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기분 나쁜 일이 여러 가지 있다. 오늘 아줌마는 기분 나쁜 것 중 ‘비교’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줌마가 지금까지 하지 않는 것, 역시 ‘비교’다. 엄친아라는 말이 돌아다닐 정도니, 아줌마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에 다짐했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아줌마 역시 지난 세월 동안 여기저기서 그런 비교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에 대한 온갖 기분 나쁜 예시를 줄줄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러고 싶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를 하는 사람들이 비교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고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줌마는 나쁜 비교의 예시를 줄줄줄 이야기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비교론을 이야기하고 싶다. 비교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삶에 사용하는 많은 것들이 실험 결과를 비교와 대조를 통해 얻은 결과물로 생성된 것들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사람을 두고 하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일을 함에 있어서 성적, 근로 평가 등 상대적 평가를 경험한 우리가 비교를 전면 거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비교를 굳이 내가 자행하는 것이 문제다. 아줌마는 어린 친구들이 스마트폰과 인스타와 같은 매체를 이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100명 중에 잘 활용하는 사람이 1%라도 될까 싶다. 아줌마를 비관주의라고 무시하고 싶은가? 아줌마가 각종 데이터를 통해 나열하고 싶지만, 그것도 참는다. 2024년 교육부에서 추천한 <불안 세대>를 보면 서구에서 발표된 각종 연구 결과가 많이 담겨 있으니, 이것만 참조해도 어느 정도 답은 되리라 본다. 아줌마는 오늘 특히 문제가 되는 ‘비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요즘 ‘상대적 박탈감’란 말이 참 많이 거론된다. 세대가 달라서, 성별이 달라서, 가치관이 달라서 저쪽과 비교해서 내가 있는 쪽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중에는 분노로 변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분노가 가득한 것 같다. 서로를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장단점이 각각 있음을 이해해야 하는데, 다른 쪽과 비교해 저쪽이 갖게 되는 장점으로 인해 내게는 불이익이 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봤자 인터넷 세상에서 접하게 되는 여유로운 이들의 삶을 엿보는 것은 곧 나는 왜 이러지, 왜 나만 고생하는 것 같고, 열심히 해도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매몰된다. 결론은 또 분노다. 아줌마는 말하고 싶다. 굳이 비교를 거기다가 해야 하는가? “수학은 철학보다 논리적이다. 철학 너는 왜 수학처럼 직관적으로 답이 없니?” “국어는 수학보다 이해력이 좋아. 수학, 너는 왜 국어처럼 말로서 이해시키지 못하니?” 뭔 멍멍 소리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가? 비교를 이렇게 엉뚱하게 하면 이런 개소리가 가득한 세상이 된다. 올바른 비교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어떤 공부나 일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일의 진척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굳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건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효율성을 방해하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제대로 된 비교는 나를 나와 비교하는 것이다. 어떤 자격증이나 시험을 공부하는 중이라면 긴 호흡에 힘들 것이다. 이때 내가 비교해야 할 대상은 오로지 나다. 이 시험을 막 준비했을 때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발전한 만큼 칭찬을 해줘야 하는 것도, 좀 더 힘을 내보자, 응원을 해주는 것도 나여야 한다. 다른 직장을 구해서 이미 안정적인 지인이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을 통해 모든 것이 편안한 지인을 나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비교는 오히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만을 두고 해라. 그러면 삶이 달라진다. 아줌마의 경험이고 성공 철학이다. 나만 빼고 다 행복하고, 다 편하고, 다 쉬운 것 같지만, 그들만의 고난이 있고, 그들만의 문제가 있다. 그러니 오로지 나에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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