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성(地域性)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비근한 예로 의식주(衣食住)를 들 수 있겠다. 입고, 먹고, 사는 방식에는 지역 고유의 특성이 녹아 있다. 그럼 한 지역에서 조상 대대로 써온 언어는 어떠한가? 의식주만큼이나 강한 지역성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말’이다. 말은 지역성을 즉각적으로 보여준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의하면, ‘언어는 사고의 집’이다. 말은 생각이나 행동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생각이나 행동은 곧 문화이니 말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말, 사투리는 지역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상징체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사투리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사라져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유네스코는 제주도 사투리를 소멸위기의 언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다른 사투리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사투리 위기는 1960~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에 기인한다. 당시는 경제성장이 지고지선의 가치였고, 효율성을 위해 표준화가 필요했다.
말도 마찬가지다. 규격화된 말이 바로 표준어다. 압축성장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말에도 규격이 적용된 것이다. 그 결과 표준어를 쓰지 않으면 왠지 시대에 뒤쳐진 사람 취급을 받았다. TV 드라마에서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하층민이거나 빈곤층이었다. 대중매체가 근거 없는 고정관념(stereotype)을 만들어냈다. 당시 사투리를 쓰는 필자의 친구들도 서울생활 초기에 말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완벽한 표준말 구사자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투리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고, 문화다양성이 문화의 핵심인자로 부상하면서 사투리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영화 ‘황산벌’(2003)이나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를 보면 영남과 호남의 사투리가 재미난 대결양상을 보인다. 걸쭉한 사투리가 주는 청각적 즐거움이 흥행(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4일 열린 ‘경주말 겨루기 한마당’은 시의 적절했다. ‘모디소! 떠드소! 즐기소!’ 라는 슬로건 아래 경주 사투리의 고수들이 모여 경연을 벌였다. 1회 대회라 풍성치 못한 참여가 다소 아쉬웠지만 사투리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상투적인 신라문화제의 콘텐츠에 참신성을 더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경연은 스타를 낳기 마련이다.
대상을 수상한 39세의 주부는 자신의 출산 경험을 소재로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때로는 웃기면서 때로는 울리기도 했다. 이 주부 스타가 사람들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한 건 다름 아닌 경주 사투리다. 경연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사투리를 마음 놓고 구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누구들처럼 주눅 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투리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지역민과 함께한 문화유산이다. 경주말은 경주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지역문화의 진수다. 소중하기에 반드시 보존할 필요가 있다. 연말까지 경주말 단행본을 발행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올해 처음 열린 경주말 겨루기 한마당이 경주말 보존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투리는 문화유산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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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