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행사를 치렀다. 고교 졸업 후 무려 30년 만이다. 열두 반 담임선생님 중 벌써 두 분이 돌아가셨다. 동기들은 30년 전 선생님들보다 더 늙어있었다. 전체모임으론 죽기 전 마지막이라는 농담도 오갔다. 하지만 올드 보이들의 모임은 화기애애했다. 사제지간의 옛 추억을 곱씹으며 저녁 내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마침 지난주엔 2017년 수능시험도 있었다. 30년 전엔 ‘학력고사’라는 다른 이름의 대입시험이 실시됐었다. 30년이 흘렀지만 대입시험은 여전히 사람을 등급화하고 있다. 등급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믿음 또한 여전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30년 전에 우수한 등급을 받은 학생이 과연 지금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요즘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에선 주말에 100만 명이 참여하는 초대형 집회가 열린다. 놀라운 것은 불상사가 없는 비폭력 평화집회라는 점이다. 30년 전(1987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 선언으로 촉발된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고, 박근혜씨는 그 후로 여섯 번째 직선제 대통령이 되었다.
30년 만의 홈커밍데이는 모처럼 과거를 더듬게 만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30년 전의 상황이 현재와 너무나 흡사하다. 이른바 판박이 데칼코마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국민들이 거리에 나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고, 요구하고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은 통치 권력의 정당성 때문이라고 치자. 하지만 작금의 대통령은 뭔가.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이유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흔히 하는 말씀이 “훌륭한 사람이 되라!”다. 동기 중에는 정말 존경할 만한 ‘훌륭한’ 친구들이 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훌륭한 성품과 희생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에 1등급 우량학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러워하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1등급 엘리트의 몰락과정을 요즘 자주 목격한다. 이들은 늘 1등급 인생을 살아왔다. 우리나라가 법적으로는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지만 이걸 온전히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들이 안하무인인 이유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해서란다. 대통령 측근들의 밝혀진 작태를 보면 특히나 그렇다. 그의 선생님이 그리 가르치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이다.
우리 동기들은 격변의 1980년대에 중·고·대학을 다닌 50살 아재다. 한때는 386세대라 불리며 역사의 중심에 서있었다. 30년 전의 선생님과 동기들을 만나는 정말 설레는 자리에서 조차도 동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에 신경을 쓴다. 이미 많은 동기들이 가족들과 함께 광장에 나간 걸로 안다.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크고 작은 지병으로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든 처지에 나라 걱정이 한발 앞선다.
유쾌하지만 씁쓸하기도 한 홈커밍데이였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는 30년 만에 50살 아재들에게 준 시대의 숙제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