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사거리 대릉원 서쪽 담에서 시작되는 황리단길은 경주 ‘황남동’과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합성하여 만든 닉네임이다. 이 길은 tvN의 인기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언급될 정도로, 요즘 경주에서 가장 많은 이목을 끌고 있는 거리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상점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에 화답하듯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급기야 경주시장도 관심을 갖고 상인들과 만나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황리단길을 많이 찾는 이유가 뭘까?” 페북의 한 지인이 던진 화두다. 필자는 지역재생이란 차원에서 황리단길의 신선한 변신과 그 긍정적 효과들에 대해 마침 관심이 많았던 터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황리단길 신드롬’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황리단길은 좋은 부동산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간 너무나 침체되어 있었지만 입지와 접근성만큼은 양호한 곳이었다. 몇몇 선구자 역할을 한 상인들의 등장으로 활기를 찾기 시작하더니 이내 젊은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잠재되어 있던 부동산의 가치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리단길의 성공으로 인해 유사 이름의 ‘*리단길’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황리단길이나 망리단길에 앞서 경리단길의 좋은 이미지가 선행하기 때문이다. 간혹 황리단길이 뜬금없는 이름이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 네이밍이 이곳을 널리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건 분명하다. 황리단길의 건물은 비록 속은 현대식 상점이지만 겉은 황남동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통 안에 현대가 파고든 독특한 외관이 특별한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음식점, 사진관, 서점, 카페, 빵집 등 상점 구성이 다양하다. 그래서 황리단길은 걷고 싶은 거리가 되었다. 몇 걸음만 걸으면 다른 풍경이 연이어 펼쳐져 심심하지 않다. 그래도 ‘황리단길 신드롬’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민간의 자발적인 생태계 구축 노력에 있지 않나 싶다. 상인 각각의 이기적인 노력이 전례 없는 명소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관주도로 만든 ‘봉황로 문화의 거리’와 확연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이는 경주시의 역할 변화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쭙잖은 도심재생 기획보다는 한 발짝 물러서 상인들의 애로사항을 잘 듣고 해결해주는 편이 낫다. 무엇보다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 황리단길의 부동산 가격은 유명세에 비례하여 급속하게 올라가고 있고, 언젠가는 이곳의 상인들도 비싼 임대료 때문에 떠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이들이 도심재생 및 활성화에 기여한 만큼 돌려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일이다. 사유재산제도와 충돌하지 않도록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 성동구는 지난 2015년 9월에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강남구는 건물주와 수차례 간담회를 진행한 후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자는 ‘착한 임대료’ 방침을 세웠다. 서울시는 5년 이상 임대료 인상 자제를 약속한 ‘장기안심상가’ 신청 건물주에게 상가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대책들은 건물주와 임차 상인에게 미리 신호를 보내 불확실성을 줄이고 영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준다. 황리단길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경주시가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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