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가 끝난 논은 연신 푸르름이 짙어진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벼는, 남의 집 아이 같다. 아줌마가 하는 농담이다. 우리 집 아이는 더디게 자라는 것 같은데, 남의 집 아이는 가끔 보니 볼 때마다 훌쩍 커져 있곤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말이 나온 김에 남의 집 아이 이야기를 더 해보련다. 경주 시내 모 초등학교 알림장은 3개 국어로 나온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다국적 아이들이 섞여 있어서 그렇다. 한국 출신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는 소리다. 어디 그뿐인가? 외국인도 있지만 다문화 친구들도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엄마가 외국인인 친구가 있다. 엄마들을 뵐 경우가 있었는데, 한국어 소통이 쉬운 분도, 아직은 조금 서툰 분도 계셨다. 그래도 서로 배려하면서, 학교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다문화 아이들. 오늘 아줌마는 ‘그들의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닌다. 한국어가 서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한국어가 서툴다. 한국에 들어온 지 십 년이 넘었는데, 한국어가 서툴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미국 LA 교포들을 생각해 봐라. 일이 년 만에 모국어를 까먹고 영어를 잘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삼십 년이 넘어도 영어가 서툴고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드러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교육열은 세계 최고가 아닌가. 이 친구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한국 선생님으로부터 한국어로 모든 수업을 듣는다. 학교 생활 적응이 만만치 않다. 부모에게 나가는 알림장을 아이가 부모에게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알림장은 어려운 용어들의 잔치다. 저학년 때는 그나마 낫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 수업은 점점 어려워진다.
어쩔 수 없다고 그냥 포기해야 할까?
남의 문제라고?
우리 아이들 문제도 버거운데, 그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은가?
아줌마 뒷목 잡는 소리 좀 하지 말자!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도 망가진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의 친구다. 그들의 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문제다. 서울특별시에 사는 분들이야 눈앞에 외국인 노동자가 안 보이니, 피부로 안 와닿아서 장님 행색이지만(정작 그들이 다니는 도로를 까는 이들, 그들이 살아가는 모든 편의시설에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다르지 않은가?
다문화의 경우, 아이들은 한국어 소통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학습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의 언어로 공부하는 우리 아이의 숙제나 학업을 얼마나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봐라. 막막하지 않은가! 외국인 노동자의 아이들은 더 심각하다. 한국어를 익히지 못하고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늘봄이니, 돌봄이니 아이들을 모두 일괄되게 모아놓고 돌보는 것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지역적 특성, 문화적 특성을 살펴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것을 나라나 학교에서 무조건 다 해줄 것이라고 기대만 해서도 안 된다. 우리 지역에서, 우리 마을에서, 우리 학교에서 우리가 나서서 우리 아이들을 서로 챙겨야 하는 문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 아이는 한국 국적의, 한 민족의 아이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이도, 우리 마을에 사는 아이도 그냥 ‘우리 아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어?” 생각한다면, ‘우리 아이’를 보고 웃어주고, 선입관을 버리려고 노력하고, 나아가 작은 친절을 베풀어주는 것이 시작이다. 나아가 그들 세상에 들어가 보고, 그들을 초대하고, 함께 하는 것.
아줌마도 매일 노력 중이다.