육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어린 아이에게 문화를 공기처럼 향유하게 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이들에 대한 문화예술교육은 정서가 결여된 공교육의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한다. 나아가 창의력 제고는 물론 예술영재나 체육영재가 출현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한편 문화소외계층에게 생활문화는 탈(脫)소외를 촉진한다. 문화를 통한 공감은 요즘 같은 공동체 붕괴의 시대에 특효약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경주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경주예술의전당은 생활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사업이 펼쳐지는 다목적 문화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할 것이다. 전당이 예술이라는 미명으로 시민들을 주눅 들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전당은 시민들이 만만하게 보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찾게 된다. 생활문화의 확산이라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문화재단은 전례 없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무대 위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예술가와 스킨십을 나누고 함께 즐거운 문화를 생산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