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아는 것’은 지혜이고, ‘보이는 것’은 포착됨이다. 지혜가 있어야 어떤 사안을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할 수 있다. 이 말은 공공행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야 한다. 자칫 ‘앎’이 부족해서 국민들의 애로사항을 포착하지 못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 공부해서 내공을 쌓으면 대체로 얻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내공이 지식이 아닌 지혜가 되려면 다른 실천적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건 바로 ‘사랑’이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 저암(著菴) 유한준(兪漢雋)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라 했다. 앎의 전제가 사랑임을 피력한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에로스(eros)적 사랑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떤 대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에 가깝다. 아이디어 뱅크로 소문났던 경주시의 한 고위간부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곳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곳이 고향이든 아니든 관심을 기울이면 좋은 아이디어가 생긴다는 것이다. 공공행정은 국민들의 세금을 투입하여 무형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과에 해당하는 무형적 가치를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책임설명(accountability)이라고 한다. 사업계획서에서 기획의도나 기대효과, 결과보고서에서 정성적 성과가 책임설명에 해당한다. 이는 통제환경인 의회나 언론의 견제에 대응하는 집행부의 가장 긴요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의 행정에서 이러한 책임설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어떤 사업은 담당자조차도 왜 하는지를 잘 모른다. 관성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편이다.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은 ‘앎’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앎’은 사랑에서 발현한다. 만약 책임설명이 안된다면 그건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공공행정, 특히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문화예술행정에서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 정말 필요하다. 문화예술행정은 시민과 예술가를 만나게 하는 매개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에 대한 헌신과 예술가에 대한 존경이 수반되지 않으면 어떠한 문제도 포착해 낼 수 없다. 반면에 헌신과 존경이라는 사랑에 창의적 아이디어가 조금만 가미되면 위대한 정책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 경우 책임설명은 굳이 꾸미지 않아도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도 진리지만 사실은 ‘사랑해야 보인다’가 더 큰 진리다. 문화예술행정의 주요 미션은 어디서나 문화적 아픔의 치유이다. 사랑하면 국민들의 아픔이 보인다. 사랑하면 더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사랑하면 책임설명이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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